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려는 국내외 제약사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비알코올성지방간질환(NAFLD) 유병률은 26%로 인구 네 명 중 한 명 꼴로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연간 3만~4만명이 발생해 인구 3~4명 중 1명 꼴로 NAFLD 질환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술을 먹지 않아도 생기는 이 질환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NAFLD에 염증이 동반되면 NASH로 진단한다. 전세계 NASH 치료제 시장규모는 2026년 약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대단한 빅마켓이지만 아직 승인받은 치료제가 없다.
NASH 치료는 지방간 증상에 포함된 염증과 섬유화, 간경변증 개선을 목표로 한다. 발병원인이 다양하고 개인별 생활습관에 따라 차이가 많아 단일 기전에 의한 치료제로는 효과적인 치료가 어렵다. 몇 가지 타깃을 동시에 공략하거나 다양한 표적을 한번에 치료하기 위해 병용투여나 복합제를 처방해야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학적 소견이 많아 제약사는 다양한 기전의 치료제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길리어드사이언스, 인터셉트파마슈티컬스 등 글로벌제약사는 부지런히 NASH 치료제 개발을 시작해 내년 3상 임상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지난 7월 2일자 국제학술지 네이처메디슨(Nature Medicine)에 게재된 ‘Mechanisms of NAFLD development and therapeutic strategies’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NASH 관련 임상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돼 6개 치료제가 3상을 진행 중이며 2상 완료 또는 진행 중인 치료제는 21개로 1상 완료 또는 진행 중인 치료제를 포함하면 연구가 진행되는 치료제는 상당 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임상 3상 연구가 진행 중인 치료제는 장피트(Genfit)의 ‘엘라피브래노(elafibranor)’, 인터셉트파마슈티컬스의 ‘오베티콜릭산(obeticholic acid)’, 길리어드사이언스의 ‘셀론서팁(selonsertib)’, 앨러간의 ‘세니크리비록(cenicriviroc)’ 등이다. 셀론세팁과 세니크리비록은 각각 내년 1월, 7월에 임상을 마칠 예정이며 다른 두 치료제의 임상 종료시점은 2020년 이후로 예상된다. 2상 연구를 마치거나 진행 중인 갈메드의 ‘아람콜(arachidyl amido cholanoic acid)’, 길리어드사이언스의 ‘GS-0976’, 화이자의 ‘PF-05221304’ 등 10개 치료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속심사(Fast track) 대상으로 승인받아 개발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상 중인 치료제의 작용기전은 퍼옥시좀증식체활성화수용체(PPAR)α/δ 리간드(ligand), 파네소이드X수용체(FXR) 리간드·억제제, 아프토시스신호조절키나제1(ASK1)억제제, 아세틸-COA(acetyl-CoA)억제제, 케모카인2·5(CCR2·5)억제제, 카스파제(Caspase)억제제, 항지질다당질(Anti-LPS), 갈렉틴-3(Galectin-3)억제제, 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SGLT)1·2억제제, 아세틸코아 카복실라제(ACC)억제제, 표면나트륨의존성담즙산수송체(ASBT)억제제 등 다양하다.
NASH는 다양한 기전의 치료제가 요구되는 특성 때문에 제품을 먼저 출시하는 것으로 시장을 선점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내 제약사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거대한 시장 규모와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고 1~2상을 시작하는 등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로는 삼일제약, 한미약품, 휴온스, 동아에스티, CJ헬스케어 등이 개발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최근 오픈이노베이션 협력이 활성화되면서 기술이전 등을 통해 개발에 참여하는 제약사는 늘어날 전망이다.
한미약품은 비만치료제로 함께 개발하고 있는 ‘트리플어고니스트(Triple Agonist, HM15211)’가 지난 4월 미국 FDA로부터 NASH 치료제 임상 1상 승인을 받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임상시험에서 지방간과 염증개선 효과를 확인했으며 글로벌 신약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삼일제약은 지난 6월 이스라엘 갈메드가 개발한 NASH 치료제 아람콜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2b상을 마쳐 국내 3상을 준비한다고 공시했다. 삼일제약은 이 치료제의 국내 임상개발 및 독점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52주간 진행된 임상에서 아람콜 600㎎은 간섬유화 악화없는 NASH 해소(resolution) 상태를 나타내고 간염증상태를 반영하는 ALT(GPT)와 AST(GOT) 수치가 감소하는 내약성 프로파일을 보였다.
휴온스는 다른 제약사보다 앞선 2015년에 ‘HL정(HL-09)’의 임상 2상을 완료했다. 지방간 환자에서 체질량지수(BMI) 변화 없이 간 지방량만 감소시키는 유효성 입증결과를 미국 간학회(AASLD)에서 발표했다. 중국목련으로 불리는 ‘후박’ 추출물 기반 천연물신약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임상 3상을 준비 중이다.
휴온스 관계자는 “아직 마땅한 NASH 치료제가 없는 만큼 시장의 성장성에 대해 회사와 업계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임상시험 데이터 확보 등 제품 개발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미래는 밝지만 치료제 개발은 그에 맞먹는 험로에 놓여 있다. NASH 치료제가 199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됐고 현재 연구에 참여한 글로벌 제약사 수가 약 100여개가 넘었지만 아직 신약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이를 반증한다.
지난해 동아ST는 미국 토비라와 체결한 ‘에보글립틴’ 기술수출 계약에 대해 2016년 토비라를 인수한 앨러간으로부터 계약반환 통보를 받았다. 동아ST의 임상결과 나타난 효능과 가능성을 인정받아 라이선스 계약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신약개발 과정엔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위험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임상 3상 결과발표를 앞둔 치료제가 개발돼도 다양한 기전별 적합한 치료기간, 병용요법, 보조치료, 부작용 등에 대한 연구가 지속돼야 해 신약개발부터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는 뒤늦게 참여한 국내 제약사가 개발단계부터 염두해야 할 부분이다. 2019년을 기점으로 선두주자의 임상결과가 발표되는 데다가 후발주자가 개발 대열에 가세함으로써 블록버스터급 NASH 치료제를 선점하려는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