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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품절에 소비자불만 폭주 “아스피린은 도대체 언제 들어오나요?”
  • 손세준 기자
  • 등록 2018-11-05 09:30:31
  • 수정 2020-09-17 0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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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엘아스피린500㎎정, 20개월간 납득할 명분없이 약국서 실종 … 박한 이윤에 ‘부작용’ 비판 부담

바이엘코리아의 아스피린 제품 품귀현상으로 인해 약국가에서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약대생의 초급 합성실험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아스피린이란 단순 화합물이 국내에선 마치 희귀의약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2016년 12월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12개월 장기보존안정성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바이엘코리아의 ‘바이엘아스피린(500㎎정)’을 자진 회수하라고 명령하면서 공급이 끊긴 이래 지난 9월초에야 서서히 물량이 풀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약국이 이 약을 공급받지 못해 소비자의 원성을 들어야 하는 처지다.

지난 3월 H약국을 처음으로 개설한 J모 약사는 최근까지도 “새로 생긴 약국이라 아스피린도 안 갖다놓냐, 아스피린도 없이 무슨 약을 판다고 그러느냐”는 소비자 불만을 들어먹어야 했다. 그는 결국 도매상 직원에게 다른 전문약을 100만원가량 구입해줄테니 아스피린을 갖다달라고 요청, 최근에야 약국에 바이엘아스피린을 ‘입성’시킬 수 있었다.

자진 회수조치 이후 무려 1년 8개월 동안 의약품을 공급하지 않은 것은 제약사로선 이례적이다. 그동안 바이엘은 “2016년 당시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던 아스피린 제품의 용출률이 문제였는데 생산공장을 독일로 이전한 뒤 본사 공장의 보수작업 때문에 공급이 지연된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석연치 않다.

그러다가 지난달 초부터 서서히 바이엘아스피린의 수급이 풀려 약국에 뿌려지고 있다. 일부 도매상은 다른 일반약이나 전문약의 판촉을 촉진하는 유인책으로 바이엘아스피린을 한정 공급하고 있다. 의약품 도매업계나 약국가에선 다국적제약사의 의약품유통을 거머쥐고 있는 쥴릭파마코리아가 국내 의약품도매상이나 거대 약국을 순치시키는 수단으로 바이엘아스피린을 아주 조금씩 푼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I도매상 관계자는 “지난달 초중순에 일시적으로 여러 도매상에 바이엘아스피린이 소량씩 풀렸다가 최근 다시 말랐다”며 “쥴릭파마로부터 의약품을 구입하려면 담보를 제공해야 하고, 공급 확인 즉시 현금이 인출되는 결제시스템이어서 영세한 도매상은 감히 바이엘아스피린을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일반의약품 해열진통제로는 아스피린, 이부프로펜(부루펜), 덱시부프로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등이 있다. 국내 제약업계에 따르면 아스피린500㎎정은 소비자층이 얇아서 양산해도 팔릴 수요가 부족해 국내 제약사들이 생산을 기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시장분석 결과 생산해도 많이 팔 자신이 없기 때문에 500㎎정은 만들지 않는다”며 “막상 시장에 내놔도 이를 집어갈 소비자층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국 이외의 국가에선 아스피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온라인쇼핑몰인 이베이(ebay), 아마존(amazon), 월마트(walmart) 등의 홈페이지에선 해당 제품이 정상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이틀이면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일본 라쿠텐(Rakuten), 캐나다 뉴드럭스토어(Newdrugstore), 프랑스 몽코인상테(Mon Coin Sante),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클릭스(Clicks) 등 다른 국가의 온라인 약국 또는 쇼핑몰에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서는 의약품의 온라인판매가 금지돼 있고 약국들이 주문하는 의약품도매상 사이트엔 대부분 ‘제약사 품절’로 뜨고 있다.

문제는 이번 바이엘아스피린의 장기 품절이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이윤도 크게 남지 않아 품절을 조기에 해소할 적극적 의지가 없었고, 아스피린이 갖는 기본적인 부작용에 비판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던 것으로 비쳐진다. 다가 몇달 뒤면 들여올 것처럼 해명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자기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자세는 소비자나 약계의 불만을 증폭시켰다.
 
제약사는 민간기업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건강증진이라는 공익적 목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돈 되면 하고 돈 안되면 접는’ 행태는 도덕적 질타를 피하기 어렵다. 제약사들이 이윤이 박한 필수의약품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표적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 등으로 고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한국화이자의 경우 테라마이신안연고가 불과 개당 385원에 불과하지만 이렇다할 품절 없이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바이엘아스피린은 요즘 500㎎정의 약국 공급가가 1정당 140원 꼴이다. 그래서 제약사가 챙길 마진도 다른 성분의 국산 해열진통제보다 훨씬 높다. 다른 국내제약사가 만들 의향이 없으므로 공급을 늦출 이유도 없었다. 바이엘이 소비자에 극히 무성의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더욱이 1970~1990년대 아스피린 광고를 통해 친숙해진 열렬 소비자들의 제품 충성도를 감안하면 품절 해소를 미룰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찾는 G씨(42·여)는 “젊을 때부터 그 약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다른 약을 먹자니 아쉽다”며 “다시 들어온다고 하는데 약국에선 하염없이 기다리라고만 하니 억장이 터진다”고 말했다.

아스피린은 출혈성 경향이 높아 애주가들에겐 위장천공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밖에 소화기궤양, 기관지천식, 혈우병, 출혈경향이 있는 환자와 수술을 앞둔 사람은 복용하지 말라고 의약품 설명서에 명시돼 있다. 14세 이하 소아가 수두나 독감 같은 바이러스질환에 감염돼 고열이 날 경우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뇌수막염과 비슷한 라이증후군에 걸려 치명적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아스피린 대신에 이부프로펜이나 아세트아미노펜이 권장되긴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장기복용할 경우 속쓰림, 위장출혈, 간장애 등의 부작용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아스피린은 요즘 100㎎정이 ‘심혈관질환’‘뇌혈관질환’의 예방약으로 개발돼 널리 팔리고 있다. 위에서는 녹지 않고 장에서만 녹아 속쓰림은 줄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한 장용정(腸溶鋌) 형태로 시판되고 있다. 아스피린을 혈소판 응집을 억제해 혈전이 생성되는 것을 막는다. 대략 25%, 최대 50%까지 각종 혈전색전증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연구돼 있다. 그렇다보니 건강한 노인도 혈관을 맑게 한다는 이유로 심혈관·뇌혈관 위험군이 아닌데도 복용하는 경우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지난 9월 16일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호주 모나시대 존 맥닐 박사와 미국 헤네핑 헬스케어의료재단의 앤 머리 박사가 65세 이상 미국인과 호주인 1만9114명을 대상으로 2010년부터 5년 가까이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 심혈관질환 경험이 없는 노인이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을 먹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되기보다 내출혈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11월 “심혈관질환 2차예방에 아스피린이 효과가 있으나 매일 복용하는 것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며 의사와 상담 후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FDA는 심뇌혈관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제품 라벨에 표시할 수 있게 해달라는 바이엘의 요청을 공식 거부했다. 심장마비, 뇌졸중, 심혈관 질환에 대한 병력이 없는 사람이 ‘1차예방책’으로 사용하면 뇌내·위장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매일 복용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심혈관질환 및 뇌혈관질환 등을 경험한 환자다. 하지만 바이엘은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고 있다.

모든 약에는 순기능과 함께 부작용이 뒤따른다. 아스피린도 부작용도 있지만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이점이 있다. 체질에 따라 아스피린만 먹으면 열이 빨리 떨어지고 두통이나 생리통이 쉽게 개선되는 환자가 있다. 소염효과도 비교적 좋은 편이고 요산을 낮춰 통풍을 호전시키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하지만 제약사나 의사·약사는 환자의 병태나 컨디션에 따라 아스피린의 용량을 조절해 최적의 복용법을 택할 수 있도록 지도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바이엘코리아의 슬로건은 ‘Science for Better Life’다. 이 문구가 ‘Science for More Money’처럼 느껴지지 않으려면 기업의 이윤추구활동에 뒤따라야 할 사회적책임도 강조돼야 하는 게 요즘의 경영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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