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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대신 영업사원이 … ‘대리수술’ 의료계선 공공연한 일?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8-10-31 01:36:47
  • 수정 2020-09-17 0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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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기기 익숙한 일부 베테랑이 수술 … 같은 시간 의사는 다른 외래환자 진료·수술

대한의사협회는 대리수술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는 찬성이지만 수술실 내 CCTV 설치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의사가 아닌 비(非) 의료인이 환자를 수술하는 ‘대리수술’ 사건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5월 울산 A병원에선 간호조무사가 수술을 집도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 병원 관계자가 언론사에 제보한 영상에는 간호조무사 B 씨가 수술용 가위와 메스 등 도구를 들고 실제 수술하는 장면, 수술 시간에 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서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병원 측은 “뉴스에 보도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성명까지 냈지만 경찰 조사 결과 대리수술은 사실이었다. B 씨는 2014년 12월부터 3년 6개월가량 제왕절개 봉합수술, 요실금수술 등을 710여 차례나 실시했으며 의사들 수술 장면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엔 부산 영도구의 한 정형외과에선 의료기기 판매업체 영업사원이 어깨 부위 견봉성형술(어깨 바깥쪽 끝부분 뼈가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내는 수술)을 실시하다 환자를 심정지에 의한 뇌사 상태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수술을 영업사원에게 맡긴 의사 A 씨와 영업사원 B 씨는 구속 송치, 전신마취와 수술을 보조한 간호사 등 5명은 불구속 송치됐다. 의사 A 씨는 조사과정에서 “외래환자 때문에 바쁘니 먼저 수술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업사원은 자신이 판매하는 의료기기의 납품 계약을 이어가기 위해 병원 원장의 지시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했다.

국내 공공의료의 최전선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도 대리수술이 이뤄졌다. 이달 초 제보자가 공개한 영상엔 의료기기 회사의 대리점 영업사원이 직접 의료 기구를 손에 들고 시술에 참여했다. 영상을 제보한 병원 관계자는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수술 참여가 수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고 밝혔다. 보통 영업사원은 수술 보조를 맡는데 수술 마무리나 봉합 단계를 직접 담당하기도 했다.


2015년엔 부산 B정형외과에서 병원장이 의료기기 판매사원과 간호조무사 등에게 무릎인공관절삽입수술을 맡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대형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월 부산대병원에선 B 교수가 지난해 수술 23건을 후배인 조교수에게 대리 집도하게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에 넘겨졌다. 2016년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에산 산부인과 C 교수가 해외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자신이 담당한 수술을 후배 의사에게 맡긴 정황이 폭로되기도 했다.

그동안 적발된 대리수술은 △의료인 면허가 없는 의료기기 회사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수술하거나 △유명 의사가 수술할 것처럼 안내한 뒤 실제로는 수술경력이 짧은 신참 의사가 수술하거나 △지도교수가 전공의,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수술을 시키는 등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리수술은 의료계와 의료기기 업계에선 이미 공공연한 일로 꼽힌다. 한 정형외과 병원 관계자는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의료기기와 수술도구의 사용법이 까다롭고, 성능이 계속 업그레이드 되기 때문에 완벽히 숙지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보통 의료기기를 처음 들이거나 업그레이드를 하면 담당 영업사원이 수술실에 출입해 장비 사용법을 설명하는데, 장비 사용에 능숙한 일부 베테랑 영업사원의 경우 직접 수술에 참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는 불가피하다는 게 의료기기 업체들의 입장이다.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의 의료기기업체 직원이 대학에서 업무와 관련된 학과를 졸업한 데다 회사 차원에서 의료기기 사용법을 교육하니 의사보다 기기 사용에 능숙한 편”이라며 “의사는 의학과 진료에서만 전문가이지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보니 새로운 의료기기가 수술 중 오작동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수 있어 업체 직원이 대기하면서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외국에서도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실에 출입해 장비 사용법을 설명하고 수술을 참관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레이저포인터를 이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환자 몸엔 접촉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또 외국에선 ‘의료진이 아닌 자가 수술실을 들어가려면 환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식의 지침이나 법률이 있지만 국내에선 그런 게 없고,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의사들이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강요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대리수술은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수술 중 사고나 수술 후 부작용 발생 시 책임소재가 모호해져 근절돼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입장이다. 이홍근 정형외과의사회 회장은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대리수술은 환자를 기만하는 불법 의료행위로 사기죄 구성 요건에도 부합한다”며 “사고 후 처벌 여부를 떠나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환자를 다루는 의사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리수술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해야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한국소비자연맹·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지난 10일 공동성명을 통해 “수술실이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돼 있고 환자의 의식이 없기 때문에 내부 제보나 CCTV가 없는 한 유령수술 시행 여부를 절대 알 수 없다”고 비판하며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와 대리수술 의사의 면허 취소·실명 공개를 촉구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대리수술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는 찬성이지만 수술실 내 CCTV 설치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정성균 의협 대변인은 “수술 장면을 촬영하고 디지털 데이터로 만드는 것 자체에 반대한다”며 “해킹 기술이 발달해 수술 관련 정보가 유출되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CCTV로 수술 과정을 감시받으면 집도의의 치료 의지가 약화되고, 의사와 환자간 불신을 조장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며 “수술행위는 수술하는 의사의 오랜 교육과 경험이 축적된 전문적인 지식이자 보호해야 할 지적 재산”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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