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의료서비스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골자로 하는 ‘문재인케어’와 저수가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병원계가 카드수수료 인상이라는 또다른 악재에 부딪히게 됐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26일 신용카드 수수료 개편에 따라 일반 가맹점 수수료율을 인상했다. 당시 종합병원급 의료기관 인상률은 평균 0.08%p로 추계됐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병협이 상급종합병원 14곳, 종합병원 23곳, 병원 14곳, 요양병원 2곳 등 총 53곳의 의료기관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조사한 결과 종합병원은 0.09%p, 상급병원은 0.13%p 인상됐다. 이번 인상률 변동을 반영하면 의료기관은 매출 규모에 따라 평균 2.0~2.3% 정도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적용받게 된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상급종합병원은 기존에 연평균 수수료로 병원당 18억1300만원을 부담했는데 이번 개편에 따라 1억4700만원 늘어난 19억6000만원을 부담하게 됐다. 종합병원은 연평균 4억9500만원에서 5억3000만원으로 3500만원 증가했다.
병협 관계자는 “신용카드 수수료율 개편으로 종합병원 기관당 연평균 1496만원만 추가로 부담하면 된다고 밝혔던 금융위원회 추계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수수료율이 올라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한 수수료 재조정이 필요하다”며 “병원 진료비는 공공성이 매우 높아 정부가 정하는 고시에 의해 정해지고 통제되므로 카드수수료 인상에 따른 부담을 해소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신용카드사는 업종별로 수수료율의 최소·최대 범위를 정해 놓고 있다. 카드사와 가맹점간 수수료율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업종별로 수수료율 차이가 크고 산출 근거도 명확하지 않아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병협 관계자는 “그동안 신용카드사들은 그동안 매출이 소규모이고 폐업 가능성이 높은 중소상인은 수수료율을 높게 책정한 반면 매출액이 크고 규모가 큰 가맹점들의 수수료는 낮게 책정했다”며 “하지만 정부가 소상공인 보호정책의 하나로 수수료 산정방식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전환해 소상공인 카드수수료를 인하하자 카드사들이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대형병원 등의 카드수수료를 인상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카드수수료 정률제는 결제 건마다 똑같은 수수료가 부과되는 정액제와 달리 소액결제일수록 낮은 수수료가 부과돼 편의점 등 소액결제가 많은 가맹점에 유리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수수료는 적격비용에 따라 받고 있어 카드사에서 임의로 책정할 수 없다. 당국에서 조정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이번 병협 자료는 53곳을 조사했는데 전체 병원의 수수료를 조사해 평균을 내보면 금융위 추산대로 기존보다 0.08%p 인상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수술비 등으로 단일 결제 액수가 비교적 큰 대학병원에선 연간 억원대의 수수료를 부담하게 됐다며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A 대학병원 관계자는 “이번 카드수수료율 인상으로 1년에 부담해야 할 카드수수료만 2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상공인 보호대책의 불똥이 왜 의료기관으로 튀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종합병원 관계자는 “카드수수료가 겨우 0.1%p 오른다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용으로 환산하면 1억원 정도가 인상되는 것이라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 입장에선 큰 부담”이라며 “병원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진료비의 99%가 카드로 결제되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현금으로 계산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수수료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 상황이 열악한 개원가는 수수료 인상으로 인한 타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L 비뇨기과의원 원장은 “기업형 대형병원이면 몰라도 일선 의원과 중소병원까지 일방적으로 수수료를 인상하는 건 사실상 카드사의 갑질과 다름없다”며 “소상공인 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카드수수료를 인하하면서 의원급 의료기관의 카드수수료는 인상해 타산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병협 관계자는 “병원은 공공재 특성이 강해 카드수수료 인상으로 인한 손해를 자체적으로 보전하기 힘들다”며 “이런 특성을 감안해 보건의료 분야를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가맹점 우대수수료 업종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