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분당서울대병원이 중증질환 치료결과 등 의료서비스 질을 자체 평가한 지표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면서 관행처럼 이뤄졌던 병원들의 ‘의료정보 독점’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공개한 지표는 의사 1인당 환자 수, 수술실 내 모니터링 장비 설치 여부와 같은 병원 내 환경,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측정한 수치, 의료행위로 인한 환자의 건강 상태와 만족도 변화 등이다. 성과뿐 아니라 합병증 발생률이나 수술 후 사망률 등도 공개 내용에 포함됐다.
해당 자료는 분당서울대병원 홈페이지에 게시해 의료계 종사자와 연구자는 물론 환자와 보호자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병원은 이번 발표에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지표 공개를 지속함으로써 질적 성장 과정을 외부와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병원은 의료질지표를 구조지표와 과정지표, 결과지료 3개 카테고리로 구분했고, 총 100여개 항목을 공개 대상으로 선정했다.의료질지표 내용을 보면 위암 수술건수는 2010년 517건에서 2017년 800건으로 54.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술 후 30일내 사망률은 0.38%에서 0.12%로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졌다. 5년 생존율은 1A기 95.9%, 1B기 91.8%, 2기 84.95, 3기 77.5%, 3B기 58.8%, 3C기는 33%였다.
대장암 수술건수는 2010년 371건에서 2017년 642건으로 7년 사이에 1.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합병증 위험을 줄인 최소침습수술 비율은 62.8%에서 80.7%로 17.9%p 늘었다.
유방암의 5년 생존율은 0기 100%, 1기 98.5%, 2기 96.65, 3기 84%로 미국 의료기관 평균에 비해 우수했다. 2014~2015년 전이성 4기 췌장암의 2년 생존율은 9.5%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MD앤더슨암센터의 생존율 3%에 비해 3배나 높다.
분당서울대병원인 이번 의료질지표를 발표하면서 낙상사고, 손위생 수행률 등 병원들이 숨기고 싶은 지표까지 스스로 공개했다. 낙상사고는 지난해 4분기 기준 0.99%였다. 이는 1000병상급 병원에서 하루에 1건의 낙상사고가 발생한다는 의미로 병원들이 공개를 꺼려왔던 의료질지표 중 하나다.
의료감염 항목인 손위생 수행률은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92%로 조사됐다. 이는 의료진 10명 중 1명꼴로 손위생이 불량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은 생존율 1%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합병증이나 낙상사고 같은 예민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두고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었다”며 “매년 의료질지표를 공개하고 평가항목을 더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영혁신실장인 김지수 교수(신경과)는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환자 수술 성적을 공개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다른 병원 간 눈치를 보거나 만일 공표됐을 때 지표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를 우려해 늦어졌다”며 “병원 전상훈 원장이 큰 결정을 내린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표를 환자에게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공개 자료는 단일 병원에서 자체 평가한 주관적 성적표여서 실제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다른 의료기관과 비교·파악하긴 어렵다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자체 평가 기준에 대한 검증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분당서울대병원의 행보는 의료계에 문화를 바꾸는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등 일명 빅5병원들이 그냥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만일 거부했다가는 환자 알 권리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쓸 수 있다. 결국 많은 병원이 앞다퉈 분당서울대병원의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병원들이 자료를 공개했을 때 단순비교 등을 우려하기도 했다. 같은 위암이라도 복잡성, 기저질환 등 환자의 상황에 따라 치료 성적은 달라져 단순한게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고 일본 국립암센터는 공개된 자료에 각 병원의 상황을 알려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대학병원 한 관계자는 “분당서울대병원이 환자 정보를 공개하는 바람에 대부분 대학병원이 환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며 “문제는 환자 수술 정보를 공개한다고 해도 분당서울대병원의 후속 조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관심을 받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