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를 굶겨 죽여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너지대사 작용을 차단해 암세포 성장을 막는 원리다. 강석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팀(박준성·심진경)과 김수열 국립암센터 암미세환경연구과 박사는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에서 암세포의 에너지대사 과정을 약물로 차단해 증식과 침윤을 현저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뇌신경은 신경세포(뉴런)와 신경교세포로 이뤄진다. 신경교세포는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신경교세포에 생기는 악성종양인 교모세포종은 대표적인 악성뇌암의 일종이다. 종양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뇌압을 상승시켜 두통, 경련, 기억소실, 성격변화, 안면마비, 언어장애, 인지기능저하 등을 유발한다.
표준치료법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한 뒤 방사선치료와 항암요법을 병행한다. 하지만 치료해도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14.6개월에 불과하다.
교모세포종을 비롯한 암세포는 활발한 에너지대사를 통해 성장 및 증식한다. 연구팀은 이런 특성에 착안해 암세포의 에너지 생산을 억제함으로써 증식과 침윤을 줄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암세포에서 에너지 생산에 관여하는 알데히드탈수소효소(ALDH)와 미토콘드리아 콤플렉스를 각각 ‘고시폴(gossypol, 면실유에서 유도한 독성색소)’과 ‘펜포르민(phenformin)’으로 억제했다. 그 결과 암 증식에 필요한 에너지의 50% 이상이 감소했다. 빨리 성장하는 암은 대부분 알데히드탈수소효소의 발현과 활성도가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동물(마우스)실험에서도 두 약물을 함께 투여하는 병용요법을 실시한 결과 생존기간이 연장됐다.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는 교모세포종 이식 마우스는 생존기간이 평균 42일이었지만 고시폴과 펜포르민을 함께 투여한 마우스는 62.5일로 50%가량 연장됐다. 단독요법은 병용요법에 비해 효과가 떨어져 고시폴은 53.5일, 펜포르민은 50.5일을 기록했다.
그동안 표적항암제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져 왔지만 뚜렷한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항암제로 암세포 성장 기전을 차단하더라도 곧 내성이 생겨 다른 경로를 통해 암세포가 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에너지대사 과정을 억제해 암 증식과 침윤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교모세포종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교모세포종뿐만 아니라 일반 고형암 치료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석구 교수는 “고시폴과 펜포르민의 병용요법이 암세포가 정상 뇌조직을 침윤하지 못하도록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며 “지금까지 나온 표적항암제는 암세포의 대사 과정을 직접 막지 못하고, 종류가 다른 고형암 치료에 적용하기 불가능한 한계를 안고 있었는데 이번 연구는 암치료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기한 획기적인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신경종양학회지 ‘뉴로온콜로지(Neuro-Oncology)’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연구결과를 기술이전해 치료제 개발을 준비 중이며, 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