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 부부가 자녀의 제대혈을 보관하기 위해 메디포스트의 가족제대혈은행 서비스에 가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혈 보관에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족제대혈을 보관해 실제로 사용한 비율이 1만명 중 2명꼴로 극히 드물어 비용 대비 효용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임 없이 나오고 있다. 15년 보관 기준 가격이 100~150만원 수준이다. 평생보관하면 약 400만원이 든다.
국회, 의료계, 시민단체 등 일각에선 제대혈 보관 비용부담을 낮추고 제대혈 활용도를 높이려면 해외처럼 보건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기증제대혈은행 운영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제대혈 관리·감독이 허술해 국내 제대혈 보관 사업은 상업성이 짙다는 비판도 나온다.
제대혈은 태아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탯줄에서 뽑아낸 혈액을 말한다.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다량 들어 있어 주로 소아 백혈병 치료에 쓰인다. 조직적합항원(Human Leukocyte antigen,HLA)이 일치하는 공여자를 찾을 필요가 없고, 자신이나 가족의 조혈모세포를 이용해 이식편대숙주반응(GVHD, graft versus host disease) 등 부작용 발생위험이 낮은 게 장점이다.
제대혈은 보관 형태와 사용 주체에 따라 자신과 가족만 쓸 수 있도록 사설업체와 계약해 맡기는 가족제대혈, 다른 사람의 질병 치료와 의학연구 목적으로 대가 없이 제공하는 기증제대혈로 나뉜다. 이들 기관은 출산 시 채취한 제대혈을 정제해 영하 135도 이하인 액체질소탱크에 냉동보관한다. 기증제대혈은행 중 국가 지정 기관은 제대혈 1단위(unit)당 약 63만원의 보관비용이 지원된다.
제대혈 이식은 1988년 프랑스에서 악성빈혈 환자에게 동생 제대혈을 이식해 치료한 사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제대혈은행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9년에 재발된 급성혼합형백혈병 환자에게 동생의 제대혈을 이식한 이후 간헐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3년 1월부터 제대혈이식이 소아에서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받으면서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국내 17개 제대혈은행의 제대혈 보관 건수는 54만3258건으로 가족제대혈이 90.6%, 기증제대혈이 9.4%을 각각 차지했다. 2011년 7월 제대혈법 시행 이후 총 556건이 이식됐는데 가족제대혈은 이식률이 0.02%(49만1967건 중 114건), 기증제대혈은 0.09%(5만1291건 중 442건)으로 낮았다.
기증한 제대혈만 보관하는 기관으로는 △서울시제대혈은행 △차병원기증제대혈은행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부산경남지역제대혈은행 4곳이 있다. 대표적인 가족제대혈은행은 △메디포스트제대혈은행 △베이비셀제대혈은행 △아이코드제대혈은행 △엘씨바이오제대혈은행 △녹십자제대혈은행 △보령아이맘셀뱅크제대혈은행 등이다. 이들 업체 중 일부는 기증제대혈과 가족제대혈을 동시에 보관하고 있다.
제대혈의 유효성을 평가할 때 중요한 항목은 유핵세포수(TNC, total nucleated cell)다. 제대혈을 이식할 경우 환자 체중(㎏)당 약 1500만개의 유핵세포가 필요하다. 현행 규정은 기증제대혈은행이 보유한 제대혈 샘플 중 유핵세포가 8억개 이상 있을 때만 ‘적격’으로 판정하고, 치료용으로 이식할 수 있다. 이식한 제대혈 세포의 80% 가량만 산다고 가정하면 8억개의 유핵세포는 체중이 42㎏ 미만인 아이에게만 이식이 가능하다. 즉 국내 평균으로 따지면 12살 이하의 아이에게만 이식할 수 있는 셈이다. 유핵세포가 8억개 미만인 ‘부적격’ 제대혈은 폐기하는 게 법적인 원칙이지만 의학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모든 제대혈은 매매가 금지돼 있다.
가족제대혈은행은 이같은 제재가 적용되지 않아 평균 유핵세포수가 3억~4억개인 제대혈을 이식용으로 보관할 수 있다. 이는 체중이 20㎏ 미만인 미취학 아동에게나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업체와 산부인과 간 리베이트 거래 등으로 이런 정보가 계약 과정에서 산모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병원에선 막 출산을 한 산모를 대상으로 제대혈 보관 마케팅을 하는데 제대혈을 이용해 다양한 난치병을 고칠 수 있다는 장밋빛 이야기만 듣고 30년이나 평생 보관하는 고액 상품에 계약하는 소비자가 적잖다.
제대혈은 뼈·연골 등으로 분화하는 간엽줄기세포도 함유하고 있으며, 뇌성마비·자가면역질환 등에서 치료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부 의료진은 제대혈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동의하면서도 “간엽줄기세포는 제대혈뿐 아니라 지방세포 등에서도 얻을 수 있고, 난치병 관련 효과와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된 치료제로 개발하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미국소아과학회는 2007년 1월 ‘잠재적인 미래 이식을 위한 제대혈 보관’(Cord BloodBanking for Potential Future Transplantation)이란 보고서에서 자신 혹은 가족이 사용할 목적으로 제대혈을 보관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았다. 만약 제대혈을 보관한 아이가 나중에 그 줄기세포를 필요로 하는 악성종양이나 유전자질환에 걸렸다면 이미 제대혈 줄기세포 안에도 발병 잠재성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형제 중 제대혈 줄기세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질환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보관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제대혈은행 운영 문제에 늑장대응을 하고 있어 가족제대혈뿐 아니라 기증제대혈에 대한 인식도 나빠지고 있다. 지난 2월 김승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복지부가 2013년 및 2015년에 총 2차례에 걸친 제대혈은행 전수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용 개선·보양 목적으로 제대혈 줄기세포가 불법 유통되는 등 관리부실 문제에 적절할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차 평가에서도 17개 은행 중 7개가 가족제대혈 미폐기, 장비점검 미준수, 인력 기준 미충족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지난 7월 복지부는 국내 제대혈은행과 연구기관 40곳을 대상으로 연구용으로 제공된 제대혈 사용실태를 전수조사해 제대혈 공급 신고 의무를 어긴 서울시보라매병원, 차병원, 동아대병원, 녹십자 등 제대혈은행 4곳을 경찰에 고발했다. 산모 이름을 삭제하지 않고 제대혈을 공급한 차병원에는 비밀누설금지 의무 위반으로 과태료 150만원을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