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이 폐암·구강암의 주요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졌지만 성기능을 포함한 비뇨기 건강까지 악화시킨다는 사실엔 낯선 사람이 많다. 장기간 담배를 피면 1차적으로 발기부전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아지고, 심하면 방광암으로 이어져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게다가 중증 방광암을 치료하려면 방광을 적출해야 하는데 수술 과정에서 발기신경이 손상돼 성기능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흡연은 발기부전이든 방광암이든 ‘고개 숙인 남자’를 만드는 주요인이다.
남성이 성적 자극을 받으면 음경 말초혈관이 확장되면서 평소보다 8배 많은 혈액이 몰려 발기가 된다. 담배 속 니코틴과 타르 성분은 혈관벽에 염증을 유발해 혈관을 좁아지게 만들고 혈관의 신축성을 떨어뜨린다. 이러면 음경 혈관에 혈액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혈관성 발기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흡연 경고문구에 ‘발기부전’ 한 단어만 추가해도 남성 흡연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말은 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또 혈액 속으로 흡수된 니코틴은 발기에 관여하는 조직인 음경 해면체를 손상시켜 발기 강직도를 낮추고 지속 시간을 짧게 만든다. 단순히 발기력만 약화시키는 수준을 넘어 성욕 자체를 떨어뜨린다. 정자의 수와 질에도 악영향을 미쳐 난임이나 기형아 출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성기능에만 문제가 생겼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잦은 흡연은 방광암 발생 위험을 2~10배, 사망률을 4배가량 높인다. 장인호 중앙대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방광암 환자 중 남성은 50~65%, 여성은 20~30%가 흡연이 원인”이라며 “흡연을 시작한 시점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유소년기에는 직접흡연뿐만 아니라 간접흡연만으로도 방광암 위험이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름알데히드·벤조피렌·니코틴·타르 등 담배의 발암물질은 폐를 통해 인체에 흡수된 뒤 혈액으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신장에서 걸러져 소변에 포함된다. 소변은 체외로 배출되기 전 방광에 저장되는데, 이때 소변에 들어있던 발암물질이 방광 점막세포를 손상시키는 과정에서 암세포가 생성된다.
장기간 흡연한 사람에서 혈뇨, 빈뇨, 절박뇨, 요실금, 측복부 통증, 배뇨통, 골반내 덩어리 만져짐 등이 동반된다면 방광암을 의심해볼 수 있다.
암세포가 점막이나 점막하층에만 국한된 비근침윤성(표재성) 방광암은 요도로 방광경을 삽입한 뒤 절제경으로 암세포를 제거하는 경요도 방광종양절제술로 치료한다.
방광암이 근육층을 침범한 근침윤성 방광암일 경우 절제술로는 암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어 방광적출술이 필요하다. 남성은 전립선·정낭·정관, 여성은 자궁까지 함께 절제하는 대수술이어서 신경손상에 따른 발기부전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최근엔 로봇수술 등 신경손상을 최소화하는 치료법이 도입됐다.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 결핵균(Bacillus Calmette-Gurin, BCG)을 방광에 주입하는 면역요법을 병행하기도 한다. 림프절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된 전이성 방광암엔 항암화학요법을 시행한다.
방광암은 치료 후 재발 및 전이 가능성이 높다. 발암물질이 소변에 섞여 요관, 방광점막, 신장 등 신체 곳곳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보통 방광암의 70%가 재발하고, 이 중 20~30%가 침윤성으로 악화된다. 이 때문에 전문의들은 방광암수술 후 몇 년간은 3~6개월마다 방광내시경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장 교수는 “방광암을 예방하려면 바로 금연하고, 간접흡연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며 “금연 후 1~4년이 지나면 방광암 발생 빈도가 40%, 25년 후에는 60%가량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변을 자주 보거나, 단 한 번이라도 혈뇨가 관찰된 흡연자는 방광암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