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에이리스’·‘미니보라’, 혈전 발생위험 낮아 … 3세대 ‘머시론’·‘마이보라’, 여드름 부작용 개선
4세대 ‘야즈’·‘야스민’ 부종·피부트러블 적지만 혈전은 주의 … 야즈, 여드름·월경불쾌장애도 치료
먹는 사전피임약은 매일 정확한 시간에 복용하면 피임성공률이 약 99%로 콘돔(약 85%)보다 효과가 우수하지만 호르몬제에 대한 부작용 우려와 근거 없는 속설 때문에 국내에선 복용률이 선진국(30~40%)의 10분의 1 미만인 2~3%에 그친다.
지난해 5월 4세대 사전피임약인 바이엘코리아의 ‘야스민’(성분명 드로스피레논 3㎎·에티닐에스트라디올 0.03㎎. drospirenone·ethynlyestradiol)을 복용한 국내 여성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한동안 불안감이 고조됐다. 또 ‘장기간 복용하면 나중에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 ‘기형아를 유발한다’, ‘성생활을 할 때만 복용한다’ 등의 오해로 복용을 꺼리는 이들이 적잖다.
그럼에도 사전피임약은 사후피임약(응급피임약)보다 여성호르몬 함량이 낮아 부작용이 적고, 피임뿐 아니라 호르몬이상, 생리불규칙, 다난소증후군 치료에도 유용하다는 게 의료진의 공통된 의견이다. 피임약은 성분 특성 상 혈액이 끈적해지는 혈전 발생위험을 높인다. 이에 사전피임약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35세 이상 흡연자, 고혈압·고지혈증 등 심혈관질환자는 복용이 권장되지 않는다. 약물 대부분이 간에서 대사되므로 간기능이상자도 주의해야 한다.
사후피임약은 성관계 후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기 전인 72일 이내 투여해야 하는데 언제 복용하냐에 따라 피임성공률이 천차만별이다. 24시간 안에 투여하면 피임성공률이 약 95%이지만, 24~48시간에는 약 85%, 48~72시간엔 약 58%로 급감한 2011년에 출시된 현대약품의 ‘엘라원’(울리프리스탈아세테이트, ulipristal acetate)은 시간적 한계를 극복해 성관계 후 120시간(5일) 이내에 복용하면 피임성공률이 약 95%로 유지된다. 다만 착상된 수정란(배아)까지 파괴할 수 있어 생명윤리와 관련한 논란이 항상 뒤따른다.
사전피임약은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및 프로게스테론 유사체가 주성분인 합성의약품으로 배란을 억제하고, 자궁내막을 위축시키며, 경관을 끈적한 점액으로 막아 임신을 방지한다. 임신한 상태와 유사하게 호르몬 농도를 조절해 흔한 이상반응으로 임신 초기 증상과 비슷한 메스꺼움·피부트러블·부종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부작용이 지속될 경우 전문가와 상담해 성분을 교체하는 게 좋다. 에스트로겐은 난포성장을 저해하고, 프로게스테론은 배란을 억제한다.
사전피임약 복용 주의점사전피임약은 여성의 월경주기(약 28일)에 맞춰 보통 21정 단위로 포장돼 있다. 월경 시작일부터 1일 1정, 21일간 복용한 후 7일간 휴약을 반복한다. 21일 동안 복용한 후 2~3일이 지나면 월경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월경 여부와 상관 없이 휴약기간이 지나면 난포가 자라서 배란을 막기 어려우므로 7일 쉰 후 바로 복용해야 한다.
월경 시작일부터 복용해야 배란을 가장 확실하게 억제할 수 있다. 월경을 시작하고 2~3일 후부터 복용할 경우 첫 7일간 다른 피임법을 병행하는 게 안전하다. 혹은 다음 달 월경 시작일부터 복용하면 된다. 임의로 복용하거나 투약을 중단하면 피임 효과가 없고, 불규칙한 출혈이나 생리불순을 초래하므로 복용법에 대해 의·약사와 상담해야 한다.
사전피임약은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 깜빡 잊고 복용하지 않았을 때는 생각난 즉시 투약하고 그날 것을 제시간에 또 복용한다. 시간이 겹친 경우 2정을 한번에 투약해도 된다. 다만 복용 1~2주째(1~14일)에 3정 이상 또는 복용 3주째(15~21일)에 2정을 투여하지 못한 경우 나머지 약은 버리고 생각난 즉시 새 포장 약으로 복용을 시작해야 하며, 투여 첫 7일간은 콘돔 등 다른 피임법을 병행해야 한다. 연속 2회에 걸쳐 월경이 없으면 임신했을 가능성이 있다.
월경주기가 28~30일인 경우 임신 위험이 높은 기간은 월경시작일로부터 10~19일째다. 배란이 다음 월경시작일로부터 약 14일(12~16일) 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란기가 매월 일정하지 않으므로 날짜피임법만 이용하는 것은 피임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사전피임약 세대별 장단점세계 최초의 경구 사전피임약은 1957년에 미국에서 출시된 ‘엔보이드’(Envoid, 성분명 메스트라놀, mestranol)이다. 이 약을 포함한 1세대는 에티닐에스트라디올이 고함량(0.05mg 이상) 들어 있어 부작용이 심해 시장에서 퇴출됐다. 엔보이드의 메스트라놀 성분은 합성 에스트로겐인 에티닐에스트라디올의 전구약물(prodrug)이다. 1세대 약은 프로게스테론 성분으로 노르에틴드론(norethindrone), 노르게스트렐(norgestrel) 등이 복합됐다.
차세대 사전피임약은 에티닐에스트라디올 함량을 0.02~0.03mg으로 줄이고, 새로운 합성 프로게스테론 성분을 추가했다. 프로게스테론 성분으로 2세대는 레보노르게스트렐(levonorgestrel), 3세대는 데소게스트렐(desogestrel) 또는 게스토덴(gestodene), 4세대는 드로스피레논(drospirenone) 등이 사용된다. 이들 성분은 구조적으로 거의 같지만 주의해야 할 부작용에서 차이가 난다.
양인규 약사(충청남도 천안시 불당동 펜타포트약국)는 “2세대인 레보노르게스트렐은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과 구조과 유사해 여드름을 악화하거나 다모증이 생길 수 있는 반면 1~4세대 약 중 정맥혈전색전증(VTE) 위험은 가장 낮다”며 “3세대인 데소게스트렐과 게스토덴은 안드로겐 유사작용을 억제해 여드름·다모증 부작용이 적어 ‘피부에 좋은 피임약’으로 알려져 있지만 2세대에 비해 혈전 위험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4세대 드로스피레논은 항무기질코르티코이드 효과를 나타내는 이뇨제 약물과 구조적으로 비슷해 부종 부작용이 덜하면서도 3세대와 같이 안드로겐 유사작용을 억제한다”며 “이에 ‘피부에 좋고 살도 찌지 않는 피임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혈전 위험은 가장 높다”고 덧붙였다.
2세대는 한국화이자제약의 ‘에이리스’(레보노르게스트렐 0.1㎎·에티닐에스트라디올 0.02㎎, 일동제약 판매), 동아제약의 ‘미니보라’(레보노르게스트렐 0.15㎎·에티닐에스트라디올 0.03㎎, 바이엘 개발)가 대표적이다.
3세대는 알보젠코리아의 ‘머시론’(데소게스트렐 0.15㎎·에티닐에스트라디올 0.02㎎, 바이엘 개발), 동아제약의 ‘마이보라’(게스토덴 0.075㎎·에티닐에스트라디올 0.03㎎, 바이엘 개발) 등이다. 소비자의 선호도가 2세대 보다 높다.
4세대 바이엘의 ‘야스민’과 ‘야즈’(드로스피레논 3㎎·에티닐에스트라디올 0.02㎎)는 다른 사전피임약과 달리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다. 혈전 생성 위험이 높은 데다가 피임 외에 다양한 적응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야스민은 21일 복용하고 7일 휴약하는 일반적인 피임약 복약법을 따른다. 부종과 피부트러블 개선에 유리하지만 야즈처럼 여드름·월경곤란증·월경전불쾌장애 적응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야즈는 야스민보다 에티닐에스트라디올 함량이 0.01㎎ 적어 부종·두통·유방압통 등 에스트로겐 부작용이 경미하다. 다른 약과 달리 24일간 복용하고 4일만 휴약한다. 휴약기가 짧아 호르몬 변동폭이 적어서 드로스피레논의 항안드로겐·항무기질코르티코이드 효과가 지속된다. 피임 외에 여드름·월경곤란증·월경전불쾌장애 치료를 적응증으로 갖고 있다. 월경전불쾌장애(PMDD)는 월경전증후군(PMS)보다 생리 전에 신체적·정서적으로 불편한 증상이 심한 상태를 말한다.
김태준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4세대 피임약은 혈전 형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장기간 흡연했거나 심혈관질환 위험이 있는 여성은 다른 피임약을 써야 한다”며 “하지만 일반적인 건강한 여성이라면 두통, 수분 정체로 인한 체중증가 또는 부종 등 부작용이 개선된 4세대 피임약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전피임약 오해와 진실장기간 복용하면 나중에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x)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피임약의 효과는 복용하는 주기에만 나타나고, 가임능력이 손상되지 않는다. 조사 결과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한 후 중단한 그룹의 6개월 이내 임신성공률은 복용하지 않은 그룹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한 후 임신이 어려운 것은 여성의 연령이 많은 경우에 국한된다는 게 의학계의 해명이다.
기형아를 유발한다(x)임신 초기(10주 이전)에 임신한 줄 모르고 피임약을 복용했다고 하더라도 기형아를 유발하지 않는다. 산모를 피임약 비복용군과 피임약 복용군으로 나눠 비교한 결과 두 그룹 간 기형아 발생률, 조산율, 저체중아 또는 거대아 출산율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에 따르면 피임약이 암 발생위험을 증가시키는지는 같은 암종을 대상으로 연구했어도 결과가 엇갈려 단정짓기 어렵다. 일부 연구에선 피임약이 자궁내막암·난소암 위험을 낮췄고, 유방암·자궁경부암·간암 위험을 높인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암연구소(Cancer Research UK)는 “유방암 원인 중 피임약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로 낮은 편”이라며 “피임약을 복용함으로써 얻는 자궁내막암·난소암 예방효과가 유방암·자궁경부암 발생위험 증가로 인한 불이익보다 크다”고 발표했다.
데이비드 가이스트(David Gaist) 덴마크 오덴스대 의대 교수팀이 덴마크 15~49세 여성 신경교종(뇌종양의 한 종류) 환자(317명)의 건강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신경교종 환자군은 피임약 사용경험이 있는 비율이 58.7%로 환자군과 연령, 사회적 지위, 학력 등이 비슷한 대조군(2126명)의 50.1%보다 높았다. 피임약 중에서도 프로게스테론 단일제를 5년 이상 복용할 경우 신경교종 발생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영국임상약학지’(British Journal of Clinical Pharmacology) 2015년 1월호에 실렸다.
피임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x)복용 초기에 에스트로겐 성분이 체내 나트륨 농도를 증가시켜 수분 함유량이 높아지면서 몸이 부을 수 있고 이를 체중증가로 느낄 수 있다. 지방축적에 의한 비만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제약사 측의 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