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헬스케어와 내부거래, 올 상반기 매출 88% 차지 … 업계 “의약품 판매구조 투명성 개선 필요”
지난 7월 28일 셀트리온의 판매 자회사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코스닥에 상장한 데 이어 지난달 29일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이었던 셀트리온이 코스피로 이전상장을 결정했다. 이로써 셀트리온그룹이 의약품 판매 구조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극복하고 공매도(空賣渡) 논란을 잠식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셀트리온의 현재 시가총액은 16일 오전 기준 약 21조4300억원에 달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을 뜻한다. 주식을 빌려 팔고 주가가 실제로 내려가면 낮은 가격에 사서 되갚는 식으로 차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셀트리온은 매출 대부분을 자회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와의 공급 계약으로 거둔 반면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재고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셀트리온이 내부거래를 활용해 실적을 부풀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셀트리온의 지배구조는 서정진 회장이 셀트리온홀딩스의 지분 93.86%(지난 8월 기준)를 보유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셀트리온홀딩스는 셀트리온 지분 19.68%를, 셀트리온은 셀트리온 제약 지분 55.29%를 각각 갖고 있다. 서 회장은 별도로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 36.18%를 보유 중이다.
셀트리온와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아무런 지분 관계가 없음에도 거래 내역을 보면 사실상 한 몸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셀트리온그룹이 한 회사가 할 일을 두 회사가 나눠 하는 기이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셀트리온이 생산한 바이오시밀러를 위탁판매 계열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로 일단 넘기면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전세계 제약사와 대형병원에 되팔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의 시험생산 물량을 사들일 의무가 있고, 시판허가를 못 받아도 거래를 취소할 수 없다. 그 대가로 셀트리온이 개발하는 모든 제품의 전세계 독점판매권을 갖고 있다.
지난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셀트리온이 올 1~9월 공시한 9건 공급계약은 모두 자회사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이뤄졌다. 계약금만 약 4900억원에 달했다. 두 회사는 건당 500억~700억원 규모에 이르는 항체의약품 바이오시밀러 등을 독점판매하는 계약을 매월 1건 이상 체결해왔다. 공급 품목은 류마티스관절염·크론병 등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램시마’(오리지널 품목명 미국 얀센의 ‘레미케이드’, 성분명 인플릭시맙, infliximab),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 치료제 ‘트룩시마’(오리지널 품목명 스위스 로슈의 ‘리툭산’, 성분명 리툭시맙, rituximab, 국내 상품명 ‘맙테라’) 등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셀트리온은 셀트리온헬스케어로부터 지난해에 전체 매출(약 6706억원)의 82%인 약 5517억원을 벌어들인 데 이어 올 상반기엔 전체 매출(약 4427억원)의 88%나 되는 390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와 함께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지난해 말 기준 1조4721억원의 재고를 떠안았으며, 셀트리온에 갚아야 할 채무는 6685억원(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로부터 받아야 하는 매출채권)에 달했다.
셀트리온 측은 “의약품 개발 위험을 셀트리온이 전부 떠안기보다 서정진 그룹 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셀트리온헬스케어와 분담하고 있다”며 “글로벌 의약품 유통산업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셀트리온헬스케어 등과의 내부거래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램시마 매출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창고에 팔리지 않은 재고가 쌓이면서 시장에선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재고금액은 전년 말(1조3993억원) 대비 700억원가량 증가했다. 이에 셀트리온은 지난 4월 공매도 물량이 전체 주식 거래량의 30% 내외를 기록할 정도로 공매도의 집중 타깃이 됐다. 공매도 물량이 많아지면 주가가 급락해 일반 투자자는 막대한 손해를 볼 수 있다.
셀트리온 측은 매출액과 재고금액이 동시에 늘어난 이유에 대해 “원료조달부터 가공·품질검사 등을 거쳐 완제품을 공급하기까지 9개월 이상이 소요되므로 9~12개월치 재고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은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가 끝나면 내년 2월경 코스피로의 이전 상장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액주주 운영위원회는 코스피가 코스닥보다 비교적 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공매도 문제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셀트리온이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려면 의약품 거래 구조를 투명하게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의 주된 의견이다.
앞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회계처리 위반으로 코스닥 상장이 지연되기도 했다. 2015년 해외 협력사에 독점판매권을 주고 미리 받은 100억원 규모의 계약이행 보증금을 바로 수익으로 잡은 게 문제가 됐다. 감리를 맡은 한국공인회계사회는 보증금은 판매승인을 못 얻으면 돌려줘야 하므로 공급이 실제 이뤄진 시점에 수익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모니터의 김수현 대표는 “제조를 담당하는 셀트리온과 판매·유통을 맡고 있는 셀트리온헬스케어 간에 연결회계를 적용해야만 화장을 지운 실적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실제로 셀트리온은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지분 상으로는 연결고리가 없어 분식회계(粉飾會計) 설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서로 지분관계가 없기 때문에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실적이 셀트리온의 연결회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두 회사를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봐야만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분식회계는 기업이 자산이나 이익을 실제보다 부풀려 재무제표상 수치를 고의로 왜곡하는 것이다. 주주와 채권자의 판단을 흐려 이들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공인회계사가 감사하더라도 분식회계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셀트리온은 자산 규모가 5조원이 넘어 지난 4월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새로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에 포함돼 일감 몰아주기 여부 등을 조사받게 됐다. 공정위는 이 회사가 시중 가격보다 높거나 낮게 의약품을 공급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는지를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공정위 규정에 따르면 내부거래액이 연간 200억원 이상이거나 연매출에서 차지하는 내부거래 비중이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