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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제조판매업자’ 표기 개정 추진, 지지부진에 소비자 외면
  • 김선영 기자
  • 등록 2017-09-22 18:15:00
  • 수정 2020-09-13 15: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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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임유통관리·전문판매로 세분화, 혼동 줄 소지 다분 … 식약처·협회, 소통없이 국회통과만 기대

화장품 제조사인지 판매사인지 헷갈리는 현행 ‘제조판매업자’ 표기를 명확히 하기 위해 판매사를 ‘전문판매업자’와 ‘책임유통관리업자’로 세분화하는 방안이 오히려 소비자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화장품법 상의 ‘제조판매업자’ 표기를 개선하는 방안이 늑장으로 진행되고 있는 데다가 과연 이런 법 개선이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화장품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에 숨어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화장품 업종분류 개편안(화장품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지난해 9월 21일 입법예고 후 약 10개월이 지나서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법제처에 따르면 입법예고 후 국무회의까지 보통 3~4개월이 걸리지만 무슨 내막인지 1년이 넘도록 법률안 개정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현행 화장품법은 제조원과 판매원을 ‘제조자’와 ‘제조판매업자’로 이원화해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조자는 말 그대로 제조원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제조판매업자로 직접 제조하거나, 위탁생산하거나, 수입한 각 제품을 유통·판매하는 업체가 통틀어 일컫는 용어다.

예컨대 A업체가 생산한 화장품을 브랜드사인 B업체가 판매할 경우 화장품 용기나 포장에 제조사는 A업체로, 제조판매사는 B업체로 기재하면 된다. 하지만 제조판매업자를 B업체로 표기하는 것은 이 회사가 마치 제조부터 판매까지 모두 담당하는 듯한 느낌을 줘 온당하냐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가 제조사가 A업체인지, B업체인지 헷갈리게 된 것은 2012년 2월 5일에 ‘화장품 제조업 및 제조판매업 등록제’가 시행되면서다. 그전엔 화장품도 의약품·의료기기·건강기능식품처럼 제조사, 판매사로 단순히 나눠 표기했다. 당시 법 개정은 품질이나 안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제조업자뿐 아니라 판매업자도 지겠다는 대한화장품협회의 논리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설득되면서 이뤄졌다. 

그러다가 2014년 7월에 화장품협회가 제품 포장에 제조업자를 빼고 제조판매업자만 표기하는 방안을 추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숨은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제조판매업자란 사실상 판매업자를 일컫는 것이었다.

당시 화장품 업계에선 유명 제품을 유통·판매하고 있는 대형 브랜드사들이 제조사 이름 노출이 판매전략에 불리하고, 대형 위탁제조사가 날로 성장해 대형 브랜드사를 위협하기 때문에 이런 시도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수 견해이지만 특정 제조사의 인지도가 막강해져 상위 업체의 과점 현상이 심각해져 중소 제조기업이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에 제조판매업자만 표기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왔다. 

이런 방안의 추진 배경에는 미국·유럽·일본 등의 거대 글로벌 브랜드도 판매업자만 표기하는 상황에서 ‘제조자·제조판매업자’를 병기하면서까지 굳이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을 훼손할 필요가 있느냐는 국내 대형 브랜드의 물밑작업이 힘을 썼다는 후문이다.

구미 및 일본에서는 의약품·건강기능식품·화장품 등 겉포장에 유통·판매업체는 ‘Distrubuted by’ 또는 ‘Manufactured for’라는 통일된 용어로 반드시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제조사 정보는 ‘제조번호’(batch number)라는 일련의 숫자만 기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당시 협회는 “화장품산업 발전을 위해 현재 제조업자와 제조판매업자로 구분돼 있는 화장품 포장 표기를 제조판매업자로 통일하고 제조판매업자가 원료 품질관리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게 하자”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건의했다. 하지만 일부 제조사들이 “제조업자 표기를 삭제하면 실제로 상품을 생산한 업체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소비자의 알 권리가 후퇴한다”며 “유통·판매업체가 원가가 낮은 저품질 원료를 사용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업체와 계약해 오히려 업계 기술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극구 반대해 법 개정이 무산됐다. 이에 ‘제조업자’ 표기를 아예 없애버리려던 협회와 거대 브랜드의 공작은 일단 수포로 돌아갔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방안은 제조자 표기는 존속하되 ‘제조판매업자’를 ‘전문판매업자’와 ‘책임유통관리업자’로 세분하는 것이다. 전문판매업자는 소비자 요구에 따라 기존 화장품에 다른 제품의 내용물이나 원료를 혼합한 맞춤형화장품 판매사, 책임유통관리업은 기존 유통·판매업체를 뜻한다.
맞춤형화장품은 최근 등장한 새로운 유형으로 매장에서 피부진단 후 자신에 맞는 원료를 즉석에서 혼합해 소량 만든다.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마이투톤립바’, LG생활건강 ‘르메디 바이씨앤피’(ReMede by CNP)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제조판매업자의 ‘전문판매업자’·‘책임유통관리업자’ 세분화 표기 방안 추진은 표면적인 어감상만으로도 제조사보다 판매사를 대우해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전문판매업자’는 메디컬의 힘을 빌려 고품질의 코스메틱 서비스를 한다는 느낌을 주고, ‘책임유통관리업자’는 제조사가 무엇이든 브랜드의 신뢰도를 믿고 구매하라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인 메시지를 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방안의 추진에 대해 화장품 업계 관계자 대다수가 속사정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화장품협회나 식약처 관계자도 명칭 변경의 취지나 내막에 대해 흐릿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소형 제조사인 G사에 위탁생산해 자체 브랜드로 팔고 있는 소형 판매사인 M사의 관계자는 “입법예고한지도 몰랐다”며 “명칭만 들었을 때 전문판매업자와 책임유통관리업자의 차이를 잘 모르겠고, 명칭 세분화가 영업환경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면 대형 위탁제조사인 C사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선 판매사를 애둘러 어렵게 표현한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이라며 “위탁생산하는 입장에서 유불리를 말할 처지가 아니다”며 몸을 사렸다.

화장품협회 측은 “현재 국회가 개정안을 심의 중이어서 내년에 새 법안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미 시행이 예정된 정책에 새로운 의견을 밝히기 어렵고, 정부의 방침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관계자도 비슷한 답변을 했다.
 
김강현 식약처 대변인은 제조판매업자 세분화 표기가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질문에 “식품도 업종에 따라 제조자는 제조·가공업, 판매자는 유통전문판매업 및 식품소분·판매업으로 세분한다”며 “화장품 판매업자 분류 세분화도 이와 같은 취지이며, 법률 개정 권한을 가진 국회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 화장품 제조업 및 제조판매업 등록제가 입법예고(2011년 12월 12일)된 지 2개월이 채 안돼 시행된 것과 달리 화장품 판매업자 세분화 표기방안은 1년이 넘도록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에 “입법예고 후 40일간 의견수렴 과정에서 별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갈등 없이 진행되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통상 입법예고 후 개정안 공포까지 4~7개월이 걸리는 관행에 비하면 이번 개정안 추진은 늦어도 한참 늦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른 식약처 관계자는 “화장품 업종분류 개편안을 입법예고한 후 찬반 의견이 팽배해 정책 추진이 더뎠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김 대변인과 상반되게 말했다.

제조사인지 판매사인지 헷갈리는 현행 ‘제조판매업자’ 표기를 명확히 하기 위해 판매사를 ‘전문판매업자’와 ‘책임유통관리업자’로 세분화한다는 게 과연 소비자를 위한 행정인지 의구심이 간다. 더욱이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면 정책을 홍보하고 취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쉬쉬’하며 개정안이 무사히 국회를 통과하기만을 바라는 정부와 협회의 스탠스가 개정 명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이 직접 제조해 판매하거나 위탁생산 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유통해 업계 ‘빅2’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화장품 총 생산액(13조512억원) 중 아모레퍼시픽이 33.6%(4조3899억원), LG생활건강이 27.5%(3조5825억원)를 각각 차지했을 정도다. 업계 3위 애경산업(1.94%, 2528억원)과 큰 격차를 벌렸다.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기준 전제품의 15~20%를 위탁생산했다고 기자에게 확인해줬으며, LG생활건강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내 주요 화장품 제조사인 한국콜마·코스맥스 등은 주문자 요구대로 하청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위주의 회사에서 주문자의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기업으로 변신하면서 입지를 키워왔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각각 2015년, 2016년에 사상 첫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들 ‘빅2 제조사’에 다수의 소형 제조업체가 난립하는 게 제조판매업체 현황과 비슷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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