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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AI 의사와 경쟁하는 시대 올까 … ‘왓슨’의 명과 암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7-09-08 06:31:21
  • 수정 2020-09-13 16: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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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초내 치료법 제시, 암진료 탈집중화 기대 … 암종별 의사와 일치율 격차·책임 불분명 문제도
지방병원들은 환자가 ‘세컨드 오피니언’을 구하기 위해 서울권 병원에 가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왓슨 도입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사진은 가천대 길병원의 왓슨 참여 진료 모습.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의료계에서도 인공지능(AI)이 화두가 되면서 구글, IBM, 애플 등이 인공지능을 이용한 의료서비스를 개발 및 상용화하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12월 가천대 길병원을 필두로 건양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계명대 동산병원, 부산대병원 등이 IBM이 개발한 의료 인공지능시스템인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를 도입해 암환자 진료에 나섰다. 

왓슨 열풍이 불면서 인공지능 의사가 암을 비롯한 중증질환 치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암진료의 수도권 집중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반면 일각에서는 적용 질환 제한, 비용 대비 효과 미흡, 국내 고유 의료데이터 부족 등을 이유로 왓슨의 상용화는 시기상조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왓슨은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 암센터(MSKCC)에서 엄선한 의학저널 290종·교과서 200종 등 12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의학 데이터를 담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학습이 가능하다. 먼저 전문 코디네이터와 전문의가 환자를 상담한 후 나이·몸무게·전신상태·기존 치료법·조직검사·혈액검사·유전자검사 등 다양한 정보를 입력한다. 환자정보가 입력되면 왓슨은 축적된 방대한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약 10초 이내에 분석을 끝마치고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한다. 

왓슨의 정확도는 비교적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언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지난 12일 기준으로 총 85명의 환자에게 왓슨을 이용해 치료법을 제시했고 암 종류별로는 유방암 24명·대장암 23명·폐암 20명·위암 14명·자궁경부암 4명 순이었다”며 “의료진이 깜짝 놀랄 정도로 왓슨이 내놓은 결과는 의사의 판단과 대부분 일치했으며 환자도 의사 상담과 병행되는 왓슨의 치료법 제안에 신뢰가 더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길병원이 지난해 12월부터 폐암,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위암, 자궁경부암 환자 85명에게 왓슨을 적용한 결과 의사들의 치료법과 왓슨이 제시한 치료법이 80~90% 일치했다.
인도 방갈로르 미니팔종합암센터에선 150명의 환자가 폐암은 96.4%, 대장암 81.0%, 직장암은 92.7%의 일치율을 나타냈다. 태국 범룽랏국제병원은 왓슨과 암 전문의의 치료법이 83%의 비율로 같았다.

왓슨은 ‘빅5’ 등 초대형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지방병원이나 기타 수도권병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특히 지방병원은 환자들이 다른 병원의 의견인 ‘세컨드 오피니언’을 구하기 위해 서울권 대형병원에 가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왓슨 도입을 적극 고려하는 분위기다. 이언 교수는 “의사 1인당 환자 200명을 보는 구조는 폐해가 크다”며 “인공지능 의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암환자 진료의 탈집중화가 이뤄지면 의료 비용이 줄고 의료의 질은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왓슨이 진료의 편의성과 정확도를 높여주긴 하겠지만 인간의사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왓슨은 의사가 환자의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야만 올바른 치료법이 제시되고, 이 과정에서 실수가 나오면 잘못된 치료법이 도출될 수 있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의학과 교수는 “수술용 도구가 없으면 외과적 시술이 불가능하듯 인공지능은 의사를 보조하는 새로운 도구로 보는 게 맞다”며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겠지만 의료 분야만큼은 인공지능을 사람의 경쟁 상대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언 교수도 “왓슨을 활용하는 이유는 의료진과 환자의 진료 편의성을 높이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며 “왓슨을 마치 ’인간 의사‘처럼 과장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비용도 문제다. 왓슨을 도입 및 운영하는 데 연간 10억원 가까운 비용이 소모되는 데다 왓슨이 아직 국내 의료법상 의료기기로 분류되지 않아 환자로부터 이용료를 받을 수 없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이 아니라면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암종별로 일치율이 많이 차이나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임상암학회(ASCO)가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대장암은 의사의 치료법과 왓슨이 선택한 치료법이 같을 확률이 70~80%였지만 전이성 대장암과 진행성 위암은 각각 40%, 49%에 그쳤다. 또 직장암은 85% 일치했지만 폐암은 일치율이 17.8%에 불과했다. 같은 유방암이더라도 삼중음성유방암은 67.9% 일치율을 기록했만 HER2양성유방암은 35%로 낮았다. 왓슨은 미국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한국인에게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왓슨이 제안한 진단을 따랐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모호한 것도 논쟁거리다. 환자는 기계관리 책임을 맡은 병원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고, 병원은 기계를 공급한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나 관련 법은 아직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문제로 국내 암환자 진료의 90%가량을 차지하는 ‘빅5’를 포함한 서울권 상급종합병원들은 아직 왓슨 도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S병원 관계자는 “수 년에 걸쳐 암진료를 위한 다학제 협진체계와 인프라를 갖춘 데다 의료진의 역량이나 암 치료성적 등을 고려할 때 굳이 왓슨을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다만 인공지능 자체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의료계에서도 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많아 예의주시하면서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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