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 국민의료비가 총 105조원으로 이 중 국고 및 보험료로 구성된 공적재원이 56.5%를 차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73.1%보다 현저히 낮았다고 21일 밝혔다. 민간의료보험과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민간재원은 43.5%를 차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보장 40주년을 맞아 국내 약가결정 과정·사후관리제도 등 약품비 관리제도를 총 정리한 ‘한국의약품 가격결정 및 상환 정책’ 보고서를 최초로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한 각 국의 보건부·보험자 등 의약품 관련 정책 결정기관의 네트워크인 PPRI(의약품가격결정·상환정보, Pharmaceutical Pricing and Reimbursement Information)가 제시한 ‘PPRI 의약품정책 견본(PPRI Pharma Profile Template)’을 기초로 제작됐다. 보고서에는 국내 보건의료 체계, 의약품시장 현황, 의약품 가격 결정 절차, 사용량 관리 등에 관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PPRI는 세계 약가·급여 결정방법 등 약품비 관리체계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공유하고 있으며, 이 활동에 모든 유럽연합(EU) 회원국(총 28개국)과 한국·캐나다 등 비유럽 국가 등 총 46개국에서 90개 이상의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약 20개국이 PPRI 의약품정책 견본을 이용한 자국의 PPRI 보고서를 제작, 웹사이트에 공개해 약품비 관리제도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4년 국민보건계정’ 보고서에 따르면 공적재원의 81.9%는 건강보험에서 나왔으며, 건강보험 재원은 80% 이상을 보험료 수입에 의존했다. 민간재원 중 84.7%(약 38조7000억원)는 가계가 직접 부담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국민의료비는 2005년 5%, 2010년 6.4%, 2014년 7.1%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의료비 지출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선 허가된 의약품 중 일부를 선별해 건강보험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제약회사가 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을 보험급여 목록에 등재하려면 이 약의 비용 대비 효과를 입증한 자료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해야 한다. 대체가능한 치료법이 없고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질환의 약제는 필수의약품으로서 비용 대비 효과를 입증하지 않아도 급여 목록에 등재될 수 있다.
심평원은 소비자, 의약단체,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설치해 신약의 보험급여 적정성을 평가하고 있다. 급여등재 여부가 결정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약회사와 협상해 상한금액(보험약가)을 정한다. 협상이 필요 없는 제네릭의약품은 산정식에 의해 보험약가가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최종적으로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거쳐 상한금액을 정해 발표하면 해당 의약품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시판허가는 받았으나 건강보험 목록에 등재되지 않은 의약품은 비급여의약품으로 약값을 개인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복지부는 건강보험급여 선별등재제도가 실시된 이후 제약사가 허가신청을 한 후부터 약제급여 적정성평가까지 240일 이상이 소요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 ‘허가·보험약가 평가 연계제도’를 마련했다. 이 제도 시행으로 환자에 신속하게 공급해야 하는 신약 등 보건복지부 장관이 따로 공고하는 약제에 한해 식약처의 허가 절차가 종료되기 전에 제약회사가 심평원에 약제 급여적정성 평가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항암제는 점증적 비용·효과비(Incremental Cost-effectiveness Ratio, ICER)가 높은데도 요양급여 대상 약제로 인정했으며, 2014년에 위험분담제도 도입했다. 위험분담제는 약효의 유효성 관련 불확실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제약회사와 보험자(건강보험공단)이 분담하는 제도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노력에도 신약의 경제성평가 기준을 개선하고, 등재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이밖에 약가협상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보험 상한금액을 정할 수 있는 ‘약가협상 생략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예컨대 기존 계열의 신약은 제약회사가 대체약제의 가중평균가보다 90% 이하로 낮은 금액을 수용하면 약가협상을 생략할 수 있다.
제네릭의약품은 오리지널의약품과 가치에 차이가 없다는 측면에서 ‘동일성분 동일가’ 원칙이 적용되므로 정해진 산정식에 따라 보험상한금액이 결정된다. 제네릭의약품의 상한가는 첫 제네릭이 등재된 후 1년 동안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약 상한금액의 59.5% 이하로 정해진다. 오리지널약의 상한가는 첫 제네릭이 등재된 후에 기존 가격의 70%로 자동 인하된다. 최초 제네릭 진입 후 1년이 지나면 오리지널약과 제네릭 모두 53.55%로 인하된다.
건보공단은 보고서를 영문으로 번역한 후 PPRI 웹사이트(whocc.goeg.at)에도 게재해 한국의 약품비 관리제도에 관심있는 해외 보건당국이나 보험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장미승 공단 급여상임이사는 “이번 보고서 발간은 중국, 유럽 등이 한국의 약가제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의 약품비 관리제도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대내적으로는 제약업계·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의 약품비 관리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제도 운영을 원할히 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국내 제도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해외 보건당국·보험자 등과의 교류를 확대해 국내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