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와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라도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 없다면 별다른 감동 없이 밋밋해진다.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프로포즈도 음악이 없다면 감동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음악을 질병치료에 적용하는 ‘음악치료(사운드테라피·뮤직테라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직 음악의 질병치료 효과를 확실히 입증할 임상근거는 부족하지만 전문가들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론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행 연구에서 음악치료는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정신과질환, 치매 등 신경계질환은 물론 암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줄이는 데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음악치료에 관심을 보였으며 최근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음악치료저널이 발간되는 등 음악의 활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본격적인 음악치료는 2차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 미국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미국 향군병원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정신적 외상을 입은 군인들이 다수 입원한 상태였다. 이 병원 의료진은 입원 군인들에게 음악을 들려준 결과 정신적 안정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건강에 도움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1950년 미국 국립음악협회에서는 음악치료를 공식 명칭으로 채택하고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미국 음악치료협회(American Music Therapy Association)는 음악치료를 “정신과 신체 건강을 복원(rehabilitation) 및 유지(maintenance)하고, 향상(habilitation)시키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몇 년전부터 유행중인 싱잉볼(singing bowl) 테라피는 티베트의 전통 민간치유법으로 기존 음악치료에 진동이라는 개념을 더했다. 네팔이나 티베트에서 종교의식에 사용됐던 싱잉볼은 놋쇠로 만든 대야처럼 생긴 악기다. 막대기로 안쪽을 두드려 맑고 나직한 청아한 소리를 내는 게 특징이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서양 의학계에서는 질병치유법의 하나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싱잉볼을 문지르거나 치면 굵직한 화음과 진동이 퍼져간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은 상태에서 화음과 진동을 들으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정신과 근육이 이완돼 스트레스, 불안, 불면증 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된다. 싱잉볼 크기와 형태에 따라 각각 다른 소리와 진동이 발생하므로 두세 개 싱잉볼로 대상자에게 맞는 화음을 찾아낼 수 있다.
진동을 활용한 음악치료는 ‘인체는 세포로 구성돼 있고, 모든 세포는 진동한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다. 긍정론자들은 “인간은 음악을 청각적으로 듣지만 소리의 파장이 지닌 물리적인 힘을 통해 촉각적으로도 흡수하므로 소리가 가진 파동을 받아들이면 뇌파가 자극돼 심신이 안정되고 신체 전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개념은 호흡을 조절해 명상하는 데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음악치료의 효과를 강조해 온 미첼 게이너(Mitchell L.Gaynor) 미국 코넬대 의대 교수는 소리와 진동을 활용하면 신체 내 진동을 세포 수준까지 확장해 심신을 조화롭게 하고 자가치유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평소 모음(母音) 발음을 자주 내면 이런 효과가 배가된다고 한다. 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선이 천왕성의 위성에서 녹음한 소리가 티베트 싱잉볼 소리와 거의 동일하므로 소리치료가 우주와의 조화를 이루는 데 도움된다고 주장하지만 명확한 임상근거는 입증되지 않았다.
한현정 명지병원 신경과 교수는 “음악요법은 기억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자극하고 행복감을 고취시켜 치매를 예방 및 완화하는 데 도움된다고 볼 수 있다”며 잠이 오지 않을 땐 편안한 분위기의 음악을 들으면 더 쉽게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클래식을 ‘잠이 오는 음악’이라고 표현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히해주는 잔잔한 피아노와 현악기의 소리, 반복되는 선율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오늘날까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의 곡들은 하나의 리듬을 수많은 변주를 통해 반복하기 때문에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이다.
음악은 정신과질환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수술 후 통증도 줄여준다. 음악이 스트레스호르몬을 낮추고 옥시토신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통증을 줄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음악이 뇌로 향하는 통증 신호를 줄인다는 주장도 있다. 음악과 통증 등 자극은 뇌의 변연계 및 시상하부에서 감각자극으로 범주화되므로 수술 중이나 후에 환자가 음악을 들으면 통증이 발생하더라도 뇌가 상대적으로 덜 감지하게 된다. 즉 통증이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음악이 부정적인 신경신호를 줄여 통증에 대한 자각을 최소화하는 셈이다. 효과를 높이려면 환자가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음악을 선곡하는 게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