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은 신진대사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하고, 전반적인 신체기능과 면역력을 유지하므로 문제가 생기면 여러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음식 섭취에 어려움을 겪고 정신적·신체적 문제가 동반되는 식이장애 환자가 차츰 늘고 있다.
식이장애는 ‘거식증’으로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대식증’으로 불리는 폭식증으로 구분된다. 간혹 인터넷 등에서 ‘다식증’이라는 용어를 볼 수 있는데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다.
19세기 중반 처음 보고된 거식증은 현재 마른 체형(보통 체질량지수(BMI,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 ㎏/㎡) 17 이하)인데도 스스로 뚱뚱하다는 생각에 음식 섭취를 제한, 극심한 저체중을 유발한다. 체중 증가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을 호소하지만 식욕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리 레시피를 달달 외우거나, 음식을 만든 뒤 데코레이션해 예쁘게 그릇에 담거나, 음식을 집안 곳곳에 숨기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음식과 관련된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인 영양실조와 달리 빈혈 증상이 없고 혈액검사 수치도 대부분 정상 범위다. 외관상 피골이 상접하지만 초기엔 일상에 지장이 없어 가족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쉽지 않다.
대식증은 신경성 폭식증과 폭식장애로 구분된다. 많은 음식을 단시간 내에 허겁지겁 먹은 뒤 죄책감을 느끼는 점은 같지만 폭식 후 반응이 다르다. 폭식장애 환자는 폭식 뒤 칼로리를 소비하지 않아 비만한 경우가 많고 대부분 자신의 증상을 모른다. 반면 신경성폭식증 환자는 입에 손을 넣어 억지로 구토하거나, 정상인보다 훨씬 강한 강도로 운동하거나, 설사약·이뇨제 등을 먹어 섭취한 음식을 배설시키는 부적절한 보상행동이 동반돼 실제 체중은 정상인 경우가 많다.
이들 식이장애는 요즘 내과질환이 아닌 정신질환의 하나로 본다. 홍나래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평소 부족한 자신감,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 스트레스 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음식을 먹을 경우 식이장애가 동반될 수 있다”며 “과도한 다이어트의 부작용, 폭식에 대한 죄책감, 날씬한 몸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 신경전달물질 및 에너지대사 변화 등도 발병 원인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당뇨병이나 저혈당증도 폭식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인 식이장애와는 구분된다.
마른 체형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회 분위기가 가장 문제다. 날씬한 몸이 무조건 옳다는 왜곡된 시선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고,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여기며 식이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뚱뚱하다’는 말에 상처받고 트라우마가 생겨 식이장애로 굳어진다.
거식증은 완벽주의적인 성격 또는 그런 성향을 가진 부모, 우울·불안·분노·공허함·외로움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신경성 폭식증은 어린 시절 충동조절장애나 분리불안 증세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 사람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으며, 폭식장애는 대뇌에서 분비되는 식욕억제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이상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홍 교수는 “식이장애를 방치하면 만성적 탈수, 저칼륨혈증에 의한 신장기능 저하, 변비, 복통, 추위내성 저하, 무기력, 우울증, 저혈압·부정맥 등 심혈관계 문제, 골다공증, 치아 법랑질 부식 등이 동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잦은 구토로 역류성식도염이 동반되거나, 과도한 설사로 체내 전해질이 불균형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 질환 환자의 약 10%가 기아, 자살, 전해질 불균형에 의해 사망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거식증은 매일 체중을 측정하고 몸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음식을 먹어도 살이 급격하게 찌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신경성 폭식증은 인지행동치료로 일정한 식습관을 엄격히 유지하고, 습관적으로 구토나 설사를 하는 행위를 제한하도록 한다. 평소 느끼는 스트레스와 정서적인 어려움을 타인과 대화로 풀도록 유도하면 식이장애 증상을 예방 및 억제하는 데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