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화를 내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다. 그러나 적절한 사람·시간·정도·목적·방법 안에서 화를 내기는 대단히 어렵다.” 적절한 강도로 화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화를 무조건 참는 것도 병이 될 수 있지만 통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신의 건강 뿐만아니라 사회에 큰 피해를 끼친다.
평소 ‘욱’하는 감정에 충동적으로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사소한 일에도 다짜고짜 핏대를 올리며 화를 내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분노 자체가 병적인 감정 반응인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반사 작용으로 위협을 느낄 때 감정과 동기를 관장하는 뇌 속 안와내측전전두피질(Orbitomedial-prefrontal cortex)이 활성화되면서 분노감이 일어난다.
짐승도 위협을 느끼면 털을 곤두세우고 이빨을 드러내며 분노를 나타낸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5장5절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구절에서 온유는 초기 그리스어로 야생마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온 말이다. 인간에게 온유는 분노를 다스리는 것과 매한가지다. 짐승과 달리 인간은 위협감을 느끼는 것 외에도 상대방이 자신에게 배려가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 화와 분노를 느낀다. 특히 이런 배려 부족이 고의적이라고 생각되면 분노감은 더욱 상승한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분노가 한번 표출되면 적정 강도를 유지하기 어려워 상대를 짓누르고 큰 정신적·심리적 충격을 준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적 관계상 수직으로 표출되는 분노, 예컨대 직장상사가 후배 직원에게 또는 선생이 학생에게 일방적인 분노감을 나타날 때 상대가 받는 충격이 더 크다.
지위가 높을수록, 권력이 막강할수록 분노를 참기 힘들어진다. 분노를 표출한 당사자는 스스로 힘세고 카리스마가 있어 자신의 분노와 말이 통한다고 착각한다. 화를 내면 카테콜아민,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등 교감신경물질과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증가돼 과대망상적 상태에 빠지거나 상대방을 이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이 상처를 받든 말든 무조건 성질부터 내는 사람은 감정이 가라앉은 뒤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분노가 잘못 표출돼 엉뚱한 희생양을 삼아 분풀이하는 불상사도 일어날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려고 화를 냈는데 오히려 상대가 ‘착한 척 하더니 그럴 줄 알았어’라며 스스로 잘못을 합리화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갖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잦은 분노는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화를 내면 시원한 느낌이 들어 참는 것보다 건강에 좋다고 여겨지지만 잦은 분노와 적대감은 오히려 심장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분노할 때 신체는 불안과 공포를 느낄 때와 비슷하게 반응한다. 온몸이 긴장 상태에 빠져들면서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솔 분비가 증가한다. 교감신경이 강하게 자극받으면서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리 뛴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심장과 뇌는 물론 몸 전체가 초비상 상태가 된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의대의 연구 결과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호모시스테인(Homocysteine)’이라는 화학물질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모시스테인은 혈관 내벽을 산화시켜 손상시키고, 핏덩어리를 만들어 동맥경화·뇌졸중 같은 심혈관계질환을 유발하는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분노를 참는 것도 병이 된다. 가슴 속에 울화가 쌓이는 화병은 방치할수록 점점 쌓이기만 하고 이것이 장기화되면 우울증, 고혈압 등으로 악화돼 초기에 현명하게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김종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최근 뉴스 때문에 생긴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늘었다”며 “울화를 나만의 문제로 돌리기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표출하면서 이성적 해답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단 분노감이 든다면 화를 내기 전 상대방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게 좋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내 마음도 다치게 하는 일이다. 즉 그럴 가치가 없는 상대라면 그냥 관계를 멀리하거나, 긍정적인 마음을 거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화를 낼 가치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나를 속상하게 했는지를 말해줘야 한다. 격분한 나머지 구체적인 이유 없이 폭언을 내뱉으면 마음의 상처만 커지고 한번 틀어진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울분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사건의 본질에 대해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문제를 공감하는 사람과 대화해 감정을 털어놓으면 혼자 속으로 부글부글하면서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보다 기분이 나아지는 데 도움된다”고 조언했다.
때로는 시간이 약이 된다. 폭발 직전의 분노는 1~3분 내 사라진다. 평상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면 이를 회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리를 피한 뒤 심호흡을 하면서 자신을 진정시키고 ‘별 것 아냐’, ‘괜찮아’ 등 혼잣말로 자기최면을 건다. 클래식음악을 듣거나 일기를 쓰는 것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효과적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분노했던 상황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섭섭한 것을 이야기한 뒤엔 다시 칭찬을 해주는 게 좋다. 그래야 상대방이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개선하는 데 기분 좋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뜻밖에 거울로 얼굴을 보는 것도 화를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과 같다. 화가 치밀어 미간이 잔뜩 찡그려진 얼굴은 불편한 마음을 반영한다. 주변 사람도 이러한 모습 때문에 불편하게 된다. 화 났을 때 모습을 거울로 비쳐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표정을 바꿔야 한다. 자신이 행복하거나 즐거워했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평소 화가 잘 나거나 자주 분노감을 느낀다면 가까운 공원이나 숲을 찾는 것도 도움된다. 도시 환경은 각종 공해, 소음, 여기에다 스트레스 자극까지 많다. 반면 숲 환경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풍부하다. 이런 환경에선 부교감신경이 자극받아 심신이 안정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엔도르핀 분비가 활성화된다.
산책이 여의치 않다면 사무실에서 식물을 길러본다.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 조절에 도움을 주며, 대인관계에서 나오는 각종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력도 향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