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취’는 수천 년 전부터 인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기원전 5세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저서에 언급됐으며, 유대인의 교육서인 ‘탈무드’엔 입냄새가 심한 아내와는 이혼해도 좋다는 다소 황당한 판결문이 실려 있다.
구취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주변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어 신경이 많이 쓰인다. 특히 하루 세 번 꼼꼼하게 양치해도 역한 냄새가 가시질 않으면 대화를 꺼리게 돼 대인관계까지 망칠 수 있다.
흔히 잇몸질환이나 치은염, 충치 등이 입냄새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구강내 원인으로 인한 구취는 85%이고 나머지는 전신질환에 의해 발생한다. 치주질환이 없고 평소 양치질을 깨끗이 하는데도 입냄새가 난다면 전신질환 유무를 확인해보는 게 좋다.
몸속에서 입냄새를 유발하는 대표 질환 중 하나는 만성 소화불량을 초래하는 신경성·기능성 위염이다. 홍정표 경희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는 “위에 염증이 생기면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노폐물이 세균에 의해 분해되면서 질소화합물이 나와 구취가 발생하고 상복부통증과 불편감이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역류성식도질환 환자도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위산에 의해 식도에 염증이 생길 경우 위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막지 못해 입에서 악취가 난다. 위암, 장내 감염, 장폐색 등도 비슷한 냄새가 올라온다.
수면시 머리를 15㎝ 이상 높게 해 위산 역류를 막고 밤참, 기름진 음식, 초콜릿, 술, 담배, 커피 등을 삼가야 한다.
당뇨병도 구취의 원인이다. 이 질환은 내분비계에 장애가 생겨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탄수화물 분해능력이 떨어진다. 이로 인해 지방대사가 활성화되면 아세톤 성분이 입으로 나와 구취를 풍길 수 있다.
신장질환이나 심각한 만성 신부전증 환자는 배설기능이 떨어져 혈액과 침 속의 요소 농도가 증가하고 일부가 암모니아로 변해 입에서 소변(암모니아) 냄새가 나기도 한다.
특히 신부전에 의한 요독증이 있으면 숨 쉴 때마다 생선비린내가 난다. 폐질환 환자도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게 특징이다. 입안에서 썩은 고기 냄새가 날 땐 구강염·치주염·잇몸염증·치조농루 등 구강질환, 축농증·비염·편도선염 등 코·목질환, 폐렴·기관지염 등 호흡기질환 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간경화증, 위장관출혈, 백혈병은 입에서 피 썩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항생제 또는 천식치료를 위한 흡입스테로이드제제를 장기간 사용한 사람도 입냄새가 발생하기 쉽다.
젊은 여성은 다이어트로 인해 입냄새가 날 때가 많다. 홍 교수는 “체중 감량을 이유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신진대사 과정에서 탄수화물 대신 지방이 분해돼 냄새를 유발하는 케톤이라는 화학물질이 생성된다”며 “케톤이 호흡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면 입냄새가 나며, 가벼운 식사나 과일주스를 섭취하면 구취가 완화된다”고 말했다.
또 공복 상태에선 침 분비가 줄어 세균을 없애는 자정능력이 사라져 치주질환과 구취 발생률이 높아진다. 비타민·철분·아연 등 무기질 결핍도 입을 마르게 해 구취를 유발할 수 있어 무리한 공복다이어트보다는 균형잡힌 영양 섭취와 운동을 병행하는 게 좋다.
드문 확률로 코와 주변 얼굴뼈 속에 위치한 빈 공간인 부비동에 콧물 등 분비물이 고여 입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 부위에 콧물이 가득 차 코 뒤로 넘어가는 것을 후비루라고 한다. 이 때 넘어온 콧물을 삼키면 혀 뒷 부분에 콧물이 고이고, 여기에 혐기성 박테리아 번식이 활발해져 입냄새가 발생한다.
구취 정도는 3분 동안 입을 다물고 ‘후’하고 공기를 불은 뒤 냄새를 맡아 확인할 수 있다. 병원에선 휘발성 황화합물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할리미터(Halimeter), 가스크로마토그라피(Gas Chromatography)검사, 타액분비율 검사, 혈액검사, 간이정신진단검사, 구강 및 치과방사선검사 등으로 구취 원인을 파악한다.
규칙적으로 아침식사를 하면 혀 표면의 설태가 어느정도 제거되고 침 분비가 촉진된다. 육류 중심의 식사습관을 신선한 야채, 채소, 과일 등 저지방, 고섬유질 식사로 바꾸는 것도 입냄새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구강건조증을 야기하는 약을 끊고 술이나 담배를 삼가는 것도 도움된다. 무설탕껌, 박하사탕, 잦은 물 섭취는 침 분비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다.
양치가 어려울 때 사용하는 구강세정제는 냄새를 일시적으로 없애주는 데 그친다. 너무 자주 사용하면 치아나 입안 점막이 변색되고 입맛도 변할 수 있다. 특히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구강세정제는 입안을 더 건조하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구취와 치주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난 직후 나는 입냄새는 정상적인 현상이다. 자고 있을 땐 침 분비가 줄어 입 안에 세균이 다량 증식하기 때문이다. 수면무호흡증이나 코골이 등으로 입으로 호흡하는 사람은 침 양이 더욱 줄어 수면 직후 입냄새가 더 심하다.
홍 교수는 “평소 양치질을 꼼꼼이 하고, 정기적으로 스케일링도 받았으며, 치과 검진으로 정확한 구취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찾는 게 좋다”며 “정기적인 치과 검진은 역류성식도염, 당뇨병, 위장질환, 신장질환, 간질환, 편도선, 축농증, 비염 등 원인질환을 진단하고 구취도 없애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