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회사 영업사원 강모 씨(35)는 업무 특성상 생활이 불규칙하고 술자리가 많아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달고 산다. 2주 전부터 앞가슴 쪽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별일 아니겠거니’하고 그냥 넘어갔다. 1주일 뒤 가슴뿐만 아니라 등쪽에서도 통증이 느껴지자 혹시 심장질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나 병원을 찾았더니 역류성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추운 날씨 탓에 가슴통증(흉통)이 발생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을 의심할 때가 많지만 다른 질환이 원인인 경우도 꽤 많다. 흉통은 말 그대로 가슴 부위에 나타나는 통증으로 원인이 다양하다. 흔히 떠오르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이 원인인 경우는 전체 흉통 환자 중 10~20%에 불과하다.
정성우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흉통의 절반 가까이가 식도나 위장관 등 소화기계 문제로 발생하고 폐, 흉막, 췌장, 담도 등에 발생한 염증이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며 “가슴 또는 상복부 근육, 갈비뼈, 척추 등 근골격계 문제로 흉통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흉통 원인이 다양한 만큼 평소 구별법을 알고 있어야 빠른 치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소화기계 장기 중 식도와 위는 가슴 부위에 몰려 있어 문제가 생길 경우 협심증에 의한 흉통과 혼동하기 쉽다. 정 교수는 “역류성식도염은 협심증 등 심장질환 증상과 거의 비슷하다”며 “심장질환 원인 흉통과 다른 점은 앞가슴뿐만 아니라 등쪽에서도 통증이 느껴지고, 흉골 아래쪽과 명치에서 작열통이 집중적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증상은 대개 식사 중이나 식후에 발생해 길면 몇 시간 동안 지속되고, 등·팔·턱 등으로 통증이 퍼져나가는 방사통이 동반된다. 증상을 완화하려면 잘 때 상체를 위로 15㎝ 가량 높여주고, 우유나 물을 마시면 위산이 중화돼 일시적으로 통증이 감소한다.
급성 췌장염과 담낭질환 통증은 명치 부분이 심하게 아파 역류성식도염과 헷갈리기 쉽다. 선 자세에서 상체를 웅크리면 증상이 완화되는 게 특징이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 심장 문제로 발생하는 흉통은 움직임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허성호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장질환은 혈관이 좁아진 상태여서 격한 운동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등 움직임이 많아지면 심장에서 피를 많이 사용하게 돼 통증이 심해진다”며 “숨이 멈출 것 같이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이 앞가슴에서 왼쪽 어깨와 팔로 퍼져가고 여기에 가슴이 조이는 느낌, 뻐근함, 답답함, 가슴이 뜨겁게 타는 듯한 증상이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즉 소화기계 문제로 인한 흉통은 통증이 등으로, 심장 문제로 발생한 흉통은 왼쪽 팔과 어깨로 번지는 게 차이점이다.
협심증은 가만히 쉬면 통증이 사라지지만 심근경색은 움직임을 멈춰도 가슴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30분 이상 지속된다. 후자일 경우 구토감, 진땀이 동반되고 심하면 심장마비로 급사할 수 있어 최대한 빨리 가까운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갈비뼈에 연결된 연골(늑연골)에 염증이 발생하는 늑연골염도 흉통을 유발할 수 있다. 상체를 움직일 때마다 통증과 함께 ‘뚝’ 소리가 나고 심호흡을 하면 쿡쿡 쑤시는 통증이 느껴진다. 아픈 곳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통증이 심해지는 압통이 나타나는 점에서 심장질환 흉통과 다르다. 헬스나 수영 같은 무리한 운동이 원인이므로 20·30대 젊은층이 흉통을 호소하면 늑연골염인 경우가 많다. 오른쪽이나 왼쪽 옆을 보고 누우면 증상이 완화된다.
경추·흉추 퇴행성관절염에 의한 흉통은 상체 움직임, 특정 자세, 기침, 재채기 등으로 심해진다. 대상포진 환자는 스치기만 해도 아플 정도로 흉통이 심하고 4~5일 뒤 전형적인 대상포진 수포가 나타난다.
흔하진 않지만 신경과 혈관 구조물이 갈비뼈와 근육에 눌려 통증이 유발되는 흉곽출구증후군도 흉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머리, 목, 어깨, 겨드랑이 부위가 아프고 특히 팔 안쪽에서 통증이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폐질환인 폐색전증에 의한 흉통은 심근경색과 비슷하다. 가만히 쉬고 있는데 갑자기 통증이 생기면서 호흡곤란, 빈호흡, 청색증 등이 동반된다.
화병이나 불안감 등 정신적인 문제도 흉통 원인 중 하나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근육이 과도하게 수축되거나, 왼쪽 가슴 밑 부분에 칼로 찔리는 듯한 느낌이 1분 내외로 지속된다. ‘숨이 막힐 것 같다’ ‘어지럽다’ ‘가슴이 뛴다’ 등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과호흡, 입 주위의 감각이상, 무력감, 손저림, 한숨, 히스테리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맥박이 빨라지면서 가슴이 찌릿하거나 답답하면 스트레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정신적 문제로 인한 흉통은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만 들어도 쉽게 사라지는 게 특징이다.
평소 커피를 자주 마시거나 중년인 여성의 경우 유방통을 흉통으로 오인하기 쉽다. 유방통은 월경 주기와 관련된 주기적 유방통과 이와 무관한 비주기적인 유방통으로 나뉜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기적 유방통은 대부분 양쪽 가슴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원인으로 신경과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젖분비호르몬인 프로락틴의 과다 분비, 카페인 및 동물성 지방 과다 섭취, 필수지방산 부족 등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비주기적 유방통은 40세 이후 폐경 전·후에 가장 흔하며 유방 부위를 다쳐봤거나, 이 곳에 염증 또는 다른 병변이 나타날 때 발생할 수 있어 관련 검사를 받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