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후 시장경제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내성적인 성격보다 외향적인 성격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성격이 수입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다른 사람과의 협상과 상호작용을 통해 조직문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물건을 팔고 매출을 올리기에 유리한 외향적인 인재상을 선호했다.
심지어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야 할 단점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말수가 없고 내성적인 학생은 문제아로 취급받았고 큰소리를 내는 리더로 성장시키기 위해 웅변학원을 다니며 성격을 바꾸는 훈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심리학·유전학·뇌과학이 발전하면서 내향성과 외향성은 능력 차이가 아닌 단순한 개성일 뿐이며 내성적 성격이 오히려 장점이 많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내성적인 사람은 성격이 소심하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하지만 소심함은 대담하지 못하고 조심성과 겁이 지나치게 많은 것으로 엄연히 다른 의미다. 주변 평가를 의식해 내성적인 성격을 자책하고 창피해하면서 억지로 바꾸려다보면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존감까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내성적인 성격은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성격 유형’에 불과하며 장점도 많다. 내성적 성격은 오히려 깊이 있는 생각과 사고력, 뛰어난 공감능력에 따른 진실된 소통과 인간관계, 몰입에 따른 추진력 면에서 외향적 성격보다 우수해 조직의 리더가 되기에 적합하다.
성격유형검사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에 따르면 외향적인 사람은 주로 외부세계에 관심을 집중하고 사교적이면서 활동적이다. 말로 표현하기를 즐기고 외부자극을 통해 배우는 방식을 선호해 경험한 뒤 이해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낸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더 집중하고 조용하며 혼자만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생각이 많고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낀다. 이해한 다음에 경험하는 방식을 선호해 생각을 마친 뒤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임상근거는 아직 불충분하지만 성격에 따라 뇌 모양과 구조도 조금씩 차이난다. 여러 해외연구 결과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휴식 시간에도 뇌 활동이 활발하고, 뇌혈관이 더 복잡하다. 특히 뇌세포와 뇌혈관이 언어·계획·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 부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양상을 나타낸다.
또 내성적인 사람은 도파민수용체 유전자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아 호기심·창의성·의욕 등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보다 집중력·논리적사고·기억력 등을 높여주는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도파민은 교감신경, 아세틸콜린은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될 때 분비된다. 내성적인 사람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사색할 때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아세틸콜린이 분비돼 행복감을 느낀다.
유명한 발달심리학자 제롬 케이건(Jerome Kagan) 하바드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감각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편도체가 예민한 아기가 내성적인 성격으로 성장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외부환경에 예민한 고반응성 아이는 집중력과 통찰력이 외향적인 아이보다 우수하다. 외향적인 아이들이 보상에 민감한 반면 내성적인 아이들은 내적인 충만감을 더욱 중시해 보상 없이도 주어진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흔히 성공한 리더는 다수가 외향적인 성격인 것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최근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가 미국내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성격을 조사한 결과 40%가 ‘내성적’이라고 응답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 전 의장,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등은 내성적 성격의 위인으로 유명했다.
주변 환경이나 개인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내성적인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고 분별력이 있다. 외향적인 사람은 위험이 뒤따르는 난제에 맞닥뜨리면 ‘해보자’면서 다소 즉흥적인 결정을 하는 반면 내성적인 사람은 ‘이 일을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며 신중하게 접근해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전설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성공하는 투자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지능지수가 아닌 자제력”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또 내성적 사람은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 좋은 카운셀러가 될 수 있고 의견 수렴에도 능하다. 평소 말수가 적고 신중한 태도 덕분에 친구 또는 지인의 신뢰를 얻어 의사결정 과정에서 오히려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한다.
겸손의 미덕을 갖추고 실수, 불완전, 한계 등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사회생활에서 강점이 될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끈기를 갖고 대처하는 것도 장점이다.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난제를 풀 때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총명한지가 아니라 얼마나 끈기있게 대처하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내성적인 사람이 반드시 소설가는 아니지만 소설가 중 상당수가 내성적인 성향을 가졌다. 쓰기를 좋아하는 기질은 온라인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온라인 네트워킹’을 하는데 도움된다. 사내 직원이나 고객, 친구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에서 친밀감을 높여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결국 사회적인 관계의 범위는 외향적인 사람이 넓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관계의 질적인 측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 직장이나 교우 관계에서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 사람을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무엇인가 결여됐다고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변 시선 탓에 내성적인 성격을 억지로 바꾸려는 사람이 많지만 타고난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나서기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침묵을 지키는 무뚝뚝한 사람이 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성격을 바꾸기 위해 지나치게 인위적인 노력을 하다보면 마음도 지치고 자기 성격이 갖는 긍정적인 면이 사라지면서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다. 내성적인 사람은 무조건 성격을 바꿀 게 추진력, 깊은 인간관계, 침착함, 사고력 등 자신만의 장점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