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보이고 싶은 욕구에 고가 화장품을 구입해보지만 표피층을 매끄럽게 한들 근본적인 노화를 막을 수 없다. 특히 얼굴살이 빠지거나 푹 패이며 주름이 지는 현상은 의학적 처치 없이는 제거하거나 교정하기 어렵다.
이를 간단하게 교정하는 게 ‘더마필러’(derma filler)다. 속칭 ‘조직 증강’을 목표로 피부 아래(진피층)에 다양한 안전물질을 주입해 볼륨을 채우거나 주름을 지워 피부조직을 보충하는 주사제 형태의 의료기기다.
국내 더마필러 시장은 2011년 400억원대에서 2014년 1000억원대로 급증한 이후 지난해 1500억원대로 성장하며 해마다 3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필러는 의료기기로 분류돼 제조 및 허가가 의약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이해 진입장벽이 낮다. 이 때문에 제약업계들의 진출이 두드러져 국산 50~60여종, 외국산까지 합하면 100여종이 넘는 필러 제품이 유통되는 상황이다.
최초의 외부 이물질 필러는 파라핀 등 미네랄오일을 주입하는 것으로 20세기 초에 상당히 유행했다. 심한 이물감, 육아종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유발되자 유럽에서는 1902년을 기점으로 사용 금지됐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을 겪으며 일본 화류계 여성들이 가슴에 실리콘 주입술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국가에서는 1960~1970년까지 성행했다. 1950년대에는 가슴확대 목적으로 액상 실리콘을 필러처럼 사용했지만 이 역시 안전성의 문제로 퇴출됐다.
이후 현재와 유사한 형태의 필러 시술은 1976년 이뤄졌다. 당시 ‘콜라겐 주사’를 맞은 환자가 탄생했고 이에 탄력받아 1981년에는 소에서 추출한 콜라겐 필러 ‘자이덤’, 1985년에는 ‘자이플라스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주사제 시장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이들 제품이 1세대 ‘콜라겐 필러’다.
콜라겐 필러는 수용성으로 진피 속에 주입되면 수개월 안에 인체에 흡수되는 과정을 거친다. 유지기간은 3~4개월로 짧고 시술 전 알레르기반응 검사를 거친 뒤 시술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소 콜라겐에 아크릴분자를 3대1 비율로 섞어 ‘PMMA(폴리메타크릴레이트, Polymethyl methacrylate, 인조뼈성분) 필러’가 등장한다. PMMA는 본래 정형외과에서 뼈시멘트용, 치과에서 인공치아를 만들 때 많이 쓰는 성분이다. 대표적인 제품이 ‘아테콜’(아테필, 벨라필)이다. 2006년 FDA 승인을 받았다.
유럽에서도 2001년 CE마크를 단 반영구필러가 출시된다. 폴리아크릴아마이드(PAAG , Poltacrylamide Gel) 성분으로 된 ‘아큐아마이드’(Aquamid)가 대표적이다. 아쿠아필링필러도 이 라인에 속한다. 미국성형외과학회는 이들 PMMA, PGGA 필러를 ‘반영구필러’로 규정했다.
하지만 반영구필러는 입자 표면이 고르지 못하거나 전극을 띠면 표면에 이물질이 달라붙거나 입자끼리 서로 뭉쳐 이물반응을 일으키고 육아종 등 부작용을 유발할 우려가 높다. 이들 필러는 지속기간이 2~5년으로 지속력이 오래 가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시술 후 불만족스러운 모양을 교정하기 어렵고, 제거하려면 외과적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수술 후에도 완벽히 제거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시술에 신중해야 한다.
이에 더 편안하게 교정이 가능하고 안전한 제품을 개발에 나서 ‘필러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히알루론산 필러(Hyaluronic Acid)가 등장했다. 2세대 더마필러로 필러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이다. 업계에서는 히알루론산 필러 시장을 약 1000억원대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히알루론산 필러는 생체적합성, 안전성 측면에서 유리해 필러 시술 현장에서 애용된다. 히알루론산은 관절액, 연골, 피부 등에 다량 존재하는 성분으로 친수성이 매우 뛰어나 자기 중량의 수백배 내지 천배에 이르는 수분을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고 있다. 60㎏ 성인이라면 총12g의 히알루론산이 발견되며 전체 50% 이상이 피부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초의 히알루론산 필러는 1996년에 등장한 ‘히알라폼’(Hylaform)이다. 이를 시작으로 스웨덴 큐메드(Q-MED) 사는 특허기술인 ‘비동물성 히알루론산’(NASHA, Non Animal Stabilized Hyaluronic Acid)으로 ‘레스틸렌’을 만들어 2003년 FDA 승인을 받았다.
히알루론산은 자기 중량의 수백 배 되는 수분을 응착시켜 피부에 볼륨을 만든다. 용도에 따라 입자 굵기를 다르게 만든다. 굵을수록 턱끝·콧대 등 윤곽을 개선하는 데 쓴다. 중간 정도의 입자는 뺨이나 팔자주름 등 볼륨이 빠진 부위를 채우는 데 용이하다. 가는 입자는 물광주사, 입술필러 등 부드러운 부위를 개선할 때 활용된다. 시술 후 히알라제 등으로 녹여 교정하거나 제거하는 것도 용이하고, 국산 제품도 대거 출시돼 인지도를 다지고 있다.
히알루론산 필러는 체내 성분과 비슷한 물질을 활용해 안전하지만 몸에 빨리 흡수돼 유지기간이 짧은 게 단점이다. 유지기간은 보통 10개월~1년 정도이다. 하지만 시술자의 술기 여하에 따라 필러를 맞고 짧게는 며칠 만에, 길어봐야 6개월만에 분해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필러의 품질은 입자의 내구성을 높이고 몸 안에서 시술 부위가 이동하지 않도록 안정화시키는 게 관건이다. 진피 가까이 주입하기 때문에 과욕을 부리면 혈관압박으로 피부괴사 등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높다.
3세대필러는 3~4년 전에 크게 유행했다가 현재는 인기가 저조한 ‘칼슘필러’다. 칼륨하이드록시 아파타이트(Calcium Hydroxy Apatite, CaHA)를 기반으로 만든 필러로 상대적으로 단단한 느낌을 준다. CaHA는 치아, 뼈 등에 들어있는 미네랄인 인산칼슘의 일종으로, 대표적인 제품이 멀츠의 ‘래디어스’(RADIESSE)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뷰티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피부과 의사는 “과거엔 칼슘필러 중 래디어스를 많이 사용했다”며 “대부분의 동물 피부에는 히알루론산 성분이 많고 뼈에는 칼슘 성분이 많다는 점을 들어 콧대 등 강한 뼈대를 세울 때에는 칼슘필러를 사용하고, 부드러운 조직에 볼륨감을 줄 때엔는 히알루론산 필러를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칼슘필러는 현미경으로 봤을때 칼륨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 성분이 비교적 단단한 구슬(microsphere) 형태를 이뤄 시술 후에도 힘을 많이 받는 콧대를 세울 때, 코끝 부위를 뾰족하게 높이고 싶을 때, 턱끝이나 이마 등 뼈 위에 바로 필러를 주입할 경우에 유용하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칼슘필러가 래디어스와 대웅제약의 ‘페이스템’(facetem) 등 두 종류만 출시돼 대다수 회사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히알루론산 필러 시장에 비해 선택의 폭이 좁은 편이다.
이후 4세대 녹는 수술실 성분을 활용한 폴리카프로락톤(Polycaprolactone, PCL) 필러도 등장했다. PCL은 의료용 고분자 물질로 미국 FDA와 유럽 CE에서 안전성을 입증받은 성분이다. 대표적인 게 JW중외제약의 엘란쎄다. 탄력과 지지력에 영향을 끼치는 콜라겐은 노화로 인해 감소되기도 하며 외부 충격에 의해 조직이 손상되는데 엘란쎄는 콜라겐을 자체적으로 생성하고, 체내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가수분해됨으로써 완벽하게 흡수 및 배출되는 게 장점이다.
한독 ‘스컬트라’로 대표되는 폴리락틱산(Poly-L-Lactic Acid, PLLA)도 4세대로 분류된다. 몸에서 서서히 흡수되는 생체 적합성 합성폴리머로 식물성에서 유래됐다. PLLA는 의료산업에서 30년 이상 상처피복제로 사용돼 온 성분으로 1999년에는 에이즈 환자의 볼살이 빠지는 증상인 안면지방위축증(Lipoatrophy)에 대한 치료제로 인정받기도 했다. 2003년에는 FDA로부터 콜라겐 촉진반응 용도로, 2009년엔 ‘스컬트라 에스테틱’이란 이름으로 미용목적 주름개선 용도로 승인받았다. 스컬트라는 기존 더마필러처럼 직접 볼륨감을 형성하는 게 아니라 피부 속 콜라겐 생성능력을 촉진시켜 볼륨감을 서서히 형성하는 게 작용 원리다. 잔주름을 펴고 전반적인 피부결을 정돈할 때 용이하다.
이처럼 차고 넘치는 더마필러 중 자신에게 잘 맞는 제품을 골라야 실패 없는 시술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피부개선 목표와 기대하는 효과를 의료진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의료진은 객관적인 진단을 통해 적합한 성분의 필러로 시술해야 만족도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