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관련 건강기능식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특히 1월에는 더욱 그렇다. 몸매가 권력이 된다는 ‘매력자본’ 사회에 살고 있다 보니 매년 신년목표로 ‘다이어트’를 꼽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살을 빼게 해 준다는 체중조절 목적의 건강기능식품은 여전히 수요가 높다.
다만 체중조절용 건기식 트렌드는 변화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소비자로부터 ‘웬지 이번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워딩을 내세운 마케팅이 대세였다. 대표적으로 ‘1개월에 무조건 10㎏ 감량’ ‘못빼면 무조건 환불’ 등을 꼽을 수 있다. 굶다시피 유도하는 체중조절용 식사대용품, 지방을 분해한다는 성분 등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 건강을 잃을 수 있다는 의식이 퍼지고, 소비자들이 건강정보를 습득하기 쉬운 사회가 되면서 이같은 마케팅은 사그라들고 있다. 최근에는 ‘칼로리 커팅제’가 가장 인기다. 대개 ‘실컷 먹고 난 뒤에도 살이 찌지 않게 도와준다’는 내용을 주로 한다.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도 날씬해질 수 있다니, 고생해서 10㎏을 빼는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칼로리 커팅제 중 최근 인기인 게 ‘키토산’이다. 엄밀히 말하면 키토산은 ‘폴리글루코사민’이다. 보통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은 사람에게 권하는 건강식품이지만 특별한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다이어트 목적으로 섭취하는 사람도 적잖다. 지난해에는 한 유통 대기업 부회장이 자신의 SNS에 폴리글루코사민 건기식으로 다이어트를 한다는 포스팅을 올리며 유명해졌다. 다이어트에 나름 일가견이 있고, 트렌디한 인물이었던 만큼 영향력이 꽤나 컸다.
키토산은 게·새우 등 갑각류의 껍질 등에 있는 키틴을 인체에 쉽게 흡수되도록 가공한 물질이다. 새우와 게 껍질 분말에서 추출한 아미노다당류로 식이섬유와 결합, 지방질의 소화와 축적을 방해하는 작용기전을 갖고 있다.
식사 직전 폴리글루코사민을 먹으면 섭취한 음식과 함께 작용, 장내에서 지방을 흡착, 체외로 배출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키토산이 위장으로 내려오면 강한 위산에 의해 용해되는데, 이때 위장 속 음식물 중 지방과 결합해 끈적한 겔 형태로 변하며 공처럼 커진다. 결국 뭉쳐진 키토산과 지방질은 체내로 흡수되지 못하고 변으로 배출된다.
이를 뒷받침하고 키토산 다이어트를 더 효과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고용량 비타민C요법과 키토산 섭취를 병행하면 효율적인 체중감량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서형주 고려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비타민C를 동물성 식이섬유인 키토산과 함께 섭취하면 키토산만 섭취한 때보다 체중감량 효과가 1.5배 향상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이 체지방 28%이상인 비만 대학생 71명을 5개 집단으로 나눈 뒤 8주간 매일 비타민C(2g), 키토산(3g), 차전자피(10g) 등을 병용 혹은 단독 섭취시킨 결과 키토산과 비타민C를 함께 섭취할 경우 체중이 평균 4.1㎏ 감소했다. 비타민C만 섭취할 경우 0.9㎏, 키토산만 복용할 경우 2.6㎏이 감소됐다.
서형주 교수는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비타민C가 키토산의 지방 포집기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키토산은 액체 상태로 용해된 것보다 고체형의 태블릿 등의 형태로 복용할 것을 권했다. 액체 상태로 용해된 키토산은 비타민C와의 상승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을 들었다.
키토산은 동물성 식이섬유이기 때문에 복용 후 자칫 속이 더부룩하고 불쾌감이 심해질 수 있다. 필수영양소 흡수장애나 지방설사가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 음식물 속 지방질 분해를 막아 소화되지 않은 지방덩어리로 체외 배출시켜 다이어트 효과를 내던 ‘제니칼’(성분명 올리스타트, orlistat)의 부작용과 비슷한 맥락이다. 게 또는 새우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도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또 실험에 사용된 비타민C가 2g이라는 사실도 체크해야 한다. 단순 비타민C를 챙겨먹는 정도가 아니라 1일 비타민C 섭취기준량(100㎎)의 20배를 훌쩍 뛰어넘은 고용량 비타민C요법이 병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다이어트는 주치의와 상담한 뒤 부작용 여부를 면밀히 관찰하며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키토산은 위장관에서 지방 흡수를 막아 에너지 흡수를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안 먹고 많이 움직이기’라는 다이어트의 대전제 없이는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없어 유의해야 한다. 의학계에서는 운동이나 일정 식이조절 없이 단순 칼로리 커팅제 복용만으로는 기대만큼의 효과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 다이어트보조제는 식품이지, 치료를 위한 약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오리건주립대 연구팀도 키토산, 카페인, 리놀레산, 식욕억제제 등 총 4종류의 성분을 포함한 수백가지의 다이어트보조제의 효과를 뒷받침해준다는 기존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어느 한 종류의 보조제도 단독으로는 ‘다이어트 효과’의 뚜렷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 대학 멜린다 먼로 교수는 “대부분의 다이어트보조제가 효과를 확인하는 무작위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다”며 “일부 임상에서도 실제 보조제는 다이어트와 무관한 위약에 비해 약 0.9㎏ 남짓의 체중감량 효과만 보인 만큼 식단조절이나 운동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보조제만으로 이렇다할 다이어트 효과를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결론냈다.
실제로 체중감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효과인데 근거로 제시된 연구기간은 대부분 8주로 짧다. 처음에는 반짝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인체는 항상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 지방 흡수를 하지 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다이어트보조제를 구입할 때 ‘치료 효과’를 기대해선 안 된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체지방감소 기능성 원료의 효능을 3단계로 나눠 인정하고 있다. 인정 기준도 약과는 달리 효능보다 안전성에 무게를 두는 게 일반적이다.
효과가 가장 확실하게 인정되는 ‘생리활성기능 1등급’ 원료는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줌’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가르시니아캄보지아껍질추출물’(HCA)만 1등급으로 인정받았다. 이를 제외한 대부분 제품은 ‘생리활성기능 2등급’으로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고 표기해서 판매된다. 폴리글루코사민은 HCA보다도 등급이 낮은 생리활성기능 2등급 원료다. 나머지 생리활성기능 3등급 원료는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관련 인체적용시험이 미흡함’ 표기만 가능하다.
1등급 인정은 연구자료를 통해 해당 원료의 생리학적 효과 또는 기전이 명확하게 증명돼야 한다. 이와 함께 체지방량·체질량지수·허리둘레·허리-엉덩이둘레 비율 등 바이오마커가 개선된 효과가 다수의 인체적용시험에서 확인돼야 받을 수 있다.
2등급은 가능성이 있는 생리학적 효과 또는 기전을 연구자료를 통해 추측할 수 있어야 하며, 바이오마커 개선 효과가 1건 이상의 인체적용시험에서 확인돼야 주어진다. 3등급은 생리학적 효과 또는 기전을 추측할 수 있는 연구자료는 있지만, 인체적용시험에서 확인되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다.
김범택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건강기능식품은 ‘기능’이라는 단어 때문에 복용하면 무조건 체형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막연히 기대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데도 다이어트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원하는 환자 중 칼로리커팅제를 섭취하고 싶어하는 비만환자에게는 직접 경험해 보도록 한다”며 “식이조절이나 운동 없이 다이어트보조제에만 의존하는 환자 대부분은 1~2개월 안에는 효과가 없다며 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