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건강을 해치고 온갖 질병을 유발하는 ‘만병의 근원’으로 꼽힌다. 두통, 불안증, 우울증 등의 원인이 되고 특히 소화기계에 악영향을 끼쳐 소화불량, 위염, 위궤양,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을 초래한다.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혈압이 높아져 고혈압, 당뇨병 위험이 높아지고 암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만성화되지 않은 잠깐의 스트레스는 일상에 활력을 주고 건강에 이점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stress)는 유래는 ‘팽팽하다, 좁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strictus, stringere’에서 비롯됐다. 원래 물리학·공학 분야에서 ‘비뚤어짐’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1936년 캐나다 몬트리올대의 한스 휴고 브루노 셀리에(Hans Hugo Bruno Selye) 내분비내과 교수가 ‘개인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외적·내적 자극’이라고 정의하면서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됐다.
스트레스가 인체를 상하게 한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지만 최근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건강에 도움되는 유스트레스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처음 정립한 한스 박사도 향후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스트레스를 ‘유스트레스(eustress)’로 분류하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디스트레스(distress)’와 구분하기도 했다. 유(eu)는 ‘좋은’ ‘긍정적’이란 뜻의 접두사다. 한스 박사는 두 개념이 시작부터 다른 게 아니라 초기엔 먼저 유스트레스가 나타났다가 만성화되면서 디스트레스로 전환된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긴장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맥박과 호흡이 빨라진다. 이 때 함께 분비되는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은 당장 급하지 않은 식욕과 성욕을 억제하고 염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상처를 치유하거나 삶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된다.
면접시험 직전이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받는 짧은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높여 암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암센터의 쥐 실험 결과 짧은 스트레스를 여러 번 받은 쥐는 자외선 노출 시 그렇지 않은 쥐보다 피부암이 덜 생겼고 암 크기도 작았다. 짧은(좋은) 스트레스를 받아 긴장감이 고조된 쥐들은 자외선 같은 외부자극에 재빠르게 반응해 피부 쪽으로 면역세포가 결집되면서 면역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마감시간 등을 앞두고 단기적인 압박감에 시달리면 신체는 120%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같은 단기 스트레스는 부신(콩팥위샘)기능을 높여 면역력을 활성화해 바이러스와 세균을 막는다.
스트레스가 수술 뒤 회복에 도움된다는 주장도 있다.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솔은 면역세포를 혈류 속으로 방출시키고, 치유가 가장 필요한 부위인 피부와 림프절에 면역세포가 집결되도록 유도한다.
조직 내 다른 사람들과 결속감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단기 스트레스는 결속력을 높여주는 옥시토신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사랑과 유대감을 느낄 때 분비된다고 해서 ‘포옹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신체가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저항반응으로서 뇌하수체에서 분비된다.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춰주며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호르몬의 생산을 억제한다.
스트레스가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된다. 스트레스호르몬이 뇌에서 인지와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을 자극, 문제를 해결하고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작업기억’ 능력이 향상된다. 단 만성 스트레스는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할 수 있다.
삶의 적응력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 미국 심리학자들이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이혼, 사별, 자연재해 등을 경험한 사람은 삶이 평탄했던 사람보다 일상에서의 적응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힘겨운 일을 처리해야만 했던 경험이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태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코티솔은 출생 후 신체기관이 적절히 발달하기 위해 필요한 물질이어서 임신 기간 적절한 스트레스는 아이의 발육을 촉진할 수 있다. 미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학부 연구팀이 137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임신 24~32주에 받은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여성의 아이가 성장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밝혀졌다.
단 부부 사이에는 스트레스가 없어야 한다. 임신부를 위협하는 심각한 스트레스는 외부가 아닌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다. 말다툼이 잦은 부부는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보다 심리적·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아기가 태어날 위험이 높다.
김양현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요인이 전혀 없는 것도 반드시 건강을 위해 좋은 것은 아니다”며 “지겨움이나 권태가 지속되면 때때로 무기력한 상태를 거쳐 우울증 등 병적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트레스가 무서워 자신의 상황이나 일을 피하기만 하면 자신감이 줄고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쉽다”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일상적인 자극이나 사건도 나쁘게 받아들여 결국 만성 스트레스로 악화된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을 파악하고 스트레스의 강도를 미리 예상해두면 집중력과 의욕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규칙적인 휴식과 운동도 중요하다. 김양현 교수는 “스트레스 원인을 없애고 바꾸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푹 쉬면서 스스로 긴장을 완화하고 삶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며 “1주일에 3회 이상 적정 강도로 유산소운동을 실시하고,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에 30분 정도만 걸어도 부정적인 디스트레스를 긍정적인 유스트레스로 바꾸는 데 도움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