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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난에 新캥거루족 등장 … 정서적 학대, 강력·존속범죄 초래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12-29 08:22:11
  • 수정 2020-09-13 16: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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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문화 영향, 간섭 지나치고 부모·자식 경계 불분명 … 내성적 성격, 묻지마범죄 이어져
캥거루족 중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인 사람은 부모나 가족에게 가진 불만을 쌓아두고 끙끙 앓다가 집 외부에서 ‘묻지마 범죄’를 통해 불만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성향을 종종 보인다.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는 정모 씨(29)는 지난 1일 자신의 어머니 김모 씨(58)와 형인 정모 씨(32)에 대한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2년 전 결혼 당시 어머니로부터 1억원 상당의 빌라를 받았지만 적은 수입에 도박 빚까지 겹치며 어머니에게 다시 손을 벌렸다. 결국 어머니가 도움을 거절하자 어머니와 형까지 살해하는 비극을 저질렀다.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의 한 다가구주택 반지하 집에 살던 박모(73)씨는 같이 살던 아들(41)을 흉기로 찔렀다. 박 씨는 마흔이 넘도록 직업도 없이 자신에게 의존해 사는 아들에게 불만이 쌓였다. 아들이 “돈을 마련해 주면 지방에 가 살겠다”고 하자 박씨는 아들에게 줄 돈을 마련해 주려고 반지하 집으로 이사까지 했다. 하지만 아들은 독립하지 않았고 오히려 반지하 집을 담보로 3900만원을 몰래 대출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자꾸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 아버지에게 집을 비워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건 당일 노숙을 한 아버지는 방에서 편히 자고 있던 아들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흉기를 들었다. 

취업을 하지 못해 부모의 ‘등골 브레이커’로 전락한 캥거루족과 다 큰 자녀를 제대로 독립시키지 못한 비자발적 ‘헬리콥터 부모’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존속살인 등 각종 강력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캥거루족은 자립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심리적·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해 사는 것을 의미한다. 어미주머니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기 캥거루의 습성을 빗댄 신조어다. 하지만 정작 캥거루는 어미의 주머니 속에서 자라다가 1년이 지나면 독립한다. 정신의학적으로 캥거루족을 어른의 책임을 회피하는 ‘피터팬증후군’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인 문제로 미국에서는 중간에 낀 세대(Betwixt and Between)라는 의미의 ‘트윅스터(Twixte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에 집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맘모네(Mammone)’,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연금을 축내는 ‘키퍼스(Kippers)’, 캐나다에서는 직장 없이 이리저리 떠돌다 집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부메랑키즈(Boomerang Kids)’라고 부른다.

한국고용정보원 발표에 따르면 2000년 82만명이었던 국내 캥거루족(만 25~44세)은 지난해 11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중 과거엔 결혼 후 독립할 나이인 30~40대가 절반에 가까운 48만6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캥거루족의 양산이 경제침체로 인한 취업난·양극화 심화 등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정 시기가 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데 만성적 불황과 저성장으로 교육기간은 길어지고 취업은 되지 않아 결국 부모에게 의존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부모가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지원을 끊으면 자녀의 불만이 쌓여 결국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전체 범죄 중 살인사건의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반면 존속살인을 포함한 가족범죄 발생률은 높은 것은 캥거루족 증가와 연관된다”며 “성인 자녀가 금전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하는 것은 최근 4~5년 새 청년층 실업이 악화되면서 성인 자녀가 금전적인 문제로 부모를 살해는 범죄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인 사람은 부모나 가족에게 가진 불만을 쌓아두고 혼자 끙끙 앓다가 집 외부에서 ‘묻지마 범죄’로 불만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국 특유의 유교적 가족문화도 원인이다. 홍나래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은 가족 간 연대를 중시하는 유교식 문화가 남아있는데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이었던 부모·자식간 관계가 친구 같은 수평적 관계로 변하다보니 성장한 자녀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와 자녀가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관계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간섭하는 ‘정서적 학대’가 문제”라며 “부모가 자식을 독립적인 존재로 길러내는 데 실패하면 캥거루족 자녀가 되고, 이들 중 존속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패륜아가 양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결혼 후에도 취업 유무와 상관없이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사는 신(新) 캥거루족도 늘고 있다. 

캥거루족의 존재는 부모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현재 부모세대는 자녀 교육에만 돈을 쏟아부어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경제적 어려움이 더 크다. 통계청 조사 결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충동을 겪었다고 답한 노인의 비율은 2008년 29.3%에서 지난해 35.1%까지 늘었다.

홍 교수는 “힘들게 살아왔던 부모는 자식들에게 더 나은 혜택을 주고싶은 보상심리가 강하지만 넘치는 배려가 자녀를 무능하게 만들고 미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부모와 자식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등 관계를 재정립하고 단순히 재정적 독립이 아닌 심리적 독립이 가능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취업난 해결 등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최근 청년고용률이 떨어지는 대신 50대 고용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에서 청년층이 숙련된 장년층에게 밀리는 현실을 보여준다. 청년들을 위한 고용촉진책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교육과 노동이 연계되도록 교육정책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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