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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치질의 계절’ … 민망함에 치료 미루다 변비까지 ‘이중고’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12-22 07:30:08
  • 수정 2020-09-13 16: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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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2월 치질수술 30% … 혈변·체중감소 동반시 대장암검사 필요
차가운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항문 주위가 찬 기운에 노출되면서 혈관이 항문 주변으로 몰려 치질이 발생할 수 있다.
직장인 김모 씨(32·여)는 주말만 되면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라 쉴틈이 없다. 추운 날씨 속에 찬 아스팔트 위에 몇 시간 동안 앉아있는 게 쉽지 않았지만 시위에 보람을 느끼고 버텨왔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항문 주변이 가렵고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배변 후 화장지에 피가 묻어나왔다. 치질이 의심됐지만 도저히 병원에 갈 자신이 없어 그냥 참았다. 결국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 만큼 통증이 심해져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은 결과 3기 치질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흔히 치질로 불리는 ‘치핵’은 항문 주변의 혈관과 조직이 덩어리 형태로 외부로 돌출되는 질환이다. 주변에 한 명쯤은 이 질병으로 고생할 만큼 발생률이 높지만 항문이라는 민감한 부위에 나타나는 것이라 대부분 치료받기를 꺼린다. 잘 씻지 않아 생기는 병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역사적으로는 의료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프랑스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루이 14세, 전쟁영웅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등이 만성 치질로 고생했다고 한다. 특히 나폴레옹은 엘바섬에서 탈출한 뒤 벌인 ‘워털루전투’에서 치질 통증이 갑작스럽게 악화돼 휘하 장군에게 지휘를 맡겼다가 패배,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실제로 치질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여기에 항문 주위 가려움증, 불편함, 점액성 분비물 등이 동반된다. 배변 후 출혈을 보이거나, 항문 주변에 덩어리가 만져질 때도 있다.

김범규 중앙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항문 입구에서 2∼3㎝ 안 쪽에 있는 이빨 모양의 치상선을 기준으로 안쪽에 발생한 것을 내치핵(암치질), 바깥쪽에 생긴 것을 외치핵(수치질)으로 분류한다”며 “환자 비율은 내치핵이 20%, 외치핵이 10%, 두 개가 복합된 혼합치핵이 7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치열은 항문 입구부터 항문 안쪽 치상선에 이르는 항문관 부위가 찢어진 것을 말한다. 치루는 항문선의 안쪽과 항문 바깥쪽 피부 사이에 구멍이 생겨 분비물이 누출되는 질환이다. 

겨울철엔 낮은 기온 탓에 항문 주변 모세혈관이 수축되면서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겨 치질이 심해진다. 연말 잦은 술자리도 주요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5년 주요수술 통계에 따르면 1·2·12월의 치핵수술 건수는 약 6만건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치질의 정확한 발병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배변 시 과도한 힘주기, 장기간 변기에 앉아있는 습관, 변비, 음주 등이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김 씨의 사례처럼 차가운 곳에 오래 앉아 있어 항문 주위가 찬 기운에 노출되면 혈관이 항문 주변으로 급격히 몰려 증상이 심해진다. 여성은 임신 및 출산 과정에서 치질이 생기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많고 출산 이후에도 증상이 지속될 수 있다.

보통 변비로 인해 화장실 변기에 오래 앉아 있다가 치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치질에 따른 극심한 고통 때문에 배변을 억지로 참다가 변비가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치질과 변비의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치질로 잘못 알고 치료를 미루다 다른 중증질환으로 진단받는 사례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게 대장암이다. 김 교수는 “치질과 대장암의 공통점은 혈변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치핵이 대장암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혈변 원인이 대장암 등 다른 질환에 있는데도 추가검사 없이 치핵으로 판단하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국내엔 치핵이나 혈변이 있다고 해서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지침은 없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50세 이상, 체중감소, 배변습관 변화, 혈변과 빈혈 발생, 대장암 가족력 등에 해당되면 대장내시경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40대 이후 중장년층이면서 과거에 없던 치핵이 갑자기 생기거나, 혈변·점액변·잔변감·복통·복부팽만·체중감소,·빈혈 등이 나타날 경우 대장내시경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치질 치료법은 증상의 경중에 따라 달라진다. 치질 1기는 치핵이 항문 안에서만 돌출이 되어 변을 볼 때 어쩌다 한 번씩 피가 화장지에 묻거나 변에 묻어 나온다. 2기는 변을 볼 때 치핵이 항문 밖으로 나왔다가 배변이 끝나면 저절로 들어간다. 3기는 배변 시 치핵이 항문 밖으로 나와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는 경우다. 4기는 배변 후에도 밖으로 나온 치핵이 손으로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1기와 2기는 보존적 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3기 이상부터는 수술이 필요하다.

보존요법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온수좌욕이다. 하루 3~4회씩 40~42도 온수에 엉덩이를 10분간 담그고 있으면 항문 주변의 혈액순환이 촉진돼 증상이 개선된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부종이 심해지거나 화상을 입게 된다. 인터넷에 떠도는 민간요법처럼 물에 소금, 소독약, 기타 약물 등을 타면 항문 주변에 소양증(가려움증)이 악화될 수 있다. 

2기 치핵으로 악화되면 고무밴드결찰술로 늘어진 치핵의 뿌리 쪽 덩어리를 피가 통하지 않도록 밴드로 고정해 조직이 떨어져 나가도록 한다. 단 이 방법은 외치핵일 경우 통증이 심해 사용할 수 없다.

치질수술로 많이 알려져 있는 외과적 수술은 치핵절제술과 자동문합기를 이용한 치질수술로 구분된다. 치핵절제술은 보존적 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출혈성 내치핵 또는 환부가 크고 통증이 심한 3기 외치핵 환자에게 시행한다. 김 교수는 “수술 후 4~6주까지는 배변 후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해 진통제 복용과 규칙적인 좌욕이 필요하다”며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데 평균 2~3주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자동문합기를 이용한 치질수술은 늘어진 항문점막 및 치핵 조직을 끌어올려 원래 해부학적 위치로 되돌려주고 항문 주변 혈류를 줄여준다. 치핵절제술에 비해 상처와 통증이 적고 수술시간과 회복기간이 짧다. 하지만 외치핵이 너무 심하게 돌출됐거나, 항문이 좁으면 적용이 불가능할 수 있다.

치질 예방은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부터 시작된다. 변기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고 항문에 과도한 힘을 주면 치핵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은 5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변비는 치핵을 유발하는 주원인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컵을 마시면 대장운동이 활성화돼 대변을 보는 데 도움된다. 김 교수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통해 하루 30g 이상의 섬유질을 섭취하면 변이 부드러워져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라며 “카페인이 많이 든 음료나 술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장시간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직업군은 일정시간 간격을 두고 스트레칭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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