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유방암의 가장 큰 발병 원인으로 알려진 에스트로젠 수용체를 조절하는 특정 유전자의 작용 기전을 발견했다. 박윤용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융합의학과 교수와 강명희 박사팀은 유전정보 전달물질(RNA)이 결합된 ‘MSI2’라는 유전자가 유방암세포의 생성 및 성장을 일으키는 에스트로젠 호르몬수용체(ER)를 안정화시켜 발현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성장촉진 호르몬으로 알려진 에스트로젠은 암세포로 쉽게 변하는 가슴의 유관 상피세포를 증식시키고 유방암세포의 성장을 돕는다. 국내 유방암 발병원인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호르몬이 유방암세포 등에 반응하고 작용하려면 세포질이나 핵에 존재하는 에스트로젠수용체(Estrogen Receptor, ER)가 활성화돼야 한다.
특정 호르몬이 세포에 작용할 수 있게 결합을 유도하는 게 호르몬 수용체다. 에스트로젠 호르몬이 암세포로 변하려면 에스트로젠 수용체의 발현이 필요하다. 즉 에스트로젠 수용체는 유방암세포의 생성과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유방암 치료를 위한 핵심 단서로 여겨진다.
에스트로젠 수용체가 발현하면 수술과 항암치료 외에도 호르몬과 수용체의 결합을 억제하는 항에스트로젠 약물인 ‘타목시펜’을 사용할 수 있지만 치료 대상과 결과가 제한적이다. 또 에스트로젠 수용체와 관련해 어떤 물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박 교수팀은 에스트로젠 수용체가 RNA의 영향을 받는 것에 주목해 미국 암유전체지도(The Cancer Genome Atlas)에 등록된 한국·중국·미국 유방암 환자 1200여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에스트로젠 수용체의 발현이 확인된 유방암 환자군은 그렇지 않은 환자군보다 ‘MSI2’ 유전자가 현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 줄기세포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MSI2 유전자는 RNA가 결합된 단백질로 에스트로젠 수용체 활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후보물질이다.
이어 연구팀은 단백질 합성 저해제 투여 및 특정 단백질·유전자 결합 분석 등을 통해 MSI2 유전자의 에스트로젠 수용체의 작용 기전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MSI2 유전자는 에스트로젠 수용체 유전자의 RNA에 직접 결합해 에스트로젠 수용체 단백질을 안정화시켰다. 이럴 경우 에스트로젠 수용체 단백질의 기능이 활발해진다. 이는 MSI2 유전자가 에스트로젠 수용체 발현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유전체 분석을 거친 에스트로젠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의 생존율을 비교 분석한 결과 MSI2 유전자의 발현이 높은 환자는 낮은 환자보다 생존율이 유의적으로 높았고 재발률은 낮았다. 특히 항호르몬제를 투여받은 에스트로젠 수용체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도 MSI2 유전자의 발현이 높으면 생존율이 향상됐고 재발률은 감소했다.
이번 연구로 MSI2 유전자의 발현이 에스트로젠 수용체 발현을 증가시키고 결국 항호르몬 제제에 대한 반응성을 높여 생존율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박윤용 교수는 “이번 연구는 RNA 결합 단백질인 MSI2 유전자가 에스트로젠 수용체를 직접 조절해 유방암세포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기전을 밝혔다”며 “에스트로젠 수용체 양성인 유방암 환자에서 MSI2 유전자와 항호르몬 제제에 대한 상관관계도 확인함으로써 타목시펜 치료의 반응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등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항암 T2B 기반구축센터 사업과 한국연구재단의 일반연구자 지원사업 및 리서치 펠로우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 암 전문지 ‘온코진(Oncogene)’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