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정·조철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조울증·우울증의 새로운 발생기전을 밝혀내 치료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28일 밝혔다. 연구팀은 기분장애 환자 26명과 정상인 18명을 대상으로 입원 초부터 퇴원 전까지 환자의 기분양상과 생체리듬 변동을 2주 간격으로 3년간 측정했다.
코티졸 호르몬 농도는 아침에 최고치를 보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 조증 환자는 자정 무렵에 농도가 가장 높았다. 또 정상인의 경우 오후 3시에 최고치를 보이는 시간유전자(PER1/ ARNTL) 발현이 조증 환자에선 아침에 최고치를 기록해 발현 시기가 심하게 앞으로 당겨져 있는 양상을 나타냈다. 반대로 우울증 환자는 코티졸 농도의 최고치 기록 시점과 시간유전자 발현이 뒤로 밀려 있었다.
즉 급성 조증인 경우 시간유전자 발현이 정상보다 평균 7시간 앞당겨진 반면 우울증 상태에서는 4~5시간 지연됐다. 이같은 생체리듬 변동은 기분증상이 호전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연구는 생체리듬 교란이 조증과 우울증의 중요한 발생기전이며, 이 리듬을 바로잡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면 조증과 우울증의 발생 및 재발을 예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헌정 교수는 “생체리듬은 지구 자전에 의해 생긴 낮밤의 변화로 만들어진 본능으로 아침에 밝은 태양빛을 보는 것을 통해 조절된다”며 “현대인은 인공조명과 실내생활로 생체리듬이 어긋나기 쉬운 환경에 살고 있어 조울증이나 우울증 등 기분장애의 발생위험이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기존 약물치료에 의존했던 조울증 치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대증적인 치료가 아닌 근본적인 치료 및 예방법으로 임상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핀란드 국립보건원의 티모 파토넨(Timo Partonen)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조울증의 의학적 이해를 넓히는 수준을 넘어 조울증 치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획기적인 계기”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Advanced Circadian Phase in Mania and Delayed Circadian Phase in Mixed Mania and Depression Returned to Normal after Treatment of Bipolar Disorder’라는 제목으로 국제저명학술지 ‘이바이오메디신(EBioMedicine)’ 최신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