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치료로 꾸준히 관리하니 아직 ‘건강’ … 한번 관계로 100% 감염은 어려워, 실제 0.1~1%
할리우드의 ‘우머나이저’(womanizer) 배우 찰리 쉰(50)이 최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 감염 사실을 인정했다. 미국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는 찰리 쉰이 평소 ‘문란한 성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찰리 쉰의 HIV 감염 여부는 지인이 밝히며 알려졌다.
하지만 쉰은 4년 전 보균자로 진단받은 이후 모든 성파트너에게 에이즈 환자임을 밝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오전(현지시간) NBC ‘투데이 쇼’에 출연, “진실과 동떨어진 소문들을 멈추고 싶어 4년 전 에이즈 양성 진단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꾸준히 약을 복용해 건강을 회복했고, 혈액에서 HIV 바이러스를 찾기 힘들 정도”라고 밝혔다. 이날 그의 주치의도 방송에 출연해 “쉰은 현재 매우 건강하다”고 증언했다.
찰리 쉰은 최근 HIV 감염 사실을 알고도 이를 알리지 않고 문란한 성생활을 해서 전 부인과 현재 부인 등 수많은 성관계 대상들에게 병을 옮겼다는 보도에 대해 ‘결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문제를 상의했던 지인들 중 일부가 비밀을 지키는 대신 돈을 요구했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 최대 1000만달러(약 117억원)을 썼다는 게 찰리 쉰의 주장이다.
흔히 에이즈나 HIV 감염은 동성애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므로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별,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바이러스 감염 경로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전세계 HIV 전파경로의 70~80%는 ‘이성간 성접촉’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국내 남성 감염자는 대부분 불특정 이성과의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 경우였다.
질병관리본부는 1985~2011년 국내 HIV 누적 감염인 수는 8544명으로 이 중 1512명이 사망, 7032명이 생존해 있다고 발표했다. 2011년 한 해 동안 발견된 내국인 신규 감염인은 888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전체 남성 감염인의 56.5%는 이성간 성접촉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동성간 성접촉 42.7%(2732명), 수혈·혈액제제 0.6%(46명), 마약 사용자 0.1%(4명), 수직감염 0%(3명) 순이었다. 반면 여성은 98.2%가 이성간 성접촉으로 감염됐다. 동성간 성접촉으로 인한 감염은 없었다. 성별로 보면 전체 환자의 92%(7860명)는 남성으로 여성보다 11배 많았다. 여성은 684명(8.0%)이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HIV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모두 에이즈 환자로 볼 수 없다. HIV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로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를 일으키는 원인 병원체다. B형간염을 예로 들면 보균자와 감염 환자로 나뉘듯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일부만 에이즈 환자가 된다.
에이즈 원인 바이러스인 HIV에 감염된 사람을 ‘HIV 감염인’이라 하고 감염 후 질병이 상당히 진행돼 면역체계가 파괴되거나 기회질환이 발생한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른다. HIV 감염자는 초기에는 면역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돼 양호한 건강상태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찰리 쉰과 관계를 맺은 여성들이다. 그와 관계를 맺은 피해자들이 집단 소송을 검토 중이다. 이들은 ‘찰리 쉰의 행위는 명백한 범죄’라며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지만, 가족에게 알려지는 일은 두려워 망설이고 있다. 찰리 쉰의 전 여자친구인 성인배우 브리 올슨은 ‘난 깨끗하다’는 내용을 지난 16일 ‘피플’지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찰리 쉰과 관계를 맺은 여성이 무조건 HIV에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간 콘돔을 착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맺었을 때 HIV에 감염될 확률은 1회 당 0.01~1.0%로 보고되고 있다. 다만 남성으로부터 여성으로의 전파가 여성으로부터 남성으로의 전파보다 감염확률이 더 높은 게 사실이다.
쉰이 제대로 초기에 치료를 받고, 콘돔을 착용했다면 어느 정도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 한상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많은 단체의 치료 가이드라인은 항레트로바이러스제제요법을 통한 조기치료를 권고한다”며 “HIV 감염 초기에 치료를 시작할 경우 바이러스를 조기에 억제하고 면역기능을 보존시키며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위험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강성교를 하거나, 성병에 걸렸거나, 항문성교를 했다면 감염 확률이 좀더 높아진다. 혈액, 정액, 질 분비물 등에는 HIV바이러스가 많이 들어있다. 이들 분비물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면 감염 위험이 증가한다. 입이나 목구멍 속이나 주위에 상처나 염증이 있다면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입속 점액선 세포들은 림프선이나 혈관으로 HIV를 운반하기도 한다.
HIV 보균자는 입이 음경이나 질, 또는 항문과 직접적으로 닿는 것을 피하여야 한다. 입 속에 사정하는 상대방과의 구강성교는 HIV감염의 위험성을 한층 더 증가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강성교를 원한다면 반드시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 성관계 상대방이 HIV 감염인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콘돔을 정확히 사용한다면 전염될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성관계 파트너 중 하나라도 성병이 있으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성병에 걸린 사람은 이미 치료받았거나 걸리지 않은 사람보다 HIV에 감염될 소지가 크다. 예컨대 매독과 연성하감 등 성병은 피부나 점막에 궤양이나 상처를 유발하는데, 이들 궤양이 생식기 주위에 발생하면 성관계 시 HIV가 체내로 침투해 감염될 수 있다. 피부에 상처를 내지 않는 임질이나 클라미디아도 염증이 일어나 HIV에 감염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항문성교의 경우 직장이 약화되고 병원균의 침입을 받기 쉬워 HIV 감염인이 비감염인의 항문에 삽입하고 사정할 경우 감염 위험이 커진다. 이때 콘돔을 사용하더라도 질을 통한 성관계에 비해 콘돔이 잘 찢어져 위험할 수 있다. 콘돔에 수용성 윤활제를 사용하면 찢어지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지용성 윤활제는 콘돔을 부식시켜 쉽게 찢어지게 만드므로 피해야 한다.
건강한 성생활의 시작은 콘돔 착용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운영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관리과 과장은 “최근 불특정 이성과 콘돔 없이 성관계를 가졌다면 당신은 그동안 파트너가 성관계를 가졌던 모든 사람과 성관계를 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피하고 콘돔을 사용해야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에이즈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의심일 이후 12주 뒤 가까운 보건소나 병의원에서 검사받는 게 정확하다. 전국 보건소에서 무료 익명검사가 가능하며, 최근엔 구강점막을 긁어 15분 안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오라퀵 검사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