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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
외국인 건보료 ‘먹튀’ 빈번 … 정부 소극 대처 이유는?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10-05 07:02:30
  • 수정 2020-09-14 12: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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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권, 재외국민 표심 얻으려 미온적 대응 … 보험수지 5년간 4231억 적자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괜찮다고 평가되지만 허점도 많다. 까도까도 문제가 나온다고 해서 ‘양파보험’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다 결국 생명을 끊은 ‘세모녀 사건’이나 고소득 기업가가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더 적은 건보료를 내는 문제 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년새 상당수의 외국인과 재외국민(외국에 체류 및 거주 중인 한국 국적자)이 건강보험료를 쥐꼬리만큼 부담하고 고가의 병원진료만 받는 ‘건강보험 무임승차’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외국의 비싼 의료비를 물지 않기 위해 국내 건강보험에 편법 가입하는 재외국민이 허다하고 공짜 의료서비스를 알선하는 불법브로커 조직까지 활개를 치는 상황이다.

올해 국정감사 결과 2010~2014년 외국인 및 재외국민 지역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에서 보험급여를 받은 액수를 뺀 보험수지는 총 4231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외국인과 재외국민에게 들어간 진료비는 1558억원인데 반해 이들이 낸 건보료는 456억원에 불과했다. 적자 폭은 2010년 627억원에서 2014년 1102억원으로 약 76% 증가했다.

현행법상 외국인과 재외국민은 국내에 입국한 날(최종 입국일)로부터 3개월이 경과한 날 건강보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단 유학·결혼의 사유로 3개월 이상 국내 체류가 명백한 경우 입국한 날부터 즉시 지역가입자로 편입된다. 이 과정에서 국내 체류 자격에 따라 30∼50%의 보험료를 깎아준다. 국내에 들어와 유학·결혼하는 것을 장려하려는 취지다.

외국인 유학생 등을 적극 유치해 국내 교육연구 분야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도입됐지만 일부 외국인과 재외국민은 이를 교묘히 악용,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예컨대 입국하자마자 국내 친인척이나 지인의 도움으로 식당 등에 취업했다고 거짓 신고하고 지역가입자로 가입한 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진료를 받고 출국하는 방식이다. 건강보험료는 거의 내지 않고 사실상 ‘공짜 의료쇼핑’을 하고 줄행랑치는 셈이다.  

한 외국인은 3개월치 건강보험료(지역가입자 세대당 월 평균보험료 8만5050원)만 내고 암수술을 받아 1억7000만원어치의 진료비 혜택을 제공받았으며 이후 1년이 채 안 돼 본국으로 돌아갔다.
무릎치료를 받은 한 외국인 남성은 건강보험에서 96만원(본인부담 32만원)을 부담했지만 건강보험료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건강보험에 가입해 치료를 받고 건강보험료가 청구되기 직전 출국했기 때문이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저렴한 의료비는 외국인과 재외국민이 한국행을 결심하는 주요인이다. 한 의료전문가는 “미국의 진료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싸고 유럽도 가격이 꽤 높은 편이지만 서비스의 질은 한국보다 떨어진다”며 “반면 한국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교포와 외국인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최근 몇년간 건강보험에 가입한 외국인 및 재외국민 수는 2010년 10만9977명에서 2014년 18만4800명으로 68% 늘었다. 이 기간 실제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환자는 4만2232명에서 9만4849명으로 2.2배 늘었다.
2014년 기준 국가별로는 중국(4만4556명), 미국(3만5574명), 캐나다(1만2502명) 등 순으로 많았다. 가장 많이 받은 수술은 백내장수술(31%)이었고 치핵(치질)수술(14%)과 축농증수술(10%) 등이 뒤를 이었다. 진료비 총액 기준으로는 스텐트삽입술이 3억6000만원, 백내장수술이 3억1000만원으로 1~2위를 기록했다.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외국인 및 재외국민의 건강보험 부정수급은 건보재정 악화는 물론 우리 국민의 건강보험료 상승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부정수급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입국 후 당월 출국하는 경우 당월 보험료를 부과토록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의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어 “정부는 2015년 외국인환자 3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이러한 양적 확대에 맞춰 외국인 환자의 부정수급을 제지하는 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년 전부터 이같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정부는 건강보험 가입요건에서 ‘취업’을 빼는 정도의 소극적인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이에 대해 의료계 한 관계자는 “외국인 및 재외국민의 의료쇼핑에 따른 건보재정 문제가 심각해지는 이유는 정부와 정치권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라며 “일부에서는 원정출산 등으로 미국 국적을 획득한 고위관료나 국회의원 자녀가 많아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특권층이 미국에서 저렴한 의료를 이용한 만큼 그에 대한 상호주의로 우리나라도 외국인에게 값싼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관측이 깔려 있다.

선거권을 가진 외국인과 재외국인의 표를 의식하다보니 과감한 정책 추진이 어렵다는 주장도 나왔다. 보수적인 색채가 짙었던 이민 1세대에 비해 진보적 성향이 강한 이민 2~3세대와 젊은 해외유학생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야당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은 재외국민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 큰 차이로 패했다.
연령과 별도로 재외국민 중 영주권자는 비교적 여권 성향, 단기체류자는 야권 성향이 많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에 대해 한 의원실 관계자는 “2012년 총선 당시 총 재외국민 투표등록자는 12만3000여명(투표율 2.53%)으로, 선거에 비교적 큰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외국인 및 재외국인의 표심을 얻기 위해 건보체계 개편에 미온적이라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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