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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선 맥주, 한국에선 식혜 … 변화무쌍 ‘맥아’
  • 정종우 기자
  • 등록 2015-07-20 09:26:53
  • 수정 2020-09-14 12: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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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리의 싹을 틔운 엿기름, 엿·조청·고추장 제조시 사용 … 탄수화물 소화에 탁월, 소양인에게 도움
최근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 수제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쓴맛을 좌우하는 홉, 발효하는 효모인 이스트 등과 더불어 맥주의 첫 맛을 결정하는 맥아(Malt) 등이 있다.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는 곡물을 직접 분해하지 못해 포도당이나 맥아당 등 간단한 탄수화물로 곡물을 변화시켜야 하는 데 이때 맥아가 효모의 밥이 된다.  

맥아는 보리(麥)에 싹(芽)을 틔운 ‘엿기름’이다. 싹이 튼 보리를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 바닥에 올려놓은 후 55도 정도로 가열해 건조하면 맥아가 만들어진다. 보리 씨앗에 물을 뿌린 다음 2~3일 지나면 잔뿌리가 나와 길이 1~2㎝ 정도로 자란다. 햇볕에 펼쳐 건조시킨 뒤 거칠게 갈아 사용한다. 엿기름을 약용하려면 잔뿌리가 1㎝ 미만일 때 햇볕에 건조시킨 것을 쓴다. 엿기름은 늦가을에 공기 중의 습도가 적을 때 만들었다가 충분히 건조시켜서 1년 내내 사용했지만 요즘은 겨울철에 만들기도 한다. 

자체로는 먹을 수 없지만 맥주, 식혜, 엿, 조청, 고추장 등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개발된 우유에 타먹는 파우더 음료인 ‘홀릭스(Horlicks)’와 고소한 맛이 나는 코코아 파우더인 ‘오벌틴(Ovaltine)’에도 맥아가 들어간다. 

한국 전통음료인 식혜의 주재료로 들어간다. 식혜는 예부터 식후에 마시는 ‘천연소화제’였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고 체했을 때 효과적이지만 육류에는 소화효과가 약할 수 있다. 갈증이 나거나 입안이 텁텁할 때 물이나 청량음료 대신 식혜를 마시기도 했다. 식혜는 맥아를 우려낸 물에 밥을 삭혀 만든 발효 음식이다.

이름에 기름이 들어가 오해하기 쉽지만 기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름의 어원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기르다’의 명사형이라는 설, 두번째는 ‘원료, 영양분’이란 뜻을 가진 관용어로 기름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엿질금, 경상도에서는 질금이라고 부른다. 

건조 전의 성장 정도에 따라 장맥아와 단맥아로 나뉜다. 장맥아는 싹의 길이가 낱알 길이의 1.5~2배 되는 것으로 식혜, 물엿, 위스키를 만드는 데 쓰인다. 단맥아는 싹의 길이가 낱알 길이의 3분의 2정도 되는 것으로 맥주는 이것으로만 만든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맥아 등에 적용되던 할당관세가 폐지되고 30%의 기본관세율이 매겨지면서 수입 맥아 가격도 올랐다. 할당관세는 수입가격과 물가 안정, 산업경쟁력 등을 위해 기본관세율보다 낮은 세율을 매기는 세제지원 정책으로 국내 맥아 수입업체는 1995년부터 혜택을 받아왔다. 

수입 맥아를 대부분 사용하는 맥주업계에서도 할당관세 폐지 영향으로 가격을 올리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맥아의 할당관세가 없어지면서 비용이 늘었고 맥주 가격에 대한 영향은 원재료 요인이 가장 크다”며 “가격 인상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맥아에는 당화효소인 아밀라아제(amylase)가 많아 당화작용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생성된 말토오스는 특유의 맛을 낸다. 식물은 자신의 녹말을 분해해 성장 에너지원으로 쓰는데, 이때 아밀라아제가 많아진다. 덱스트린(dextrin), 엿당(maltose), 포도당(glucose), 비타민B군, 디아스타제(diastase), 프로테아제(protease), 인버타제(invertase), 인베스타제(investase), 파이타제(phytase) 등의 소화효소 및 산화효소가 들어있다.

복부팽만, 신물, 식체, 구토, 설사 등에도 효과가 있다. 젖을 말리는 효과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없어 임산부에게 추천된다. 양방에서 젖 말리기 위해 사용하던 팔로델을 맥아로 대체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팔로델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맥아는 산모는 물론 젖먹이에도 에게도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한의서인 ‘단계심법(丹溪心法)’에서는 젖을 말리는 방법에 대해 맥아 75g을 3~4등분해서 물에 개어서 먹이면 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임산부가 맥아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낙태가 일어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사상의학에서는 맥아를 소양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소음인 체질은 많이 먹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약으로 복용할 때에는 엿기름을 솥안에서 노르스름하게 약간 볶은 다음 꺼내어 식히고 다시 빻아 복용한다. 엿기름은 한번에 6~12g을 달여서 먹거나 가루약 형태로 복용한다. 소화불량에는 엿기름을 가루내어 식후에 한 숟갈씩 복용한다. 아기가 젖을 먹고 체했을 때는 엿기름 볶은 것 한 줌에 물을 적당히 넣고 달여서 하루에 4~5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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