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의 자정노력에도 불구하고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경기지방경찰청은 전국 종합병원과 병·의원 수백 곳에 의약품을 처방한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매출 350억원대 규모의 성남 소재 P제약사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2010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직원 복리후생비 등의 명목으로 비자금을 마련,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리베이트 지급 내역이 포함된 전산 서버와 장부 등을 압수하고 대표이사 김씨 등 회사 관계자와 관련 의사들의 소환해 조사 중이다. 아직 발표가 나지 않은 경기 안산시 소재 대학병원 리베이트건과 전남 순천시 소재 의원의 리베이트건이 터질 경우 제약업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P제약사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성역 없는 비자금 수사를 촉구했다. 경찰 수사를 받은 회원 중 제약사가 주장하는 액수가 심하게 부풀려진 사례나 언론보도 등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내용이 확인될 경우 해당 제약사를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과거 서울 소재 S제약사도 리베이트 배달사고가 의심돼 물의를 빚었다.
경기지방경찰청이 토요일인 지난 20일 D제약회사의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 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확인 결과 오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D로 시작되는 회사들은 이 기사로 인해 해명하기에 급급했고 일부 의사들도 관련 소식을 수소문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제약협회는 내달 14일 이사회를 열고 2차 리베이트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지난 4월 이경호 제약협회장은 1차 리베이트 설문조사에서 다수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 업체로 주목받은 3곳 제약사에 주의를 촉구한 바 있다. 협회 측은 이번 2차 설문조사에서 의심을 받는 다른 제약사가 나타날 것인지, 리베이트 혐의로 지목된 3곳 제약이 영업행태에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차 설문조사에서 1차에 지목된 제약사가 중복 지목될 경우 어떤 조치가 이뤄질 지도 관심사다. 협회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공개적으로 리베이트 의혹 제약사에 대해 경고 또는 시정조치를 못하고 가장 문제가 된다고 입방아 찧는 제약사에게 무의미한 경고 시그널을 보내는 시늉만한다는 비판을 업계 밖에서 받고 있다.
협회 측은 “국내 제약산업의 발전과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질서 확립이 필요하다”며 “불법 리베이트 추방 등 제약업계의 자정 노력과 유통질서 문란행위의 근절이 병행돼야 업계의 상호 발전은 물론 대국민 신뢰 제고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에서도 리베이트와 관련된 소송에서 강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할인된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받아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한 의사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행정부는 최근 전북에서 근무하는 의사 A씨가 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 제1부는 “A씨가 할인된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받은 것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왜곡하고 국민건강보험재정에 부담을 초래하는 부당한 경제적 이익”이라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제약사와 의료인 사이 리베이트 거래를 금지해 제약사가 얻게 될 불이익보다 건강한 의약품 시장 조성과 국민건강 보호 등 공익이 더 크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