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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 “밀린 당직비 주세요” … 집단소송 걱정에 수련병원 ‘덜덜’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4-15 15:42:28
  • 수정 2015-04-17 1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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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부 병원, 당직비 주는 대신 기본급 깎는 꼼수 부려 … 병원계·의대교수 반응 미지근

전공의의 열악한 수련환경 개선이 의료계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대학병원들의 소극적인 협조 탓에 갈길은 멀기만 하다. 최근 일부 수련병원들이 야간당직비를 주는 대신 기본급을 깎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전공의들이 허탈해하고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 전공의 A 씨가 건양대병원과의 ‘인턴 당직비 미지급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최종 승소함으로써 그동안 억눌렸던 전공의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수련병원들의 속내는 편치 않다. 법원이 전공의들의 손을 들어줄 경우 한 명당 몇 천만원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대다수 수련병원은 전공의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의 일부로 근로가 아닌 체험학습 및 교육의 연장선으로 간주해 수당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11월 26일 대전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건양대병원 전공의(인턴)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했던 초과근로수당 소송에서 병원이 전공의에게 9개월 근무 동안 발생한 초과근로에 대해 334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전협에 따르면 현재 K병원 전공의 4명이 공동소송을 진행 중이며 S병원 전공의 90여명은 지난달부터 공동소송에 들어갔고, K병원 전공의 3명, S병원 전공의 2명, J병원 전공의 1명 등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건양대병원 승소 이후 전공의들이 소송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전국 1만7000명의 전공의를 대표해 집단소송을 제기하려 했다가 법적인 제약이 많아 철회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대신 ‘추가근로소송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소송을 준비 중인 전공의들이 의견을 공유하거나 소송인단을 모집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도 했다. 실제적인 소송 준비를 위해 애플리케이션 메뉴 중 하나로 ‘추가 근로수당 소송인단 모집’을 개설하고 소송에 관심 있는 전공의끼리 정보교류를 할 수 있게 했다.

만약 법원이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단하면 수련병원들의 인건비 부담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열린 ‘미래의료정책포럼’에서는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고, 당직비를 지급할 경우 인건비만 67억7000만원이 더 소요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전공의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이 포착되자 일부 병원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계약 조건이 병원 측에만 유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 전의협 관계자는 “최근 일부수련 병원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고 전공의들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상승된 당직비 대신 기본급을 일방적으로 대폭 삭감하는 등 경영자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한 전공의는 “병원 측이 제시한 근로계약서에 의문을 갖고 저항했던 전공의들이 징계 처분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일부는 직장을 떠나라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국내 전공의들의 근무 시간은 다른 의료 선진국에 비해 다소 긴 편이다. 지난해 이목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2013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 전공의 수련 실태 조사 결과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90.2시간에 달했고, 전체 전공의의 43%는 100시간 넘게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럽은 ‘전공의에 대한 유럽 근로기준’에 따라 근무시간을 주당 48시간으로 제안하고 있다. 미국 전공의의 주당 근무시간은 80시간, 계속 근무는 24시간을 넘지 않는다. 일본 전공의들의 경우 주당 평균 45시간 근무한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 미만, 연속 근무시간은 36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 수련규칙 표준안이 마련됐지만 실제 수련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수련병원은 주 80시간 미만으로 수련받고 있다고 답변하도록 전공의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의협은 “수련병원 고용주들은 ‘전공의 수련규칙 표준안’이 개정된 이후, 각 과 진료과장과 전공의들을 압박해서 허위로 ‘주 80시간미만 수련’을 받고 있다고 답변하게 했다”며 “전공의들에게 불법적 초과 근무를 시키고도 시키지 않았다는 허위 보고를 일삼으면서 월급을 강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소송전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소송에 적극 참여할 경우 해당 수련병원 경영진이나 교수들의 눈밖에 나 병원 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전공의들 사이에선 “장기적으로 대학병원 교수를 꿈꾸거나, 주요 대학병원에서 봉직의로 근무할 생각이라면 소송엔 참여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전국의사총연합회(전의총) 페이스북 홈페이지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올라와 관심을 모았다.

이로 인해 당장의 현실은 고통스럽지만 과거 선배의사들이 그랬듯 참고 견디면 결국 빛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전공의 사이에서 여전히 지배적이다. J 대학병원 전공의는 “모든 전공의들이 당직비 소송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건양대병원 소송 건도 거의 3년이 소요되는 등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개인이 병원을 상대로 승소할 가능성도 여전히 낮다”고 말했다. 이어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의특별법이 하루 빨리 제정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 준비 중인 전공의특별법은 전공의 근무시간을 당직 포함 최대 64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현행 36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 연속 수련시간도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30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했다. 주당 1일(24시간) 이상 유급휴일을 주고 연장수련이나 야간(오후 10시~오전 6시) 휴일 수련시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병원협회와 상당수 대학병원 교수들이 전공의특별법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어 실제 도입 시기는 확신하기 어렵다. 병협은 “정부와 의료계가 2013년 4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추진을 위한 ‘전공의 주당 최대 수련시간’ 등 8개 항목에 합의한 대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별도의 입법 추진은 수련병원들의 혼란만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표면적으로 내세우진 않았지만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인건비 부담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공의들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세간의 이목이 교육이 아닌 근로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의 근로에는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우거나 직접 실습을 해보는 등 모든 수련 과정이 포함돼 있다”며 “교육과 근로가 혼재돼 있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을 떡 자르듯이 구분하고, 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모든 의사들이 전공의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개인이 선택한 것”이라며 “현재 수련환경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소송 등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이기적인 행태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극단적인 예로 전공의의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거세지면 수년 후 미국처럼 수술 술기를 배울 때 전공의가 지도교수에게 별도의 교육비를 내야 하는 역화를 부를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처럼 상반된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재의 열악한 수련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대전협 관계자는 “대학병원을 비롯한 기성 의료계와 정부는 전공의들의 희생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의무는 물론 근로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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