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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제중원 뿌리 논란 … ‘국립병원 계승’ vs ‘시대착오적 발상’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4-09 17:20:07
  • 수정 2015-04-17 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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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병원 “북장로회 선교회에 운영권만 위탁해 소유권은 조선정부 것”

연세대의료원 “남의 건물에서 병원 운영해도 병원 소유권은 운영자에게 있는 것”

올해 설립 130주년을 맞은 제중원이 때아닌 ‘뿌리 논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연세대의료원이 서로 정통 계승자임을 자처하며 웃지 못할 헤프닝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은 이미 지난 3일부터 5일간 제중원 1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으며, 연세대의료원은 오는 10일 하루 동안 성대한 기념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제중원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으로 1885년 설립됐지만 정확한 설립 시점과 기원에 대해서는 두 병원의 주장이 확연히 다르다. 각자 다른 날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제중원이 미국 선교사이자 의사인 앨런 박사의 요청으로 설립됐으며 이후 조선 정부로부터 운영권을 이양받은 미 북장로교 선교회가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로부터 거액을 기부받아 현재 세브란스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정통 계승자라고 주장한다. 앨런이 작성한 ‘제중원 1차연도 보고서’를 토대로 환자 진료를 시작한 4월 10일을 제중원 설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반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고종의 재가에 따라 만들어졌고 건물 부지와 예산 등을 조선 정부가 부담한 ‘국립병원’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국립대병원을 대표하는 서울대병원이 진짜 계승자라고 맞서고 있다. 제중원이 소속됐던 외아문(현 외교부)의 업무일지 사료를 바탕으로 고종이 백성에게 근대병원 설립을 알리는 방문(榜文)을 붙인 4월 3일을 설립일로 본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던 뿌리 논쟁은 최근 발생한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사건 때 다시 불붙었다. 지난 3월 9일 세브란스병원은 리퍼트 대사의 치료 경과를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은 제중원”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날 정남식 연세대의료원장은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이 개화파의 공격을 당해 자상을 입었을 때 앨런 박사가 치료해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고종이 앨런 박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제중원을 설립했고 그게 세브란스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세브란스병원 측이 공개적으로 정통 계승자임을 밝히자 서울대병원 측은 “제중원 운영에 앨런 박사가 역할을 많이 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를 두고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동일시하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두 병원간 충돌은 라디오방송에서도 이어졌다. ‘제중원 설립 후 소유권과 운영권이 누구에게 있나’가 핵심 쟁점이었다. 백재승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장은 지난 6일 MBC 표준FM ‘왕상한의 세계는 우리는’에 출연해 “알렌의 요청으로 제중원이 설립됐다는 세브란스병원 측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너무 틀리다”고 주장했다. 백 원장은 “알렌이 등장하기 전부터 서양식 국립병원 설립은 이미 추진되고 있었다”며 “조선정부의 근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서양의료 도입계획에 알렌의 건의가 더해진 것 뿐”이라고 말했다.

1894년 9월 26일 조선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에 이양했다는 주장에는 “당시 정황상 일제에 뺏기지 않기 위해 운영권만 위탁한 것일뿐 소유권은 여전히 조선정부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제중원은 우리나라의 민족적 국가적 자산으로 의료선교의 역할만을 앞세워 일개 사립기관이 역사성을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즉 조선이 미국 선교회에 당시 국립병원격인 제중원의 운영권만 넘겼을 뿐 소유권은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에 이어 건국된 대한민국의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계승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이에 여인석 연세대 의대 의사학과 교수는 8일 같은 방송에 출연해 서울대병원 측의 국립병원 계승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 교수는 “서울대병원은 대한민국, 제중원은 조선왕조가 설립한 기관으로 그 사이에 일본제국이 세운 총독부기관이 끼어있다”며 “서울대병원의 주장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일본제국을, 일본제국은 조선을 계승했다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에 도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립병원설은 조선의 성균관, 고려시대 국자감, 고구려 태학 등이 모두 서울대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제중원 운영권만 위탁했을 뿐 소유권은 양도하지 않았다는 서울대병원 측의 주장에는 “내가 남의 건물을 빌려 병원을 하더라도 이 병원은 나의 소유이지 건물주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을 다른 장소로 옮기더라도 운영자가 동일하면 병원의 연속성이 유지된다”며 제중원의 소유권이 세브란스병원에게 넘어왔다고 강조했다.

여 교수는 운영 주체의 연속성도 언급했다. 그는 “제중원의 의료책임자는 미국 북장로교회가 파송한 선교의사들이었고, 이들이 세브란스병원에서도 동일하게 운영주체로 참여하기 때문에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연속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울대병원은 1980년대 들어서야 제중원이 자신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 이전에는 어떤 자료에도 제중원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며 “전통시대 공공의료 정신을 계승한다는 서울대병원의 주장은 굉장히 시대착오적 생각으로, 소모적인 뿌리 논쟁을 일으킬 게 아니라 현대 한국사회에서 바람직한 의료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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