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팔과 사람의 팔 중 무엇이 더 섬세하고 정확한가’는 의료계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굳이 고가의 돈을 들여 로봇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견해와 수술 상처와 후유증을 줄이는 데 유용하다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환자 안전 및 병원 경영과 직결된 사안이다보니 로봇수술 옹호론자와 반대론자들은 5년 가까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다. 이처럼 로봇수술의 안전성 및 유효성이 아직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대학병원들은 경쟁하듯 로봇수술 장비를 도입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이 로봇수술 도입에 열을 올리는 것은 출혈이나 합병증 위험이 적다는 장점 외에도 기존 복강경수술보다 치료비가 6배 가까이 비싸 수익 향상에 도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장비 비용은 30억~40억원, 연간 평균 유지보수 비용은 약 2억~2억5000만원에 달해 수익구조를 맞추지 못할 경우 병원 재정을 갉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로봇팔은 영구적인 게 아니라 소모성 재료여서 10회 이상 사용할 경우 케이블이 멸균소독 과정에서 망가져 수술 조작의 민감도가 떨어진다. 평균적으로 한 번 수술에 120만원의 비용이 추가로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로봇수술이 활성화되면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병원들이 기존 개복수술이나 복강경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에게 로봇수술을 권유하는 등 과잉진료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모든 부담은 환자에게 전가된다.
2010년 당시 양승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現 차의과학대 강남차병원)가 “병원들이 기존 복강경수술과 안전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로봇수술을 수익 창출을 위해 환자에게 권유하고 있다”고 양심고백을 한 뒤 의료계에서는 옹호론과 회의론이 끊임없이 충돌해왔다. 특히 2011년 신우암을 앓던 탤런트 박주아 씨가 신우암으로 로봇수술을 받은 뒤 십이지장 천공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로봇수술의 안전성에 대한 의혹이 증폭됐다.
의사들의 이런 대립을 보는 환자는 혼란스럽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당 비용이 500만~2000만원에 달해 부담이 크고 안전성도 아직 확신할 수 없어 선뜻 로봇수술을 받기가 두렵지만 대학병원 교수가 권위를 앞세워 권유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고, 인터넷이나 책으로 얻는 정보는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다빈치로봇수술은 피부를 최소절개한 뒤 로봇팔을 원격으로 조정해 병변 부위를 치료하는 것으로 개복수술로는 제거하기 어려운 부위의 병변 제거에 효과적이다. 2005년 국내에 도입돼 신의료기술로 인정된 뒤 연평균 51.4%씩 수술 건수가 증가했다. 지난해 6월 기준 국내 35개 대학병원에 45대의 다빈치로봇수술 장비가 설치돼 있다. 수술용 로봇 제조회사인 인튜이티브서지컬이 국내에 독점적으로 장비를 공급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모든 치료법이 그렇듯이 로봇수술도 장·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최소절개 후 병변을 수술하기 때문에 출혈량이 적고 부작용 위험이 낮으며 흉터 크기가 작아 미용적으로도 우수하다. 최근엔 손목관절 기능이 추가돼 좁은 공간에서도 수술 도구를 충돌 없이 다루는 데 적합하다. 또 사람 손과 달리 미세한 손떨림이 없어 수술정확도 및 안전성도 높다는 게 로봇수술을 옹호하는 측의 의견이다. 의사 입장에서도 복강경이나 개복수술에 비해 시술법을 익히기 쉽고, 짧은 수술시간 덕분에 체력 부담이 덜해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반대 측은 로봇수술의 안전성·효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장기추적 연구결과가 아직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피부절개 범위가 작으면 출혈이 적고 미용적으로 우수하긴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내시경 렌즈로만 환부를 보며 로봇팔을 움직일 경우 주변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며 “3차원 영상이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무조건 나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로봇수술이 기존 수술보다 우위를 가지려면 수술 경험이 많고 로봇 조작에 완전히 숙달하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로봇팔이 사람 손에 비해 떨림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촉각을 느낄 수 없어 병변 부위 장기를 손상시키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의사가 환자 바로 옆이 아닌 몇걸음 떨어진 조종석에 앉아 있다보니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월 18일 발표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결과는 로봇수술 회의론에 힘을 실어준다. 연구원이 자궁암, 결장암, 방광암, 폐암, 구강 및 인후두암, 식도암, 부신암 및 신우요관암 등에 대한 로봇수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분석한 결과 기존 수술법보다 합병증 발생이 의미있게 낮은 질환은 자궁암뿐이었다. 자궁암 중 자궁경부암의 경우 개복수술보다는 합병증 발생률이 낮았지만 복강경수술과 비교할 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재원기간 등을 단축시키는 등 장점도 있었지만 사망률과 합병증 발생률은 비슷했다.
방광암의 경우 오히려 로봇수술 후 협착 발생률이 기존 수술보다 높았고, 기관지암·식도암·부신암·신우요관암 등은 축적된 임상 근거가 부족해 유효성 입증에 실패했다.
위암의 경우 박성수 고려대 안암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위암 로봇수술과 복강경수술 비교’와 ‘위암 복강경, 개복수술과 비교한 로봇수술의 문헌고찰과 메타분석’ 등 두 논문에서 위암에서는 복강경수술에 반해 로봇수술의 장점이 별로 없는데 반해 비용은 2~3배 비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국보다 로봇수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미국의사협회지(JAMA)에는 로봇수술이 복강경수술과 치료효과는 비슷하지만 비용은 33% 정도 비싸다는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이에 대해 손승완 인튜이티브서지컬코리아 부사장은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외과학회 심포지엄에서 “로봇수술의 비용 대비 효용성을 설명하기 위해선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수술 부위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얘기하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로봇수술은 개복수술과 달리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고 정교한 수술이 가능해 비용 대비 효율성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로봇수술이 비용 대비 효율적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좋다 아니다’라고 결론 내리기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미래의료의 먹거리로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한의료로봇학회 관계자는 “이미 로봇수술은 전세계적인 시대흐름으로 단순히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만 결론내리고 배척한다면 한국의료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