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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병원 올해 목표는 ‘성공’ 아닌 ‘생존’? … 경쟁력 확보 비법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5-03-05 12:59:48
  • 수정 2015-03-09 10: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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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화 가능 의료기술, 의료진 연구능력, 적극적 언론홍보, 전문성 확보 바탕 틈새시장 공략 핵심

저수가 및 급여 확대 등으로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문을 닫는 중소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빅5’를 비롯한 대학병원들조차 비상경영을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은 반등을 노릴 여지조차 없다. 병원 수가 포화 상태에 달한 척추·관절병원은 물론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치과, 내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병·의원은 등은 거의 고사된 상황이다. 서울시 은평구의 한 내과 원장은 “5년전 병원 문을 열 때만 해도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제는 생존이 목표가 돼 버렸다”고 씁쓸해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부 병원은 나름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발전해가고 있다. 어떤 병원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기도 하고, 다른 병원이 잘 다루지 않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곳도 있다. 개성있고 폭넓은 홍보마케팅이 경쟁력 확보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의료계 암흑의 시기, 상대적으로 경영상황이 열악한 중소병원들이 생존 혹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어떤 게 있는 지 알아본다.
 
전문가들은 중소병원의 위기는 국내 보험급여 체계의 구조적 모순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연세대 명예교수, 경제학 박사)은 최근 ‘위기의 중소병원’을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지역 응급실과 분만실이 사라지고, 중소병원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은 보험급여체계의 구조적 모순을 방치했기 때문”이라며 “중소병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환자안전과 직결되는 의료기관인증제도와 보호자없는병동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어 “중소병원이 제 기능을 다해야 지역주민들이 편리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응급의료나 분만의료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중소병원들의 경영악화 원인으로는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수가 인하 등 저수가 정책 △인건비 및 물가 상승 △상급병실료·선택진료제·간병비 등 3대 비급여 개편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확대 △세금제도 강화(지방세 감면축소) △신용카드 수수료 인상 △특수진료(야간당직자) 인건비 △보험회사의 지출감소 노력(실손보험) △미디어 및 시사방송의 예방 강조 △경영투명화(리베이트 감소) 등이 꼽힌다.

김광점 가톨릭대 의료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료진의 우수한 의술은 물론 원장의 경영자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개원 초기에는 해당 진료 과목에서 독특한 영역을 찾아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존 의료관행에 대한 역발상을 통해 새로운 영역과 방식을 개척하고 이를 병원의 문화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의 상업적 성공엔 의술보다 경영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의료진의 연구능력, 적극적인 언론홍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상품화가 가능한 핵심 의료기술을 보유해야 선도적 위치에 설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일종의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해 의료진에게 연수 및 재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일정 수준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인 언론홍보를 통해 환자들로부터 사회적인 호평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 중심의 병원시설 배치 등 하드웨어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유인상 김포 뉴고려병원 의료원장은 최근 ‘한국의료산업의 경쟁력’을 주제로 열린 제5회 한국의료경영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사회적 평판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경험”이라며 “기능성·효율성·융합성을 고려해 환자 중심으로 병원 건물 및 시설을 배치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고 환자와 보호자들이 자주 찾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환자 외에 일반인도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을 마련해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게 좋다”며 “다른 병원이나 기업과 상생경영을 통해 새로운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성으로 틈새시장을 공략, 위기를 헤쳐나가는 병원도 있다. 한강수병원은 일반 성형외과 의사들이 꺼려하는 화상치료에 특화된 의료기관으로 개원 2년만에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장영철 한강수병원 원장은 “대학병원 중 화상 전문병원은 한강성심병원 한 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개인병원이어서 화상 환자를 충분히 수용하기에 벅차다”며 “화상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형외과의 경우 의사의 관심이 수익성이 높은 미용·성형에만 몰려 있어 화상 전문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과잉진료 및 수술을 지양하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훈재 서울부민병원장은 “수익에만 매달리는 병원은 잠깐 성장할지 몰라도 오래가기는 어렵다”며 “일부 병원은 수술 건수에 따라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방식으로 과잉수술을 조장하고 있지만 부민병원은 아침마다 모든 의료진이 모여 스터디를 하고 수술케이스를 공유함으로써 과잉수술을 원천 차단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의료시장 진출도 고려해볼 수 있다. 전세계 의료서비스 시장 규모는 2009년 2조2000억달러에서 올해 3조8000억달러로 급성장했으며, 2020년엔 5조5000억 정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의료시장은 연평균 15%씩 성장해 2020년엔 전세계 의료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학병원처럼 규모가 큰 병원보다 전문성을 강조하는 중소병원들이 해외 진출에서 오히려 경쟁력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산업진흥원이 발간한 ‘2013년 보건산업백서’에 따르면 중소병원들의 전문진료 과목 수출이 대형병원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무턱대고 해외진출을 시도할 경우 해당 국가의 관습이나 제도, 시장의 특수성에 부딪혀 고배를 마실 확률이 높다.

2013년 보건산업진흥원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조사한 결과 법·제도 관련 문제가 36%로 가장 많았고 현지 네트워크 부족(24%), 재무(19%) 등이 뒤를 이었다. 법 제도 부문에서는 국가별로 차이나는 의료면허 및 인허가제도와 의약품 수·출입 관련 현지 평가등록제도가 실무자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트워크 부문에서는 신뢰할 만한 현지 파트너 정보에 대한 부재, 재무부문은 투자 및 운영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이 애로사항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내 의료기관의 진출이 가장 활발한 중국의 경우 관련 법 규정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거나 상충하는 내용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병원만의 고유한 ‘브랜드’ 설정도 중요하다. 브랜드라는 개념이 의료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한국능률협회가 브랜드파워 평가 대상에 병원을 포함시키면서부터다. 경영컨실팅 회사 엘리오앤컴퍼니의 정철 팀장은 최근 개최된 대한병원협회 세미나에서 “병원의 비전과 고객의 인식이 일치하면 브랜드가 된다”며 “환자가 병원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면 각 병원이 갖는 속성(attribute)을 연상한 뒤 받게 되는 혜택(benefit)을 고려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홍정용 대한중소병원협회 회장은 “중소병원은 의원과 대학병원 사이에서 생존을 심각하는 고민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절실함이 묻어나는 시대가 왔다”며 “의료전달체계 중간전달자인 중소병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 중소병원의 경우 지역적 특성과 한계로 인해 상대적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병원들의 인력난도 꼬집었다. 그는 “많은 간호인력들이 대형병원으로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간호인력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병원의 위기를 해소하려면 환자 식대수가 현실화,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완화) 등 조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생존의 무한경쟁에 내몰린 중소병원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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