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미래 먹거리를 위한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대표적 사업 분야가 바이오·제약이다. 더욱이 바이오·제약은 이재용·이부진·이서현 3남매의 삼성그룹 상속 분할 과정에서 ‘킹핀’ 역할을 할 수도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근 이서현 사장이 이끄는 제일기획의 경우 이사급 이상 인사들을 대거 전보 조치하고 제일모직(옛 제일모직 및 에버랜드) 간부들을 순환보직 방식으로 제일기획으로 이동시켰다. 전보 조치를 당한 기존 제일기획 임원들은 지방으로 발령나는 등 일종의 퇴진 압력을 받았다.
이번에 제일모직에서 제일기획으로 이동하는 한 상무는 사무실 뒤에 접이식 침대를 가져다놓고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겠다는 부하 직원에게 말없는 엄포를 놨다. 이 부서의 출근 시간은 기존 7시에서 6시 반으로 30분이나 당겨졌다.
이는 삼성그룹내 상속 전쟁에서 가시화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해당 부서는 물론 기업의 삼성그룹내 입지가 흔들릴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속 구도에서도 성과가 없는 3남매 중 하나는 명분을 축적하지 못해 손해를 볼 공산이 크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에버랜드(지주회사격)·삼성생명(금융)·삼성전자(전자)를, 이부진 사장이 신라호텔과 건설·중화학, 이서현 사장이 패션과 광고미디어를 나눠맡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같은 그룹 내 인사이동에 내부에서조차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3남매 중 누가 먼저 가시적인 경영성과를 내느냐가 향후 상속전에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e삼성의 실패 등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신라호텔을 통해 유명인사 결혼식 유치, 면세점내 해외명품 브랜드 입점 등으로 단기간에 매출을 올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이서현 사장은 해외 네트워크 확장 및 국제광고제 수상 등에서 성과를 올렸지만 구체적인 매출 증대 효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삼성그룹은 5대 신수종 사업 가운데 태양전지 분야를 포기한 것으로 보도됐다. 바이오·제약 분야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제조를, 바이오에피스는 연구 및 개발을 분담하고 있다. 만약 삼성 바이오·제약 부문이 삼성메디슨과 통합해 헬스케어 분야 소그룹을 형성할 경우 이를 3남매 중 누가 가져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삼성메디슨은 국내 의료기기 시장 규모가 작고, 자본력이 부족한 데다 기존 주주의 영향력을 줄이려면 삼성 헬스케어 그룹의 통합 상장이 유력하다. 이럴 경우 헬스케어 분야는 삼성그룹에서 전자나 금융(보험·카드), 라이프산업(패션·리조트·광고·미디어)에 못잖게 비중이 커질 뿐만 아니라 고령화사회를 맞아 높은 성장성을 지닐 것으로 점쳐진다.
주식시장 전문가들은 삼성 헬스케어 분야가 제일모직보다는 삼성전자와 합병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제일모직은 이서현 씨가 사장으로 있긴 하지만 3남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제일모직 출신의 제일기획 이동은 이서현 사장의 속내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와 로슈 등 제약사의 바이오 의약품을 위탁 생산하고 머크(Merck)와 마케팅 파트너 계약을 했다.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송도경제자유구역에 7억 달러를 들인 연산 15만리터 규모의 바이오 공장이 증설되면 연산 18만리터를 생산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과 삼성전자가 각각 45.65%, 삼성물산이 5.75%, 퀸즈타일이 2.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90.3% 확보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4개의 임상 3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화이자의 류머티즘 관절염치료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인 ‘SB4’는 유럽의약국(EMA)에 판매허가를 신청했다.
삼성전자나 제일모직은 각각 그룹의 상징적인 모함(母艦)으로 증권가에선 두기업을 합친 가상기업의 지주회사가 출범에 상속 비율 획정을 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1994년에 삼성의료원을 설립하고 건강검진센터 등을 운영하면서 한국인의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오는 등 나름 미래를 대비한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향후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의 반도체’가 아닌 ‘이재용의 바이오’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강박감에 쌓여 있다. 지분관계 정리와 납부할 상속세도 준비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헬스케어 분야 사업을 누가 가져가느냐는 예민한 문제로 부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