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는 4가 독감백신의 3상 임상시험계획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았다고 30일 밝혔다. 4가 독감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3상 임상시험까지 마치면 제품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이 회사는 이달 초 세포배양 기술을 활용한 4가 독감백신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4가 독감백신은 4종류의 독감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1회 접종으로 얻을 수 있는 백신이다. 3가 독감백신으로도 충분한 면역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B형 독감바이러스에 대한 예방효과도 얻을 수 있는 4가 독감백신 접종이 권고되는 추세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독감백신은 3가지 독감바이러스를 예방하는 3가 백신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내 25개 소아·성인용 독감백신 중 10여개 제품이 4가 백신이다. 미국시장에 지난해부터 4가 독감백신이 공급되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독감백신 제조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번째 방식은 유정란을 이용한다. 대부분 백신 제조사들이 이용하는 방식으로 60여년의 역사를 가졌다. 두번째는 세포배양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동물세포에 바이러스를 배양한 뒤 백신을 만든다.
두 방식은 각각 장점이 뚜렷하다. 세포배양 방식은 전통방식에 비해 생산기간이 짧다. 이에 인플루엔자 판데믹(pandemic, 전염병 대유행)과 같은 백신공급이 빨리 필요한 시기에 위력을 발휘한다. 또 AI(조류독감)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유정란 배양 방식은 오랜 역사로 안정성이 입증됐고 세포배양 방식에 비해 생산단가 면에서 유리하다.
세포배양 방식이 기존 유정란 배양 방식에 비해 큰 이점을 주지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백신 제조사들은 매년 다음 시즌 독감백신에 포함될 균주를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추천받는다. WHO는 백신 출하시기와 7개월 이상의 기간을 두고 균주를 추천하기 때문에 기존 유정란 배양 방식의 생산기간으로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글로벌 백신 제조사인 사노피파스퇴르는 2005년 미국 정부와 세포배양 백신 개발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가 파기했다. 이 회사는 단순히 유정란을 대체하고 큰 이점이 없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제조방식 차이는 독감백신의 품질과 상관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분야 최고 권위지인 ‘네이처메디신(Nature Medicine)’에 따르면 독감백신 제조 방식은 독감바이러스 예방 정도와 상관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녹십자는 기존 유정란배양 방식과 판데믹, 조류독감 등 위험요인으로 인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세포배양 방식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안동호 녹십자 종합연구소 상무는 “녹십자의 4가 독감백신 개발은 4조원에 달하는 글로벌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미 포화된 국내 독감백신 시장에서 국내 후발주자들과의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내 독감백신 연간 소비량은 약 1600만도즈(성인 1회 접종량)로 세계 시장에서 소비되는 4억도즈의 4% 수준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독감백신 국내 유일 생산시설이라는 독보적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녹십자 독감백신 수출액은 280억원에 달했다. 수출을 시작한 2010년 수출액 대비 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같은 상승세가 이어져 올해 독감백신 수출고는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감백신의 수출 성장 비결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이다. 국제기구 독감 백신 입찰 자격은 전세계에서 4곳이 갖고 있는데 아시아에선 녹십자가 유일하다. 다인용과 1인용을 모두 국제기구에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사노피와 녹십자 두 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