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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의료민영화 논란 … 영리자회사, 진료비 상승 유발 우려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7-25 06:30:19
  • 수정 2014-07-31 15: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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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 돈벌이 대상 전락, 서비스 선택권 제한… 1980년대 미국선 과잉진료·의료비상승 부작용

지난 2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기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지난 22일부로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확대 및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자 ‘의료민영화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민영화 반대를 외치는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한층 거세지는 분위기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6000여명은 입법예고 마지막날인 지난 22일부터 5일간 의료민영화 정책 중단, 의료민영화방지법 제정,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가짜 정상화 대책 폐기, 진주의료원 재개원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지난달 24~28일 전개된 1차 파업에 이은 두 번째 파업이다.
무상의료운동본부가 진행 중인 ‘의료민영화 반대 100만명 서명운동’에는 현재 110만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도 이번 개정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의료법인 부대사업의 범위를 명문화하는 개정안을,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치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상정되지는 못했다.
입법예고 마지막날인 지난 22일에는 반대의견을 게재하기 위해 접속자가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보건복지부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국 851개 의료법인(지난해 12월 기준, 의료기관수로는 1203개)은 외부 출자를 받아 자회사를 설립, 온천·숙박업·여행업 등 영리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서울대병원이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학교법인과 사회복지법인에 한해서만 자회사 설립을 통한 영리사업이 허용됐다. 반면 전체 의료기관의 약 2%를 차지하는 의료법인은 구내식당, 의료인 교육, 장례식장 등 의료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불황, 수가 저하, 보험급여 확대 등으로 재정상황이 악화되자 병원계는 정부에 영리사업 허용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자회사 설립이 허용되는 의료법인에는 분당차병원, 가천대 길병원, 을지병원, 제일병원 등 전국의 대형병원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이들 병원은 앞으로 온천 및 목욕장업, 의료기기·건강식품 개발, 바이오산업, 의료기관 임대, 외국인 환자 유치, 여행 및 숙박업 등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면 삼성서울병원이나 현대아산병원 등 대기업 계열 병원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있어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영리자회사 허용이 영리병원을 우회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투자개방형병원(For-profit hospital), 즉 영리병원은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자본을 투자받아 병원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주식회사 형태의 의료기관이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기관 개설주체는 의료인 및 비영리법인(의료법인·사회복지법인·학교법인)으로 한정된다. 이 때문에 일반기업이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비영리법인을 설립해야 하는데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삼성의료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개설 주체로 돼 있다.
영리의료법인이 도입되면 누구나 제한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영리병원 도입이 아니다”고 일축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의견은 다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내 전체 병·의원 6만577개 가운데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곳은 1203개로 약 2%”라며 “나머지 98%는 지금도 별 제한 없이 부대사업을 할 수 있고 자법인 설립도 가능하기 때문에 형평성 개선 차원에서 의료법인에도 부대사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급만 따져도 전체 병원 3422개 가운데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곳은 999개로 29% 정도다. 나머지 71%는 자법인 설립에 제한이 없다.

그러나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영리자회사 허용이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첫 발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관계자는 “자회사라는 우회로를 통해 외부자본 투입, 영리사업, 이윤 배분 등을 추진함으로써 영리병원 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며 “의료기관들은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보다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부대사업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고 환자는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행 의료법상 모든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창출되는 수익을 고유 목적인 병원의 진료활동에만 재투자해야 한다. 반면 주식회사 형태의 영리자회사는 수익을 주주에게 배당할 수 있으며, 배당을 하려면 상품을 팔아 이익을 남겨야 한다. 병원이 자회사를 통해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면 의료공공성은 훼손되고 진료비 부담은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병원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자회사의 의료기기, 의약품, 건강식품 등을 환자에게 권유 및 사용하게 되고 이는 독점 공급으로 인한 환자의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의사가 환자를 자회사가 운영하는 센터(비의료기관)에서 치료에 준하는 의료서비스를 받게 하고, 병원이 이를 유도한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왜곡된 의료체계를 가정해볼 수 있다. 의사가 내리는 처방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거나 유사 의료행위가 될 경우 환자의 진료비 부담은 가중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료법인 부대사업 확대는 의료관련업을 포함한 대부분 업종을 포괄적으로 허용해 병원을 의료복합기업으로 변화시키게 된다”며 “자회사 허용은 의약품 및 의료기기 사업 등 의료업과 호텔업 등 다양한 업종을 포함하고 있어 병원의 심각한 영리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지난 17일 새정치민주연합 의료영리화저지특별위원회가 주최한 ‘박근혜정부 의료영리화 행정조치의 위법성과 그 영향’ 토론회에서 1993년 미국 회계감사원 보고서를 인용해 영리자회사의 폐혜를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 미국의 비영리병원 영리자회사는 의료비 증가, 과잉진료, 저소득층의 의료접근성 저하 등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됐다”며 “정부의 이번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 같은 문제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가 발표한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 운영 가이드라인’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복지부는 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법인 설립 남용 및 의료법인 자산 유출 등 부작용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의료법인은 순자산의 30% 이내에서만 자회사에 투자할 수 있으며, 자회사의 최대주주로서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의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의료법인과 자회사간 부당내부거래는 금지되며, 의료법인은 자회사의 채무에 대한 보증을 설 수 없다. 영리자회사는 소득의 80% 이상을 공익사업에 사용해야 한다.
얼핏 과도한 영리추구행위를 방지하는 조항 같아도 만약 시행될 경우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에 외부자본의 지분 비율이 최대 70%에 달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다수의 외부투자자가 연합해 의료법인의 자회사를 지배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노동 팀장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의료법인의 자법인은 상법상 회사로 설립 가능한데 상법의 규율을 받게 되는 회사는 그 목적사업의 범위를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가이드라인은 고작해야 시행규칙에 불과하므로 상위법인 상법을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는 설립 후 상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그 이후 수행하는 사업은 복지부가 규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최악의 상황은 투기자본이 의료법인의 자회사에 유입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메릴린치사모펀드 등 투기자본이 병원계에 흘러들어가면서 대형병원들의 시장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역 중소병원은 도산하고, 환자는 고비용 의료시장구조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제도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자회사 설립이 비보험진료 확대, 유사 의료행위 방조 등을 통해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보험 자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민간병원 비율은 약 90%로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그나마 강력한 건강보험제도인 ‘건강보험당연지정제’와 ‘비영리병원’ 등이 버팀으로써 의료의 공공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고 있는 형국이다. 건강보험당연지정제는 모든 국민은 공보험인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 적용을 거절할 수 없게 국민건강보험법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미국의 경우 특정 민간보험과 제휴한 의료기관에서만 보험 혜택이 제공된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60%대에 불과한 현재 상황에서 영리자회사 허용으로 인해 진료비가 상승할 경우 공공보험으로서의 근간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이번 개정안 자체가 의료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22일 “정부가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으로 인정 숙박·여행·국제회의·임대업은 의료법이 정한 비영리 목적의 의료업 범위를 넘기 때문에 의료법 위반”이라는 내용의 입법예고 의견서를 복지부에 제출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주업무는 의료·조산으로 한정되고 영리 목적이 아닌 범위에서만 부대사업이 허용되는데, 시행규칙 개정안은 의료기관의 비영리 업무와 거리가 먼 영리 부대사업들을 풀어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료법은 환자종사자 등의 편의를 위한 부대사업을 시행규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의료법인이 자법인을 만드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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