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아닌 ‘치료’라는 시각도 … 약물치료효과 검증없는 일률적 투여는 인권침해 소지
약물을 통한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율을 낮춰준다는 보고가 있으나 국내서 처음 시행되는 만큼 약제를 고를 때에도 여성호르몬제를 사용하는 게 좋을지,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활용해야 할지, 얼마나 투약했을때 성욕 감퇴효과가 확실히 유지될 것인지, 그 이후에 회복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등에 대한 연구자료가 거의 없거나 매우 빈약한 상태다.
지난 1월,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 고종석에게 국내 첫 화학적 거세(化學的 去勢, chemical castration) 5년 판결이 내려졌다. 2011년 7월 16세 이하 아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화학적 거세를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한 뒤로 처음이다.
화학적 거세는 성적 활동이나 성욕을 감퇴시킬 목적으로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다. 거세라고 하면 보통 생식에 필요한 고환 등을 제거해 생식이 불가능한 상태를 떠올린다. 고대나 중세에는 형벌로 실시되기도 했으며,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도 한나라 무제에게 ‘궁형’(宮刑, 거세술을 받는 형벌)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래엔 고환암·전립선암 등의 치료법으로 활용될 뿐, 벌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내시·환관들이 거세술을 받은 남성으로 어렸을 때 거세받게 되면 남성의 특징이 발현되지 않고 생식뿐만 아니라 성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고환을 적출하는 물리적 거세와 달리 화학적 거세는 성 불구로 만들거나 실제 개인을 거세하는 게 아니다. 간혹 골밀도 저하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화학적 거세는 일반적으로 약물의 투여가 지속되지 않으면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으로 고려된다. 화학적 거세는 인권침해와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나 사법 및 공공정책의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 미국, 유럽, 이스라엘, 아르헨티나, 러시아,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 법적으로 허용하거나 시행하고 있다.
화학적 거세에 사용하는 약물은 다양하다. 황체유리호르몬 촉진체(LHRH agonist), 피임약 데포-프로베라(DMPA, 주사용 피임제), 케토코나졸(ketoconazole), 항정신제 벤페리돌(Benperidol), 항남성호르몬제(안드로겐 억제제)인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cyproterone acetate) 등이 대표적이다.
고환은 뇌로부터 남성호르몬 생성량에 대해 조절 및 피드백을 받는다. 남성호르몬이 부족하면 시상하부의 황체유리호르몬(LHRH)이 증가해 뇌하수체에서 황체호르몬(LH)을 분비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늘어난다. 하지만 약물로 이 과정을 차단하면 호르몬이 더이상 분비되지 않게 되고 수술로 거세한 것과 같은 상태가 이뤄진다. 황체유리호르몬 촉진체(LHRH agonist)가 뇌하수체의 황체유리호르몬 수용체(LHRH receptor)를 변형시켜 결국 황체호르몬 분비를 저하시키는 셈이다.
약물 사용 후 2주 이내에 고환을 절제한 것과 같이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진다. 경구 복용은 어렵고 매달 1회 또는 3달에 1회씩 피하주사를 놓는 방법을 활용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황체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해 결과적으로 남성호르몬 분비를 감소시킨다. 에스트로겐 중 가장 많이 쓰는 제제가 DES(diethylstilbestrol)이며 이를 매일 3~5㎎씩 투약하면 수술적 거세 수준으로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진다.
이밖에 항남성호르몬제제(antiandrogen)인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cyproterone acetate), 주사피임약 데포-프로베라(DMPA), 무좀치료제·항진균치료제로 알려진 케토코나졸(ketoconazole), 항정신제인 벤페리돌(Benperidol) 등이 활용된다.
화학적 거세로 인해 부작용은 적잖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부작용은 적은 것으로 보고되지만 여성형 유방, 안면홍조, 피로감, 체중 증가, 골밀도 감소, 근손실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간혹 고혈압, 간기능 이상 등이 나타나기도 하며 우울증을 초래할 수 있다.
국내서 매년 성범죄가 늘어나다보니 국민의 인식도 ‘성범죄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입장이 대다수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75%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한켠에선 인권침해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국내서 많이 연구되거나 시행된 게 아닌 만큼 적용 요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다른 대안보다 인권이 더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수술적 거세는 되돌릴 수 없지만 화학적 거세는 재범 위험이 없어졌다고 판단되면 약을 끊고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범죄자 입장에서는 성욕이 줄어들지라도 직업생활 등 일상생활에서 다른 욕구를 충족하면서 살 수 있으며, 약간의 권리를 제한하는 대신 다수의 인권을 지키는 것인 만큼 적극 시행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다만 “화학적 거세를 적용할 때 성범죄의 심각성, 방법적 타당성, 다른 대안과 비교한 비용효과성 등이 담보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학적 거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손실 축소 및 국민의 안전 우선’을 주장한다. 반복되는 성범죄로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이 크며, 성범죄 피해자는 몸과 마음이 난도질당하고 파괴된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도 큰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겪게 돼 사회가 감당하는 직간접적인 손실이 막대하다.
우종민 교수는 “일각에서는 성범죄자의 인권 침해 소지를 제기하는데 그로 인한 손실이 과연 성범죄자가 입히는 손실보다 더 크겠느냐”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성범죄자보다는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소아기호증과 성도착증을 지닌 상습적 성범죄자는 심리적인 요인으로만 성충동을 설명하기 어렵고, 남성호르몬의 이상과 같은 의학적 문제가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화학적 거세는 성충동 조절을 통한 위험성 감소라는 목적에 부합한다. 실제로 덴마크에서는 화학적 거세로 성범죄자의 재범률을 30∼40%에서 5%로 낮추었다.
이에 반해 미국 자유인권협회는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압적인 약물투여에 반대한다. 이 단체는 강제적 화학적 거세에 대해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처벌”이라며 “약물을 투여받는 이들이 건강상의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존 스틴포드 미국 법학교수는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자들에게 성욕을 못 갖게 만들고, 그들에게 심적 통제를 가하며, 여성 호르몬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심적 변화를 이끄는 것은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처벌”이라고 강조했다.
문현준 씨알비뇨기과 원장은 “화학적 거세에 쓰일 루프론·졸라덱스 등 전립선암 치료용 테스토스테론 억제제가 성욕감퇴라는 목적에 달성하려면 고용량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라며 “아직까지 국내서 활용된 적이 없는 만큼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약제를 고를 때에도 여성호르몬제를 사용하는 게 좋을지, 남성호르몬 억제제를 활용해야 할지, 얼마나 투약했을때 성욕 감퇴효과가 확실히 유지될 것인지, 그 이후에 회복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등에 대한 연구자료가 거의 없거나 매우 빈약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화학적 거세를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내리는 처벌이 아닌 ‘재발하는 병’에 대한 ‘관대한 치료’로 보기도 한다. 문 원장은 “화학적 거세는 판결의 근거가 되는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처럼 것처럼 ‘약물치료’로 여겨지기 쉽다”며 “범죄자가 아닌 성도착환자로 간주한 법원의 인도적인 치료명령으로 비춰지는 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회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성범죄자에게 내려진 엄벌이라고 이해하는 일반인의 인식과 궤가 다르다.
범죄예방 및 처벌을 위해 법정에서의 판결만으로, 성범죄자 개인의 의학적 판단과 자문도 없이 어떤 전문의약품의 투약이 일률적으로 결정되는 상황에 대해 적잖은 의사들은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아성기호증환자, 변태성욕자, 인격장애자 등은 환자이기 이전에 잔혹한 성폭력을 일삼은 범죄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적·비뇨기과학적 진단과 약물학적인 고려 없이 장기간의 임상시험과 결과도 없는 약물을 법원의 판결 하나로 형벌적 목적으로 투약을 결정하는 게 비합리적인 면이 있다는 게 일부 의사들의 견해다.
문현준 원장은 “어떤 질환의 치료(화학적 거세)가 성공적이려면 치료(처벌)가 결정되기 전에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필요성 여부의 판단에 의해 치료방법을 선택하는 순서가 결정돼야 할 것”이라며 “약물 투여가 결정되더라도 약의 효능은 물론 부작용까지 의료진에 의해 감시돼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병적인 성적충동조절장애만 갖고 있다면 고도로 훈련된 정신과의사가 인지행동치료를 중심으로 검증된 약물요법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해당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 치료효과 검증 플랜, 환자의 자발적인 치료의지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