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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부르는 ‘층간소음’ … 수면부족·불안감 피하는 법은?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6-01 19:07:05
  • 수정 2014-06-05 20: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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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속적 소음, 스트레스·혈행장애 유발 … 직접 방문보다는 중재해결 효과적, 실내화 착용 필수

층간소음 등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점차 예민해지면서 불면증이나 불안증 등 정신건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서울 우이동에 사는 간호사 이모 씨(28·여)는 한달 전부터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야간근무가 많은 탓에 낮잠을 잘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 잠을 깨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낮밤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다 못해 항의차 집을 방문한 이 씨에게 윗집은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태도가 돌변했다. ‘결혼도 안한 처녀가 아이 키우는 고충을 어떻게 아냐’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윗집 이웃의 태도에 이 씨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면부족으로 성격이 점차 예민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자 그는 심각하게 이사를 고려 중이다.

최근 아파트나 빌라 등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윗집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TV 소리, 세탁기 소리 등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극심할 경우 층간소음 갈등이 이웃간 살인이나 방화 등 강력범죄를 초래하고 있다.

서울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환경부 이웃사이센터에 들어온 층간소음 진단건수는 1271건으로 하루 평균 3∼4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 분쟁조정 신청은 2008년 11건, 2009년 9건, 2010년 18건, 2011년 21건, 2012년 16건, 지난해 29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결과 전체 아파트 입주민의 88%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중 54%가 이웃과 다툰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자의 8%는 층간소음으로 이사를 갔고, 2%는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층간소음의 주요 원인으로는 ‘아이들이 뛰거나 걷는 소리’가 36%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으며 `TV나 세탁기 등 기계소음`이 18%,  `어른이 걷는 소음`이 16%로 뒤를 이었다.

층간소음처럼 반복되는 소음은 인체의 각종 생리현상에 악영향을 미치고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실제로 일정 수준의 소음에 지속적으로 시달릴 경우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의 분비량이 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 및 수면장애 등이 나타난다. 이 호르몬은 신체 면역체계를 혼란시켜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아드레날린 분비가 활발해지면서 혈압상승 및 혈관수축 등 증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심장이나 뇌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스웨덴 캐롤린스카연구소가 도로교통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3666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교통소음이 50㏈(데시벨) 이상인 곳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근경색 위험이 40% 높게 나타났다.
 
독일 환경보건연구소의 알렉산드라 슈나이더 박사팀의 연구에서도 소음이 클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져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이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가 유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이 성인 110명에게 휴대용 심전계를 부착하고 일상생활 중 노출되는 소음과 심장활동을 비교 측정한 결과 65㏈(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웃는 소리에 해당) 이하 소음에도 심장박동 수가 올라갔다. 
층간소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닥충격음’은 아이나 성인이 바닥을 걸을 때 발생하는 소리로 57㏈ 정도다.

소음이 무조건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 노출될 땐 상황이 달라진다.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소음에 민감한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소음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더 예민해지면서 불면증이나 불안증 등 정신건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심한 경우 나를 무시한다는 피해의식까지 생기면서 분노, 공격적인 행동, 보복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층간소음으로 이웃에게 지적받으면 성향이 방어적으로 바뀌고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또 소음에 오래 시달려 충동조절이 제대로 안되면 일방적인 화풀이 등 우발적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홍나래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안양 평촌)는 “층간소음처럼 아주 크진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소음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며 “원래 불안장애, 우울장애 등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소음에 더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소음의 피해는 개인에 국한되지만 이웃간 발생되는 싸움과 보복으로 이사만이 해결책인 경우도 종종 있다. 소음피해를 겪다보면 소음에 민감해질 수 밖에 없는데 잘못 지어진 건물의 상태와 소음 유발자의 태도에 따라 더 예민한 반응이 나오게 된다.  

한 조사결과 층간소음 피해자의 약 70%는 소음을 참고 넘어가지만, 38%는 경비원이나 관리사무실에 조정을 요청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웃을 직접 방문해 자제 요청을 하는 경우도 절반에 달했다. 유 원장은 “직접 방문은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므로 편지나 이메일 등을 이용하는 게 좋다”며 “이밖에 심야시간 물 사용 자제, 식탁커버 및 소음방지용 매트 활용, 실내 슬리퍼 사용 등 기본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가장 심각한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발소리의 경우 슬리퍼를 사용하면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는데, 최근 실시된 조사에서 슬리퍼 사용 비욜은 10%에 불과했다.

유 원장은 “층간소음 피해자는 상대가 나를 일부러 괴롭힌다는 피해의식, 우울, 불안감, 과민반응 등을 겪는다”며 “이런 경우 다른 소음에는 민감하지 않은데 유독 그 이웃의 소음만 더 크게 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정신적 피해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될 땐 정신과 치료 사실을 증빙하고 소음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소음측정기를 통한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직접 항의해서 감정대립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건물주, 관리실, 환경부 등이 개설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활용하는 게 좋다. 이 센터는 전화상담을 통해 위층과 아래층의 분쟁의 여지를 막고, 무료로 소음을 측정해준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허술한 층간소음 규칙을 제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환경부와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층간소음 규칙에 따르면 1분 등가소음도(1분간 측정한 소음의 평균치)의 경우 주간 43dB, 야간 38dB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는 새 법적기준이 환경분쟁조정위원회 권고 수치보다 3dB 완화됐다는 점이다. 3dB은 수치상으로는 작지만 소리의 특성상 실제 두 배 더 큰 소음으로 들리게 된다. 게다가 이 기준이 적용되면 층간소음 원인의 약 70%에 달하는 아이들의 뛰는 소리는 법적제제를 받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참여연대, 층간소음 피해자 모임, 소음진동 피해예방 시민모임 등 시민단체는 최근 “살인까지 날 정도로 갈등이 심한 층간소음 문제에 정부가 실효성 없는 입법안을 강행하고 있다”며 “층간소음 관련 소송에 휘말린 건설사들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줘 건설비용 절감까지 도우려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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