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임신테스트기’가 사고 팔리는 시대가 됐다. 그것도 임신을 기다리는 여성이 대량구입했다가 쓰고 남은 임신테스트기가 아니라 ‘임신 여부가 확인된 테스트기’를 거래한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22일 중고물품 거래 커뮤니티에 한 회원이 ‘임신 양성반응이 나타난 테스터기를 구입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무 반응이 없을 것 같은 이 글에는 하루만에 판매자가 두명이 나타났다. 최초 게시된 4시간 후 한 회원은 ‘원하는 가격과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댓글을 올렸고, 또 다른 회원도 ‘나도 팔 수 있다’며 거래에 응했다. 가격은 대개 3만원대로 기존 테스트기의 5배 정도다.
이 글은 지금까지도 많은 네티즌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양성 확인된 테스트기를 어디에 사용할지에 대한 설명이나 판매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대부분 ‘구매자가 이성친구에게 엄포를 놓거나 협박하기 위한 용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신을 빌미로 파트너의 ‘발목을 잡아’ 결혼을 유도하거나, 금품 탈취나 명예훼손을 목적으로 상대방을 협박하는 용도로 악용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임신진단시약으로 불리는 임신테스트기는 여성의 소변을 통해 임신 여부를 확인을 하는 기구다. 임신부는 초기에 태아에게 영양분을 전달하는 태반이 만들어지고, 태반의 주요 호르몬인 융모성생식선자극호르몬(HCG, human chorionic gonadotropin)이 테스트기에 반응해 임신여부를 진단하게 된다. 테스트기에 두줄의 빨간색 선이 생기면 임신으로 판단한다.
중고물품 거래 커뮤니티에 모 여성이 임신 양성 테스트기를 구매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에 대해 ‘상대방의 발목을 잡기 위한 용도일 것’이라는 게 대다수 네티즌의 추측이다. 최근엔 ‘아기가 혼수’라는 말이 일상화되는 추세다. 저출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애라도 가져야 요즘 젊은층이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웨딩컨설팅 업체인 듀오웨드가 신혼부부 374명(남 161명·여 213명)을 대상으로 ‘혼전임신’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0.5%(남 36.6%, 여 25.8%)가 ‘혼전임신’으로 결혼에 골인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대학원생 이 모씨(27·여)는 “예전엔 무조건 혼전임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내 나이대 또래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며 “결혼식 등에 대한 로망이 크지 않은 나같은 사람은 아이가 생기면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설문에서 혼전임신의 가장 좋은 점은 ‘결혼에 확신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는 것으로 응답률은 57.8%(남 52.2%·여 62%)를 기록했다. ‘어쩔 수 없이 결혼한다’는 뉘앙스로 들릴수도 있지만, 교제한 기간이 짧지 않고 어느 정도 신뢰를 갖춘 커플은 아기가 결혼으로 이끄는 매개가 된다는 의미다. 이는 임신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1960~1980년대 성 모럴이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는 사고방식이 강해진 지금까지도 한국사회 밑바닥에 남아있다는 증거다.
요즘 20~30대 젊은이는 개인적인 생활에 익숙해지고, 특히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급속히 오르면서 결혼은 곧 희생이라고 여기는 가운데 막상 결혼을 원하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가 생겼을 경우 큰 문제가 없다면 ‘못이기는 척’ 결혼을 준비하는 계기가 된다.
더구나 연예인들이 ‘속도위반’에 대해 거리낌없이 발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사람들의 ‘혼전임신’에 대한 인식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또 만혼이 성행하면서 내심 불임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도 적잖다. 따라서 ‘적당한 나이’라면 속도위반으로 아기가 생긴 경우 낙태하지 않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듀오웨드 관계자는 “웨딩업계 종사자들은 최소 10커플 중 한 커플 정도는 혼전임신”이라고 말했다.
미혼여성의 임신을 아직까지 쉬쉬하는 한국에서는 양성 반응 임신테스트기 판매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거래는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빈번하다. 해외 인터넷 벼룩시장 사이트 ‘크레이그리스트’는 미국 임신부들이 양성으로 나온 임신테스트기를 거래하고 있다.
미국 뉴욕 버팔로 지역의 임신부는 이것을 개당 25달러(약 2만7000원)에 판매한다. 그는 “주변에서 많은 요청을 받아 이제 돈을 받고 팔기로 했다”며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미국 뉴저지에 거주하는 임신부도 “남자친구에게 청혼을 받고 싶으냐”며 “두줄이 나온 테스트기를 보이면 문제없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크레이그리스트가 임신 관련 상품 인터넷 지하시장이 됐다”며 “심지어 냉동모유까지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무원 박 모씨(26)는 “아무리 오래 사귀었다 하더라도 남성을 테스트해 결혼을 유도했다면 여자친구에게 실망할 것 같다”며 “당사자는 장난일지 몰라도 남성은 굉장히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친구도 비슷한 장난에 진지하게 결혼을 고민했다”며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는 여자친구의 철없는 말에 화가 나 결국 이별했다”고 말했다.
소위 말하는 ‘꽃뱀’도 이를 무기로 사용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귄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가 갑자기 ‘임신했으니 책임지라’며 ‘두줄 테스트기’를 내밀었다는 경험담이 종종 올라온다. 하지만 알고 보니 실제로 임신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낙태비용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려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사연들이 마치 도시괴담처럼 퍼져 있다.
구매자의 목적이 무엇이든, 임신테스트기를 사고 파는 상황은 남모르게 이뤄지기도 하고 흔한 경우가 아닌 만큼 아직까지 처벌된 사례는 없다. 현행 약사법상 약사가 아닌 사람이 약국 개설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이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11월 10일부터 임신진단테스트기, 콜레스테롤 측정시험지 등 그동안 의약품으로 관리받았던 체외진단용 의약품을 의료기기로 전환해 일반 편의점·마트 등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법규를 개정했다. 사용하지 않은 테스트기를 판매하는 것이 불법인데 사용한 양성 테스트기를 파는 것에 대한 보건당국의 유권해석은 어떻게 나올까. 역시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