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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애도하는 대한민국’, 대리 외상후증후군 곳곳서 나타나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4-22 20:14:45
  • 수정 2014-04-24 18: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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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들, 나한테도 이런 일이 …교사들, 수학여행 인솔 두려워 … 노장년, 갱년기우울증 겹쳐 눈물

세월호 침몰사고 단원고 생존자 학부모들이 2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위치한 안산교육지원청 앞에서 생존자에 대한 취재경쟁을 자제해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생존자를 비롯한 전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노출돼 있어 서로 위로하고 슬픔에 과도하게 몰입하지 않는 자세가 요구된다.

부모를 잃으면 ‘고아’, 남편을 잃으면 ‘과부’,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라 불리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너무나도 처참해 이를 감히 표현하는 단어가 없다. 세월호 침몰 엿새째, 모두 한 마음으로 생존자 구조를 기대했지만 안타까운 시신만 대거 발견되며 국민들은 대리 외상증후군(Vicarious Trauma)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사고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간접경험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는 것이다.

PTSD는 불안장애의 하나로 전쟁, 테러, 각종 사고, 자연재해, 폭행, 강간 등으로 인한 신체적인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나타난다. 사고 당시 절박했던 상황을 반복적으로 회상하면서 고통스러워하며 불안·불면·두통·우울증·적대감표출·악몽·무감동증 등을 보인다. 심하면 환청이 들리고, 약물 및 술에 의존하게 되거나,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PTSD는 적게는 경험자의 5%, 많게는 75%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훈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현재의 비극적인 상황이 국민을 너무 깊은 애도반응으로 몰아가 트라우마에 계속 노출되고 있다”며 “일반인은 일터로, 학생들은 학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침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세월호 사고를 수습하려면 앞으로 상당 기간 걸릴 것이고, 이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확산되는 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신성만 한동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인은 대리외상을 다루는 전문적 준비나 지식이 부족해 여파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정서적으로 탈진된 느낌이 들고 분노조절장애, 우울감, 집중력 저하, 막연한 공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흔한 증상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과 연이은 눈물이다. “엄마, TV좀 그만 봐.” 여대생 박 모씨(21)는 결국 리모콘을 들어 뉴스를 꺼버렸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은 후 김 씨의 어머니는 뉴스를 보며 매일 울었다. 김 씨도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매일매일 눈이 부을 정도로 울지는 않았다. 50대에 접어들면서 갱년기에 예민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학생과 교사에게 세월호의 아픔은 남다르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김 모씨(27·여)는 “교무실에 들어가면 매우 침체된 분위기”라며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 곳에 있었다면, 아이들을 잃었다면’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수학여행은 안전이 최우선돼 별탈이 없더라도 ‘5년뒤, 10년뒤에도 제2의 세월호사고가 터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많은 교직자들에게 ‘수학여행 공포 예기 트라우마’가 생긴 셈이다. 

여고생 김 모씨(17)도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느라 휴대폰을 손에서 뗄 줄 모른다. 그는 “내년에 수학여행을 가는데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또래 친구들, 그것도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 억울하게 변을 당해 너무 화가 나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닥칠 수 있을 것 같아 무섭다”고 말했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외부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하루 종일 TV 뉴스에 노출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아예 금지하는 것도 문제가 있어 부모가 적절히 조절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현재의 슬픔이 당연하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애도의 과정’을 함께 거치는 게 맞다는 견해도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번 일은 최근 10~20년 중 가장 비극적이고 황당할 정도로 있어서는 안될 사건”이라며 “나라 전체가 애도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미국정신의학회는 PTSD 장애 대상에 ‘목격자’를 새로 추가했다”며 “이런 사건의 목격자라면 예전에는 군인, 기자, 잠수부 등 상황을 직접 본 사람에 국한됐겠지만 이번엔 TV에서 상황에 대해 계속 보도하는 만큼 시청자가 모두 목격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부러 애도를 멈출 이유는 없다”며 “슬픈 일에 충분히 슬퍼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줘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다만 평소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심한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어 주변 가족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조성남 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생면부지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이 돼서 바라보기 때문”이라며 “모든 과정이 생중계된 이번 참사는 공감능력이 배가돼 직접 겪은 듯한 심리적 통증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도 22일 ‘세월호 사건을 겪는 일반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안내문’을 배포했다. 학회는 이번 참사를 지켜보는 사람 중에는 불안·스트레스·예민함·눈물·수면문제가 경미하게 발생할 수 있고 심하면 지속적인 눈물·짜증·심한 우울감·분노폭발·허무감·무기력감 등이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소영 학회 홍보이사는 “증상을 완화하려면 가급적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며 “믿을만한 사람과 현재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나누고, 자신의 감정반응이 지나치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증상이 심각한 것 같다면 사건 관련 뉴스와 잠시 떨어져 과도하게 몰입되지 않도록 절제할 필요가 있다”며 “2주 이상 우울감 무기력 증상이 계속되면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을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특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일수록 고통스런 기억에 취약해지므로 멍하게 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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