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로 대형 인명 참사가 빚어지자 단체 수학여행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학교 전체학생 수백명이 한꺼번에 깃발관광하듯 어수선하게 움직이는 수학여행은 그 자체가 굉장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7월 태안 해병대캠프 수련 중 고교생 5명이 익사한 사건을 계기로 지난 2월 각 시·도교육청에 배포한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에 따르면 ‘소규모·테마형 현장체험학습’을 권장하고, 구체적으론 ‘1~3학급 또는 학생수 100명 이내’라는 인원 기준이 제시되고 있다.
대규모로 이동하는 획일적인 활동을 지양하고 친밀한 대화와 체험의 공유가 가능한 소규모 여행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안산 단원고는 교육부 매뉴얼 기준의 3배가 넘는 ‘2학년 학생 325명’을 이끌고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참변을 당했다. 하지만 교육부 매뉴얼은 의무사항은 아니고 일종의 권고사항이라 학교 편의상 학년별로 대규모 수학여행을 진행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교육여건상 학 학년 전체 학생을 3~4개팀으로 나눠 보내는 것은 교사들의 행정편의, 입시전쟁에서의 면학열기 훼손 등을 이유로 거의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일부 그릇된 교직자들은 여행사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다 적발되기도 했다.
수학여행의 목표는 학생들이 진정 여행을 통해 배우고 체험하고 싶은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어야 한다. 캐나다로 고교생 자녀를 유학보낸 박 모씨(52)에 따르면 고교 3년 동안 수학여행은 교장의 판단에 따라 3~4번 가게 되고, 행선지는 캐나다의 다른 도시·미국·유럽 등 취향과 경제능력에 따라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 여행갈 때마다 희망자를 적당하게 그룹핑하여 인솔교사가 엄격하게 통제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통해 빚어지는 일탈, 즉 대오이탈·음주·흡연·패싸움 등은 캐나다에서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만약 일탈이 빚어지면 해당 학생은 큰 벌점을 받게 되고 이럴 경우 생활기록부에 남아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에 비해 부실한 식사에 배탈나기도 쉽고, 밤이면 부잡스런 급우가 숙소를 들썩거리게 하며, 또 일부 선생님들은 학생지도에는 관심이 없고 심야에 술판이나 벌이는 게 우리나라 수학여행의 한 자화상이다.
이번에 숨진 단원고의 한 여학생은 수학여행길에 집을 나서면서 ‘할머니, 배타기 싫어’라고 짜증을 내며 마지 못해 따라갔다는 사연이 들린다. 멀미가 심하거나 단체행동 자체를 기피하는 성향의 학생인데도 일종의 ‘왕따’가 싫어 마지못해 억지로 끌려가는 경우가 상당수 일 것이다. 더욱이 배멀미가 심하다면 선상 수학여행이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요즘에야 학생이 원치 않으면 수학여행에 불참해도 된다지만 현실은 여전히 불참 학생에게 교사가 눈치를 주고 반강제로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개인의 선택은 아직도 허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 소형 유람선은 안전장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10여년전 경남 통영의 외도관광에 나섰을 때 선장은 빠른 속도로 전진하면서도 조타를 좌우로 돌리며 마치 곡예비행하듯 능숙한 항해솜씨를 뽐냈다. 자신이 항해 베테랑이고 통영 앞바다 물길은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일부 승객들의 멀미는 심해졌다. 게다가 유람선을 꽝꽝 울리는 퀵 트롯트풍의 소음과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술판의 왁자지껄함은 멀미가 심한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고조시키기에 딱 맞다.
먼 곳으로 여행갈 기회가 흔치 않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은 소중한 체험학습의 기회이자, 추억거리이며, 의미있는 전통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력 향상, 마이카 확산, 교통망 발달, 여행문화의 대중화 등으로 여행을 즐길 여력이 많아졌다.
단체 수학여행에서 수 백명이나 되는 학생을 고작 10여명의 교사가 통제한다는 게 난제다. 여기에 지난해 해병대 캠프 참사, 올초 부산외대 경주 리조트참사 등에서 보듯 우리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까지 고려한다면 대규모 수학여행 자체가 위험요소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한동안 페리호나 크루즈를 타는 여행에 대한 수요가 격감할 것으로 우려된다. 1993년 10월 10일 부안 위도 앞바다에서 292명이 사망한 서해페리호 사고 이후 위도 관광객은 확 줄었고 설상가상 어업경기도 예전만 못하면서 위도 주민수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21년전의 충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행은 안전불감증이 자초한 것이니 후진국형 인재(人災)를 막을 전사회적 시스템 점검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