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료제 바꿔도 항체 발생률 그대로 … ‘진타’ 낮은 바이러스감염 위험·정교한 정제기술 장점
화이자제약의 혈우병치료제 ‘진타(Xyntha)’
매년 4월 17일은 ‘세계 혈우인의 날’이다. 흔히 ‘피가 멈추지 않는 무서운 병’으로 알려진 혈우병은 혈액응고인자의 선천적 결핍으로 발생하는 출혈성 질환이다. 유전자가 X염색체에 존재하는 제8응고인자와 제9응고인자의 결핍이 가장 흔하며 전자는 A형 혈우병, 후자는 B형 혈우병으로 불린다. A형 혈우병이 전체 환자의 약 80~85%를 차지한다.
혈우병 환자는 정상인보다 출혈이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지만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어 신체 내부손상의 위험이 존재한다. 심한 상처는 물론 아주 작은 타박상만 입어도 근육·관절·장기에서 동통(몸이 쑤시고 아픔)을 동반한 출혈이 발생하게 된다. 세계혈우병연맹에 따르면 전세계 약 40만 명이 혈우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대부분은 남성이다. ‘2012 한국혈우재단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국내 A형 혈우병 환자는 1702명, B형 혈우병 환자는 382명이었다 .
혈우병은 선천성 출혈질환인 만큼 치료와 관리가 평생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질환 및 치료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아야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혈우병 환자가 갖고 있는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치료제를 바꾸면 항체 발생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항체가 생기면 혈액응고인자를 투여받더라도 출혈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을 수 있어 혈우병 환자에게 이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혈우병 전문가들은 근거없는 속설이라고 말한다.
항체는 투여된 혈액응고인자에 대한 인체내 면역반응으로 발생한다. 대부분의 항체는 혈액응고인자를 투여한 후 50일 이내에 발생하며, 150일 이후에는 자연발생률이 급격히 낮아진다. 즉 치료제를 바꾼다고 해서 항체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또 치료제 전환과 항체 발생 사이의 연관성은 임상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오해가 기존 연구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유럽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서 1208명의 유전자재조합제재 치료경험이 있는 환자를 10년간 조사 및 분석한 결과 항체 발생가능성은 매우 낮았으며, 치료제 교체와 항체 발생률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전자재조합제제가 혈장제제보다 항체발생률을 높인다는 우려도 의학적인 근거가 없다. 1990~2007년 발간된 해외 연구자료 중 총 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자료를 메타분석한 결과 혈장제제와 유전자재조합의 항체 발생률은 거의 비슷했다. 574명의 중증 A형 혈우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도 두 치료제의 항체 발생률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혈우병 전문가들은 항체가 생길지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보다는 치료제가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안전한지, 더 나은 치료혜택을 제공하는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은 유효성·안전성·편의성을 바탕으로 국가단위 혈우병치료제를 지정함으로써 많은 환자가 최신 유전자재조합제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국내 시판 중인 혈우병치료제로는 화이자제약의 ‘진타(Xyntha, 성분명 모록토코그알파)’, 박스터의 ‘애드베이트(ADVATE, 혈액응고 제8인자 유전자재조합제제)’, 녹십자의 ‘그린진F(GreengeneF 성분명 베록토코그알파)’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최근 국내에 소개된 진타는 혈우병A 환자에서 부족한 혈액응고인자(8인자)를 보충해주는 8인자제제다. 전 제조공정에 알부민을 배제하고 동물유래 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합성 펩타이드 친화성 리간드(Synthetic peptide affinity ligand)를 사용함으로써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낮췄다. 또 35㎚(나노미터) 필터를 사용하는 ‘나노 여과단계’를 포함, 총 두 번에 걸친 정교한 정제기술로 8인자를 추출한다.
투여용량 및 기간은 8인자 결핍정도, 출혈 부위 및 정도, 환자의 임상적 상태 등에 따라 결정된다. 바이알 사이즈는 250IU, 500IU, 1000IU, 2000IU로 비교적 다양한 용량의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진타는 A형 혈우병 환자의 출혈 조절 및 예방, 일상생활 및 수술시 출혈 예방을 위한 치료제로 2008년 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2010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아 지난해 2월 출시됐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별도의 재구성 과정 없이 한 번에 용제와 바이알을 섞을 수 있는 ‘올인원(all-in-one)’ 타입의 주입키트가 출시됐으며, 현재 국내 도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우병 분야의 석학이자 항체 생성 원인을 장기간 연구해 온 알폰소 아이오리오(Alfonso Iorio) 캐나다 맥마스터대 의대 교수는 “안전성, 효능, 편의성 면에서 향상된 치료제들이 이미 한국에도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혈우병 환자들이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진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