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에 경막외마취로 이뤄져 아기에게 안전 … 저혈압·척추수술 유경험자 등 시술받기 어려워
산통을 줄이기 위해 경막외마취를 통한 무통분만이 대세다.
“둘째 때에는 다행히 ‘무통천국’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주부 김 모씨(32)는 3년만에 둘째를 출산했다. 사실 첫 아이 출산 때에는 타이밍을 놓쳐 무통분만 시술을 받지 못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았다.
다시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막상 둘째가 들어서니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다만 이번에는 무통주사를 꼭 맞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주사를 맞고 나니 안심이 돼서 그런지 첫째 아이때보다 많이 힘들지도 않았다. 다만 ‘약발이 너무 잘 받아서’ 힘을 주는데도 별 느낌이 없어 순탄하게 분만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첫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나 앞으로 아기를 낳으려는 젊은 여성은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산고’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출산한 주변 언니나 친구들의 이야기에 겁먹기 마련이다. 초산의 경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순위 2~3위에 오르내릴 정도다.
10여년 전만해도 몸매가 망가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왕절개의 선호도가 피크에 달했지만 최근 자연스러운 분만이 아이에게 더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이를 따르려는 산모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산모의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등장했다. 이 가운데 무통분만주사를 통한 출산이 예비엄마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임신·출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무통천국’이라는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통천국은 출산 시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무통분만으로 큰 고통 없이 아기를 낳은 경우 쓰는 말이다.
국내서 무통분만에 대한 본격적인 시도를 한 것은 약 20년 전부터다. 처음에는 산고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오히려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산모의 정서적 안정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 시술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웬만한 산모는 출산 전 ‘무통분만 시술이 가능할까요’하고 묻는다.
무통분만은 진통 중 의식은 유지하되 통증은 경감시켜준다. 허리부위의 경막 외 공간에 가느다란 카테터를 삽입해 지속적으로 진통제를 주입, 자궁수축으로 인한 진통과 질·회음부 통증을 억제한다. 산통으로 인해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고 자궁경부를 부드럽게 만들어 분만시간이 단축되는 게 장점이다.
경막외 마취 과정은 자궁이 3~4㎝ 정도 열려 산통이 최고조에 달할 때 이뤄진다. 감각신경은 무뎌지지만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힘을 주기 위한 운동신경은 마취되지 않는다.
방장훈 호산여성병원장은 “진통이 시작됐다고 해서 바로 시술하면 자궁수축이 억제돼 자궁구가 열리지 않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산부인과학회에서는 의학적으로 무통분만이 가능하다면 가급적 이를 시행토록 권고한다”며 “무통분만은 산모의 불안과 고통을 줄여 출산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고 덧붙였다.
간혹 ‘마취제’를 쓴다는 말에 아기를 생각해서 이를 선택하지 않겠다는 산모도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방 원장은 “무통분만은 혈관마취가 아닌 경막외마취로 약물이 혈액에 흡수되지 않아 아기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아 안심해도 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누구나 ‘무통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진통제가 잘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마취약에 대한 내성이 다르기 때문에 3% 정도의 산모는 무통주사의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통증은 주관적인 것인 만큼 무통분만을 실시했을 때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통증이 전혀 없는 산모가 있는 반면 드물게 실패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마취제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산모도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 뒤 시술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무통분만 자체가 혈압을 떨어뜨리는 만큼 저혈압환자나 혈소판 수치가 낮아 출혈 성향이 큰 사람도 시술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고혈압을 가진 산모에게는 오히려 추천된다. 다만 무통분만 시술 후에는 일시적으로 저혈압이 나타나 현기증이 나타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척추부위에 염증이 있거나 척추수술을 받은 사람도 주의해야 한다.
반면 심장이 약하거나 폐에 이상이 있거나, 임신중독증으로 태반기능이 떨어졌거나, 쌍둥이를 출산하는 산모 등에게는 무통분만이 도움이 되고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한다.
무통분만 후에는 허리에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은 여파로 드물게 허리통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주사가 경막을 뚫었을 경우에는 두통을 동반하지만 이는 수일 내 사라진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생각되는 증상이 오랫동안 계속되거나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병원을 찾아가보는 게 좋다.
방장훈 원장은 “출산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심리적 안정”이라며 “출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통분만을 선택하는 만큼 경험이 많은 통증의학과 의사가 상주하며 수시로 산모상태를 확인해 줄 수 있는 병원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