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상 청소하지 않은 필터에 먼지가 가득 낀 모습
경기도 분당에 사는 주부 강모 씨(30)는 얼마전 거실에 있던 공기청정기를 청소하다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거의 1년만에 꺼내 본 필터에 온갖 먼지와 이물질이 잔뜩 껴 있었기 때문이다. 강 씨는 최근 기침이 잦아지고 피부가 자주 가려운 게 오염된 필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필터를 제 때 관리한다고 해도 공기청정기가 모든 오염물질을 100% 정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부 광고처럼 공기청정기가 호흡기·피부질환 예방에 도움된다는 주장은 의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여겨야 한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공기청정기가 효과적이다 아니다를 두고 쏟아지는 정보로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강 씨는 “어느 집에나 공기청정기 한 대씩은 다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왕이면 좋은 제품을 구입하고 싶다”며 “그러나 요즘 공기청정기가 건강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말도 많이 나와 헛돈을 쓰는 것은 아닌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최근 잦은 황사와 미세먼지로 호흡기질환, 안질환, 피부질환 등의 발병률이 급증하면서 공기청정기나 에어워셔 등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지난 3월 1~17일 공기청정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청정기는 이론적으로 환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황사철에 실내공기를 깨끗이 유지하는 데 도움된다. 그러나 공기청정기를 맹신해 마스크 착용 등 기타 생활수칙을 지키지 않거나 필터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공기청정기는 오염된 공기를 내부 팬으로 흡인한 후 필터 등을 통해 먼지, 화학물질, 미생물 등 오염물질을 걸러낸다. 정화 방식에 따라 기계식(필터식), 습식(전기집진식·플라즈마식·UV광촉매식), 복합형 등으로 구분된다. 성능·가격에 따라 차이나지만 보통 10~15평 정도 한정된 공간에서 제 기능을 발휘한다.
가장 흔한 필터식은 선풍기·에어컨처럼 팬을 이용해 공기를 흡입한 후 필터로 정화시켜 배출한다. 필터는 보통 프리필터·헤파필터·활성탄필터 등으로 구분된다. 프리필터는 입자가 큰 먼지를, 2단계 헤파필터(High-efficiency particulate air, HEPA)는 프리필터가 거르지 못한 미세먼지·진드기·꽃가루 등 미립자 형태의 오염물질을, 3단계 활성탄필터는 먼지 외 각종 냄새의 원인을 제거한다.
최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헤파필터는 불규칙하게 배열된 섬유들의 집합으로 미국에서 방사성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개발됐다. 공기 중에 떠다니던 입자는 정전기 작용으로 섬유에 달라붙게 된다. 보통 더 큰 입자를 걸러내는 프리필터를 먼저 거치도록 설계돼 헤파필터를 자주 갈아야 하는 불편을 줄인다. 최근 연구결과 0.3㎛ 크기의 먼지입자를 헤파필터에 1회 통과시켰을 때 99.97% 이상이 제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터식은 먼지, 미생물, 화학물질 등을 비교적 골고루 걸러준다. 그러나 필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고 소음이 발생한다는 게 단점이다. 특히 필터를 제 때 청소하지 않으면 오염물질이 깨끗한 공기까지 오염시켜 호흡기질환이나 아토피 등 피부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필터교체에 따른 비용부담도 생각해 볼 문제다. 필터마다 교체시기도 다르고 소요비용도 다르기 때문에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중에 판매 중인 프리필터는 2개월에 1회 교체해야 하고, 금액은 대략 1만~1만5000원 정도다. 헤파필터는 연중 1회 교체에 금액은 3만~5만원, 활성탄필터는 1년에 1회 금액은 3만원 가량이 소요된다.
전기집진식은 방전원리를 이용해 강력한 집진력을 가진 집진판으로 오염된 공기를 정화한다. 음이온정화기 혹은 무필터정화기로 불린다. 유지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소요되고 미세먼지 등을 잘 걸러내지만 효율성은 헤파필터 등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또 본체 내부가 쉽게 더러워져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한다.
문제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공기청정기의 절반이 탈취기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소비자연맹이 사용면적 25㎡ 이하 소형 공기청정기 10개를 선정해 정격풍량·소음·탈취효율 등을 조사한 결과 오레곤·벤타 등 수입제품 2개, 지웰코리아·에어벡스·이엔드디 등 국내 중소기업 제품 3개의 탈취효율이 기준치인 6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입산 2종은 소음 기준치(풍량 5 이하일 때 45㏈)도 초과했다.
반대로 삼성전자·LG전자·위닉스·웅진케어스·청풍생활건강 등의 제품은 기준치를 충족시켰다.
이향기 한국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오염물질 제거방식에 따라 탈취효율이나 분진청정화 능력은 크게 차이나지만 대부분 제품이 냄새·박테리아·세균·극미세먼지 등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며 “허위·과대광고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사후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판매량이 급증한 ‘에어워셔(air washer)’의 경우 공기정화능력이 과대평가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에어워셔는 공기청정기보다 기화식 가습기에 가깝다. 공기를 물에 통과시켜 습도를 높여주며 기존 초음파가습기보다 수분 입자가 고와 세균번식률이 낮고 넓은 공간의 습도를 균일하게 맞춰준다. 가전업계는 올해 에어워셔 시장규모를 전년대비 25% 이상 늘어난 25만대 이상으로 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기청정기 성능을 기준으로 에어워셔 가동 전·후의 미세먼지 농도를 분석한 결과 별다른 개선이 없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에어워셔 제조업체 관계자는 “기존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 변화를 기준으로 성능을 평가한다”며 “에어워셔를 작동하면 습도가 증가하는데 계측기가 이를 미세먼지로 인식해 공기질이 더 나빠지는 결과가 나온다”고 해명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사건 등으로 매출이 저조해지자 공기청정기능을 강조해 이미지 회복에 나서는 것”이라며 “현재 에어워셔 등 자연식 가습기에 대한 국가표준이나 인증 수행기관이 없기 때문에 각종 평가기관의 시험 성적표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들은 제품 구입전 제품의 용도, 적용면적, 탈취율, 경제성 등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기청정기가 각종 질환을 예방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학적 근거는 있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공기청정기가 오염물질을 100% 제거하는 것은 아니므로 맹신하지 말고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종욱 중앙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공기청정기나 공기정화식물이 호흡기질환 예방에 도움된다는 주장은 의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며 “미세경보 발령시 외출 자제, 마스크·보호안경·모자 착용, 외출 후 옷털기 등 생활수칙을 준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공기청정기는 가벼운 입자의 오염물질을 잘 걸러내지만 바닥으로 가라앉는 무거운 입자는 정화능력이 떨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공기청정기의 종류나 성능에 따라 연간 유지관리 비용이 최대 5.9배 차이나기 때문에 구입 전 표준사용면적 대비 적정용량, 탈취효울, 소음 등을 확인해야 한다.
표준사용면적은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10분간 가동시켰을 때 실내입자 농도를 50% 가량 정화시킬 수 있는 면적이다. 현재 시판 중인 공기청정기는 사용면적에 따라 30㎡미만, 30㎡이상~40㎡미만, 40㎡이상~60㎡미만, 60㎡이상으로 구분된다. 현재 표준사용면적 대비 적정용량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은 없는 상태이며, 한국소비자원은 설치 면적의 130%를 권장하고 있다.
탈취효율은 암모니아, 아세트알데히드, 초산 등의 악취원인을 제거하는 성능을 의미한다. 제품 자체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에너지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해야 한다. 필터교체 등으로 인한 유지·관리비용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또 공기청정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도록 자주 환기시키고, 기기에 열기나 수분이 직접 닿는 것을 피하는 게 좋다. 음식을 조리하면서 사용할 경우 각종 재나 그을음으로 필터 수명이 급격히 짧아질 수 있다. 필터는 세척해 완전 건조시킨 다음 장착해야 하고, 오염도를 감지하는 센서도 면봉으로 청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