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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이 무슨 우울증? … 중2병인 줄 알았더니 가슴에 ‘멍’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3-28 13:18:07
  • 수정 2014-03-31 15: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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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들 학업지상주의로 자녀 내몰지 말고 우울증·자살로 이어지지 않게 세심히 챙겨야

청소년이 자살시도 후 천만다행으로 생명을 구했더라도 후속조치조차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학만 되면 친구들 눈을 피해서 정신과 상담을 다녀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올해 중3 학생인 임 모군(16)이 털어놓은 얘기다. 지방의 유명 중학교에 다니는 임 군은 성적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받아 만성 위장염을 달고 산다.
그는 “동네가 좁고 학생들의 부모님이 대부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바람에 소문이 빨라 은근히 부모 간 자녀 성적 경쟁도 심하다”며 “친구 중 몇명은 중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너무 긴장한 탓에 패닉(공황장애)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전 모씨(24·여)는 “선배들 중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토로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고등학교 시절이 제일 아름답고 되돌아가고 싶은 때라고 말하지만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학교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성적순으로 앉히는 것은 기본이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는 모욕적인 말도 서슴지 않아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굉장하다. 
 
전 씨도 상위권 학생으로 흔히 말하는 ‘스카이(SKY,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보내기 위한 ‘관리 대상’이었지만 외국 유학으로 마음을 돌리자 그렇게 예뻐하던 선생님들은 매몰차게 변했다. 스카이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하버드급’ 명문대가 아닌 이상 학교에 폐끼치지 말고 자퇴하라고 권유하기까지 했다.
 
이 학교는 심지어 스트레스를 못 이겨 방학마다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조차도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몰래 정신과를 다니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들이 적잖다. 모두가 진학하길 원하는 명문고이지만 네임밸류의 반대급부로 스트레스도 극심하다.

전 씨도 “학창시절 수업 중 학업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린 학생도 있었다”며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었지만 학교 전체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친구들이 어른들 말에 순응하고, 공부만 하다 보니 대학에 입학한 뒤 스스로 뭔가를 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소위 ‘폐인’이 되는 경우도 적잖이 봤다”며 “옆에서 케어해주는 어른이 없어지니 대학에 올라가서 수업도 불참하고 뭘 하고 싶은지 자신도 몰라서 온라인게임만 하는 친구도 있다”고 토로했다.
 
사춘기에 우울, 불안, 학업스트레스를 느끼는 게 당연하다며 ‘애들이 우울증은 무슨…’하고 넘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청소년기에는 자신만의 감성에 휩싸이기 쉬워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나오면 으레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거니’하는 게 기성세대의 입장이다.

실제 과거엔 정신의학계에서도 소아청소년에서의 우울증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심지어 초등학생 무렵에서도 우울장애가 인정돼 지금은 정신과 공식 진단범주에 포함돼 있다.
 
청소년우울증은 성장과정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조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만성화되고 재발률이 높은 특징을 보인다. 소아기에 우울증치료를 받은 사람의 60%가 성인기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심각한 우울장애를 겪는다는 보고도 있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을 겪는 아이는 성인과 달리 이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겉으로 나타난다”며 “아이들이 보내는 ‘사인’을 이른 시기에, 제대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사춘기의 우울감을 일시적 정서변화로 간주한다. 이에 비해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얘기해봤자 이해받지 못한다’고 여기고 자신의 감정을 어른에게 털어놓지 못한다. 더욱이 일부 어른은 ‘사춘기의 감정변화’에 대해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럴 경우 우울감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진단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우울감을 티나는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갑자기 아이의 말수가 줄고 짜증을 자주 내며, 우울해하며 방에서 나오지 않거나, 눈물이 지나치게 많아지거나, 심지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홍현주 교수는 “특히 ‘죽고 싶다’거나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놓는다면 ‘너만 힘든 줄 아니다’고 채근할 게 아니라 어떤 점에서 우울하거나 죽고 싶은지에 대해 대화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5~7월 전국 초·중·고등학생 211만9962명을 대상으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15만2640명(7.2%)이 상담이 필요한 상태로 분류됐고, 이 가운데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 정서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청소년은 4만6104명(2.2%)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월엔 한국건강증진재단이 전국 14~19세 남·녀 중·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건강에 대한 인식과 실태조사’ 결과 청소년의 29.1%가 최근 한달 동안 심한 우울감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2.8%는 심한 두려움을, 22.2%는 심한 신경과민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소년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대표적인 이유는 ‘성적 등 미래에 대한 부담’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청소년의 64.5%가 이같은 이유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 특히 응답자의 51.6%가 ‘살아 있지 않는 게 나을 정도’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충격을 더했다.
 
우울감과 학업스트레스 등은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의 대표적인 사망 원인이 자살이다. 통계청 자료 분석결과 청소년 자살은 2006년 인구 10만명당 3.5명이었으나, 2011년에는 5.5명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나친 학업지상주의에 2005년엔 성적을 비관한 공주의 고교생과 그 부모가, 2008년엔 명문고에 입학하지 못한 울산의 한 중학생이, 지난해엔 포항의 명문고 상위권 학생이 성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자살을 시도했거나, 그 후 천만다행으로 생명을 살렸더라도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홍현주 교수는 “자살을 시도한 아이의 부모는 이런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병원으로 이송된 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해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실적으로 자살시도를 한 아이들 가운데 정신과 치료를 선택하는 경우는 5분의1 정도에 그쳐 치료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자살한 또는 자살시도한 학생의 부모는 사건 이후 엄청난 충격을 받고 ‘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죄책감은 ‘그래도 내 아이는 정신적으로 문제없어. 우발적인 감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자기최면으로 바뀌어져 자녀의 치료를 기피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간의 이목’도 병원 치료를 꺼리게 되는 요소다. 부모는 물론 학교에서도 자살시도 사건 등을 숨기는 데 급급해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울증이 심각한 학생도 대입 등에 부정적 영향이 생길까봐 병원에 가는 것을 피한다. 하지만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어 문제가 생기면 두려워하지 말고 병원을 방문하는 게 바람직하다.

홍현주 교수는 “아이들이 자살시도를 하는 것은 예전부터 시행하려고 마음먹은 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한순간의 극단적인 무력감’이나 ‘자살말고는 탈출구가 없다는 절망’이 극도에 달할 때 나타난다”며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자살할 것을 예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평소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 수 있다”며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대화’가 답”이라고 조언했다.

홍 교수는 “청소년은 주위 영향을 잘 받는 시기인 만큼 우울감을 캐치해 이해해주면 감정이 해소되는 게 특징”이라며 “부모와 아이 간 세대차가 존재하는 만큼 100%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며, ‘아이가 힘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만으로도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생각을 갖는데 그쳐선 안되고 아이들이 부모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부터 교육당국은 자살충동 등을 겪는 고위험군 학생을 위해 학교별로 교장, 담임·상담교사, 정신건강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기대응팀을 운영하고 있다.
중학생인 임 군은 “솔직히 선생님들이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인데 이들과 얘기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지는 모르겠다”며 “오히려 문제를 키우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사이가 좋지 않은 급우 때문에 학교 상담실을 찾았더니 상담교사가 학급친구들 앞에서 그 급우와 악수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해결했다고 행동하는 바람에 오히려 ‘고자질쟁이’로 몰려 더 힘들어진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의 발단은 우울증이고, 그 우울증은 나이가 어릴 때 발생할수록 성장하면서, 또는 성인이 된 뒤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어릴 때 우울증상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이후 평생 정신건강이 좌우될 수 있다. 만일 우울 증상이 의심되고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신과를 찾아야 한다. 가족 중 우울증 병력이 있다면 그럴 필요성이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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