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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협 ‘수가인상’ 줄다리기에 소외되는 국민 건강권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3-20 03:06:05
  • 수정 2014-04-04 19: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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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정심 공익위원 가입자·공급자 동수 추천, 수가인상 유리 … 건강보험 결정과정에 국민 배제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의·정협의 결과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성 방식을 두고 벌어진 정부와 의사들간 ‘수가인상’ 줄다리기에 국민건강권은 점차 소외되는 분위기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7일 밤샘 협상 끝에 발표한 원격진료 및 수가결정 구조 개편 등 관련 ‘의·정 2차 협의안’에 대해 시민·환자단체들은 “수가인상을 위한 ‘쇼’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협의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성 방식을 두고 복지부와 의협이 계속 충돌하는 모습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 17일 오전 원격진료 시범사업 실시, 건정심 구조 개편,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협의안을 발표했다. 협의안에 따르면 원격진료는 국회 입법과정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오는 4월부터 6개월간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입법과정에 반영한다. 시범사업의 기획·구성·시행·평가는 의협과 정부가 공동으로 수행한다.

또 건정심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해 구성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올해 안에 추진하고, 수가협상이 결렬될 경우 건정심의 수가 결정 전 가입자와 공급자가 참여하는 ‘조정소위원회’의 구성도 논의키로 했다.

그러나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과 참여연대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의료영리화를 위한 자신들의 정책과 건강보험제도 민영화 등을 관철하는데 장애물을 제거하는 대가로 국민을 팔았고, 의협은 국민의 건강권을 볼모로 정부와 딜을 했던 것”이라며 “국민들 관점에서 보면 국민 이익에는 전혀 부합되지 않고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반사회적인 합의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건정심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해 구성키로 한 것에 대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건정심은 치료행위나 약재의 보험등재 여부나 수가인상 폭 등을 결정하는 핵심 의결기구다. 의사나 약사는 매년 협회를 통해 의료서비스에 대한 대가인 수가를 얼마나 올릴지 정부와 협상하는데, 협상이 결렬될 경우 건정심에서 표결 통해 확정한다.

현재 건정심 위원은 복지부 차관인 위원장을 제외하고 공급자측 대표 8명, 가입자측 대표 8명, 공익대표 8명 등 24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공급자 대표는 의협 2명, 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간호협회·대한약사회·제약협회 각각 1명씩으로 이뤄진다.
가입자 대표는 한국노총·민주노총(근로자 대표) 2명,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사용자 대표) 2명, 바른사회시민회의(시민단체) 1명,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소비자단체) 1명,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농림단체) 1명, 한국외식업중앙회(자영자단체) 1명 등으로 구성된다.
공익위원은 보건복지부·기획재정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기관측 4명, 나머지는 장관 위촉 교수·연구원 등 민간 전문가 4명으로 이뤄진다.

공익위원의 경우 정부 인사 외 4명의 추천인도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협은 그동안 건정심 구조 개편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협의안대로 공익위원(8명)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 추천(4대4로 분점)할 경우 수가인상 등 사안을 논의할 때 의협이 지금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2차 의·정 협의로 의협은 건정심 구조를 공급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제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협의 내용처럼 공급자 중심으로 건정심 위원의 과반수가 채워질 경우 국민을 대변하는 쪽이 취약해져, 결국 국민들은 건강보험 결정구조에서 쫓겨난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와 의협은 건정심 구성방식에 대한 협의안을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쳐 국민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의협은 “건정심 공익위원 8명 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 추천키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복지부는 “8명 중 정부인사 4명을 제외한 정부 추천인 4명에 한해 가입자와 공급자가 각각 2명씩 추천하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건강보험료 및 세금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데 당연히 정부가 개입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의협도 인정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의협 측 주장대로 정부인사를 배제하고 가입자와 공급자가 공익위원을 추천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즉 가입자와 공급자의 영향력이 50대50으로 나눠져 이해관계가 상반된 사안을 결정할 때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정부대표가 나서 중재자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수가 문제 외에도 시민·환자단체들은 이번 2차 의·정협의가 원격진료 도입을 사실상 허용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6개월에 불과한 시범사업으로는 원격진료의 효과성, 경제성, 안전성 등을 제대로 검증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상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3년 350억원을 투자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했지만 효과성 및 안전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며 “해외의 경우 약 10년에 걸친 시범사업에도 결론이 나지 않거나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고작 6개월 동안 뭘 어떻게 하겠다는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번 협의결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은 18일 성명서를 통해 “의협은 협상결렬 및 무효화를 선언하고 찬반투표를 중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협의안의 입법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전의총은 “건정심 위원 24명 중 정부 대표가 한명도 없는 상태로 건강보험법을 개정하려는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원협회도 “6개월간의 시범사업으로 원격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의협 주도로 시범사업을 한다 해도 원격의료를 막는 명분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협상안에 대해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고 밝혔다.
 
이처럼 의료계 내부에서도 협의안에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지자 20일 정오로 예정된 투표결과 발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협은 지난 17일 오후 6시부터 금일 오전 12시까지 회원 찬반투표를 진행해왔다. 투표결과 부결될 경우 협의안은 전면 무효화되고 예정대로 24일 총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이 “의협이 지난 1차 의·정협의 당시 공익위원 가입자·공급자 동수 추천에 대한 사안을 정부와 합의했고, 이 같은 이면합의 사실을 숨긴채 집단휴진에 들어갔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의협은 “정부와의 이면합의는 사실무근이며, 악의적인 보도로 본질을 흐리는 일부 언론사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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