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영 분당서울대병원 수면장애클리닉 교수

경기도 용인에 사는 윤모 씨(63)는 몇 년째 심각한 잠버릇을 갖고 있다. 그의 잠버릇은 단순한 잠꼬대나 잠투정에 그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며 벽을 치거나 부인에게 발길질을 하는 것은 예사였지만 정작 자신은 잠버릇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부인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은 윤 씨는 수면다원검사 결과 ‘렘수면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 RBD)’라는 진단을 받았다.

대다수가 ‘고약한 잠버릇’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여긴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기의 잠버릇은 성장과정의 일부로 간주한다. 그러나 고령이 되면서 잠버릇이 험해졌다면 렘수면행동장애를 의심해볼 수 있다. 또 파킨슨병이나 치매의 전조 증상일 가능성도 커 면밀한 추적관리가 필요하다.

윤인영 분당서울대병원 수면장애클리닉 교수(정신건강의학과)팀은 경기도 용인시에 거주하는 60대 이상 노인 348명을 대상으로 야간수면다원검사를 실시한 결과 7명이 렘수면행동장애였으며, 이 중 3명은 파킨슨병이 함께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9일 밝혔다. 7명 중 4명은 순수한 1차성 렘수면행동장애였다.
이번 연구에서 국내 노인인구의 렘수면행동장애 유병률은 2.01%로 확인됐으며, 이는 해외에서 보고된 0.38~0.5%보다 현저하게 높은 수치다.

수면은 안구가 빠르게 마구 움직이는 렘(REM:rapid eye movement)수면과 그렇지 않은 비(非)렘(non REM)수면으로 나뉜다.렘수면은 꿈을 꾸면서 자는 수면으로 심장박동과 호흡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특성을 보인다.비렘 수면은 얕은 잠인 1~2단계와 깊은 잠인 3단계로 나뉜다.비렘수면을 끝내고 렘수면으로 바뀌는 한 사이클이 하룻밤에 3~5회 반복된다.새벽으로 갈수록 주기가 짧아지고 깊은 잠이 줄어든다. 성인의 가장 이상적인 수면비중은 비렘수면의 얕은 수면이 50%,깊은 수면이 25%,렘수면이 25%인 경우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자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팔을 휘두르거나 다리로 차는 등의 격렬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잠에서 깨면 자신이 했던 행동은 인지하지 못한채 ‘쫓기거나 싸우는 꿈을 꿨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수면다원검사를 시행하면 렘수면 시간 동안 근력긴장도가 증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반대로 신체적 행동 등 증상은 보이지 않지만 렘수면 동안 근육긴장도가 증가하는 ‘무증상 렘수면행동장애(subclinical RBD)’도 꽤 많다. 이번 연구에서 348명 중 18명(4.95%)이 무증상 렘수면행동장애인 것으로 나타났다.

렘수면행동장애가 파킨슨병이나 루이소체치매 등 뇌 퇴행성 질환과 연관있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러나 이 질환의 국내 유병률이 보고된 것은 이번 연구가 최초로 국제학술지 ‘수면(Sleep)’ 최근호에 게재됐다.

윤 교수는 “렘수면행동장애는 발병 5년내 20%, 10년내 40%의 환자가 파킨슨병이나 치매로 악화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국내 노인 인구에서 흔히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고약한 잠버릇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렘수면행동장애를 진단받았다면 파킨슨병이나 치매 등 뇌 퇴행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정밀한 신경학적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 질환은 수면 중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며 “진단 후에는 약물치료 등으로 증상 호전시킬 수 있으며 치료경과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악몽을 꾸는 일이 잦거나 배우자가 수면 중 이상행동을 보일 경우에는 바로 병원을 찾아 수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