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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스러워진 우리 아빠, 혹시 ‘남성 갱년기’?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3-18 10:10:57
  • 수정 2014-03-24 15: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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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호르몬 급감해 심리불안, 정력저하, 복부비만 … 사회적 접촉빈도 유지, 필요시 호르몬치료

사회적 접촉빈도가 높은 사람은 남성갱년기 이후에도 덜 외롭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만큼 관심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직장인 유 모씨(27·여)는 최근 50대 후반의 아버지가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어릴 적 남성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어쩐지 찾아보기 어렵다. 50대 중반 이후 예전과 달리 지나칠 정도로 섬세해져 적응이 되지 않는 분위기다. 엄마가 장보러 갈 때조차 같이 다녀오려고 애쓰고, 평소 묻지 않았던 딸의 교우관계나 연애사 등에 대해 물어보는 등 의외의 모습을 종종 보인다. 

한번은 출근 전 인사를 드렸더니 ‘우리 딸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뽀뽀를 하려고 해서 자기도 모르게 ‘아빠 진짜 왜 이러셔’하고 놀란 적도 있다. 이 반응에 아버지는 적잖이 상처받은 것 같았다.
요즘엔 자신의 이야기에 식구들이 별 반응이 없으면 ‘내 얘기가 재미가 없나보다’ 하고 삐치는 등 감수성까지 예민해져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유 씨는 “아버지에게 제2의 사춘기가 온 것 같다”며 난색을 표했다.
 
어느 순간부터 쉽게 토라지고 가족들에게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일이 잦거나, 예전엔 관심도 없던 드라마를 즐겨보며, 심지어는 슬픈 장면에선 눈물을 훔치는 자신을 발견한 중년 남성들이 적잖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감성적으로 변했구나’ 하고 가볍게 넘길수도 있지만 의학적으로 ‘남성갱년기증후군’(andropause)을 의심해볼 수 있다. 대개 중년 이후 신체조건, 정신·심리적 상태, 대인관계,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갱년기는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갱년기라 하면 일반적으로 여성의 폐경 이후에 나타나는 일련의 증상을 쉽게 떠올리지만, 남성도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 부족·스트레스 등으로 갱년기 증상을 겪는다. 우리나라 40대 남성 5명 중 1명은 갱년기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용기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여성처럼 급작스러운 여성호르몬의 소실이 없는 대신 서서히 진행되고 자각증상이 없어 뚜렷한 남성갱년기가 나타나는 평균연령이나 남성호르몬 수치를 정의할 수 없다”며 “다만 일반적으로 남성호르몬이 절반 가까이 소실되는 40대에 남성 갱년기가 발생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설사 증상을 느끼더라도 단순히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남성갱년기가 나타나면 노화가 촉진되고 신체저항력이 떨어져 삶의 질이 저하된다. 
 
증상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이 ‘남성호르몬의 감소’다. 남성호르몬은 1차적으로 남성 생식기능을 조절하는데 관여하는 스테로이드호르몬이다.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대표적이다. 생식기관뿐만 아니라 신체 거의 모든 부위에 작용, 남성다움을 만들고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민용기 교수는 “남성호르몬이 항상 일정량을 유지한다면 갱년기에 대해 걱정할 이유가 없다”며 “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매년 1%씩 감소한다”고 말했다.
테스토스테론은 20대 후반에 최고점을 찍고 30대부터 서서히 떨어진다. 이때부터 노화가 시작되며, 신체기능이 떨어지는 40~50대부터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

남성호르몬은 20대 초반에 가장 많이 분비되며, 30대로 넘어갈 때 약 26%가 감소되고, 30대에서 40대가 될 때 약 16%가 사라져 40대 후반에는 약 절반 이상의 남성호르몬이 감소된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탓에 우울증이 오고, 매사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며, 자신감이 소실된다. 예컨대 젊은 시기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성격이 나이가 들면서 참을성이 늘게 된다.

이시은 삼육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성호르몬의 감소로 성욕감퇴, 만성피로, 쉽게 짜증을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불안정한 감정상태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소극적으로 변하고 성취욕구가 감소해 외부세계에 대한 관심이 줄고 내적 생활에 점점 몰두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골프 등을 치며 밖에서 돌던 것을 좋아하던 남성이 점점 와이프와 모든 것을 함께 하려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럴 경우 가족들은 몰라보게 변한 아버지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이시은 교수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무조건 당황할 게 아니라 사회적 접촉을 계속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 남성이 가족이 아닌 친구, 이웃, 다른 사람들과 많은 사회적 접촉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외롭지 않았다.
 
이 교수는 “새로운 취미나 관심사를 만들고 하루 또는 주간 생활계획을 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예컨대 요일을 정해 ‘카드놀이 하는 날’, ‘커피모임 하는 날’, ‘영화관 가는 날’ 등을 계획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공통된 관심·경험 등을 찾아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남성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성이 갱년기에 접어들면 근력이 떨어져 근위축이 발생, 운동해도 젊은 사람처럼 발달하는 게 어렵다. 복부에 지방이 점차 축적돼 배가 나온다. 골형성도 감소돼 남성에서도 골다공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해 요통, 관절통, 골절이 유발되며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줄어들면 성욕이 감퇴되고 발기력도 약해진다. 발기 시작까지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정에 이르는 시간도 연장되고, 발기가 되더라도 음경경직도가 약하고 발기지속시간이 짧아져 결국 오르가슴의 강도가 약해진다. 발기 각도가 점차 떨어지고 성교 빈도가 감소한다. 매력적인 여성을 봐도 성적 상상력(성흥분도)이 좀처럼 고양되지 않는다.

민용기 교수는 “성기능장애를 일으키는 남성 발기부전은 개인의 흡연, 음주 등 평소의 생활습관과 연관이 깊지만 이 시기에는 음경의 혈류량 급감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남성갱년기는 삶의 질과 관련 깊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이럴 경우 남성호르몬 보충요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정상 이하이면서 증상이 동반된 경우에 한해 적합하다. 보충요법을 시행하기 전, 호르몬 투여로 악화될 수 있는 전립선암 등 남성호르몬 의존성 종양이 있는지 사전검사를 해보는 게 필수적이다. 국내서 판매되는 남성호르몬제는 경구용 제제, 피부에 붙이는 타입의 패치, 젤 형태의 제제가 있다. 3~4주 또는 3개월마다 맞는 주사도 있다.
 
근본적인 치료 외에 생활습관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평소 비타민B6, 비타민D, 칼슘 섭취를 늘리는 게 도움이 된다. 남성호르몬을 생성하고 근력을 유지하는 비타민E와 불포화지방산도 좋다. 땅콩, 잣, 호두 등에 풍부하다.
혈액순환을 원활히 돕고 테스토스테론을 생성하는 셀레늄·마그네슘 등도 충분히 먹어준다. 마늘·양파·깨·버섯 등 혈액순환 및 혈관청소에 도움을 주는 음식도 정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성기능을 증진시키는 아연이 풍부한 굴, 콩, 호박 등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적당한 성생활도 남성갱년기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주기적인 성생활은 음경건강에도 유익하다. 스트레스를 피하고, 적절히 운동하며, 양질의 수면을 취하는 등 기본적인 건강수칙을 지키면 갱년기 증상이 완화돼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민용기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경우 중 한가지라도 해당된다면 반드시 갱년기검사를 받기를 권했다.

-45세 이상의 모든 남성
-최근 성기능저하를 느끼고 근력이 약화된 경우
-사춘기가 늦은 경험을 가진 남성
-습관적으로 거의 매일 음주·흡연하는 경우
-관절통이 잦거나 골절을 경험한 남성
-가족 중 골절·골다공증이 있는 경우
-위산 부족 등 소화기질환 등을 겪어 수술을 받았던 경우
-유전성·류마치스성 관절염, 기관지염이나 장기이식 등으로 스테로이드 제재를  장기복용한 경우
-항경련제를 장기복용한 경우
-갑상선 및 부갑상선 질환이 있었던 경우
-심장질환 및 기타 질환을 앓았던 경우
-요로결석증을 앓았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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