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병원 전공의들이 오는 24~30일 예정된 2차 파업에 참여키로 결정해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최대 규모의 의료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대화 제의를 수용함에 따라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10일 종료된 1차 집단휴진 당시 개원가 휴진율은 29.1%, 전공의 참여율은 42.3%에 그쳐 예상보다 파업효과가 미미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주요 병원 전공의들이 잇따라 2차 파업에 동참키로 결정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1일 성명서를 통해 총 유권자 1021명중 총 투표인 944명(92.5%), 찬성 845표(89.5%), 반대 33표(3.5%), 기권 58표(6.1%), 무효 8표(0.9%)로 의협의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투쟁에 참여할 것을 결의한다”며 “원격진료 입법 반대, 의료영리화 정책 반대, 건강보험제도개혁 및 의료제도 정상화 등의 사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도 “지난 10일 열린 긴급 수석전공의회의 결과 만장일치로 24일부터 예정된 6일간의 총파업에 전공의 전원이 참여키로 의결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빅5병원 중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은 1차 전면휴진에도 참여함으로써 파업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직 참여의사를 밝히지 않은 삼성서울병원 전공의협의회는 이번 주말까지 파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전공의들의 적극적인 파업 참여는 주 100시간 이상 과중한 업무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금껏 열악한 근무수련 환경 속에서 국민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던 전공의들의 투쟁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며, 이에 대한 노력은 지속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전공의들이 파업참여 열기가 고조되면서 의료대란이 현실화되자 정부는 지금까지의 강경 대응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오는 20일까지 대화를 통해 의협이 무엇을 원하는지 논의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겠다”며 의협에 대화를 제의했다. 이어 “정부는 진정성 있는 대화의지를 보이기 위해 의료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상정을 유보했다”며 “의협도 하루 빨리 집단휴진을 철회하고 대화에 나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또 “의사 여러분은 처음 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새겼던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숭고한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며 “의사들이 환자를 뒤로한 채 집단휴진에 나선다면 이 같은 숭고한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의협은 “면허취소 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온 정부가 태도를 바꿔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환영한다”며 “원격의료법 개정안 상정을 미루는 등 정부가 진일보한 태도 변화를 보였다고 판단해 대화에 적극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의협은 “정부가 여전히 실제 추진 중인 원격의료와 다른 내용을 국민에게 홍보하고, 의협이 의료발전협의회에서 협의된 사항을 번복하고 집단휴진에 들어갔다는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한 것은 대화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어 “잘못된 의료제도가 시행되면 국민건강에 장기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막는 것도 의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민의 오해와 비난을 무릅쓰고 투쟁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방상혁 의협 투쟁위원회 간사는 “지난 10일에 이어 집단휴진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의사들도 큰 윤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며 “의협이 먼저 대화를 제의했고 정부가 한 발 물러선 만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번 담화문이 정부의 명분 쌓기에 지나지 않고 대화과정에서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24일 총파업은 결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대한간호협회·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 보건의료단체도 “정부의 대화 제의와 의협의 대화 수용을 환영한다”며 “의협은 24일부터 예정된 총파업을 유보하고 정부와 적극 대화에 나설 것을 권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 단체는 “6개 보건의약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새로운 보·정 협의체를 하루 속히 구성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고 밝혔다.